아프간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아프간전 뉴스가 연일 속보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온통 편파적이고 편향적인 보도만 차고 넘친다. 미국을 대변하는 언론 보도를 보고 있으면, 마치 패주하는 미국이 피해자이고 아프간의 탈레반이 가해자인 것처럼 착각이 될 정도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미국은 가련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고, 탈레반은 폭압적 악마의 가해자처럼 묘사되고 있다.
단도직입으로 말하자. 아프간 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 미국이 아프간을 공격해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미국과 탈레반 사이에 20년간 전투가 계속되었다. 아프간전은 미국이 아프간을 침략해 일으킨 전쟁이며,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가 명명백백하다. 침략의 명분을 무엇으로 내세워 미화분식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아프간 침략의 사실 자체는 무엇으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20년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은 국토가 폐허로 변했다. 그리고 24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민간인과 군인을 포함해 아프간에서만 17만여명, 전선이 이어진 파키스탄에서 사망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24만명을 넘어선다. 살해당한 시민(비무장 민간인)도 7만8300여명에 달한다. 지난해 민간인 희생자 중에 여자와 어린이가 43%를 차지했다.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이 7만5900여명 희생됐고, 탈레반은 8만41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아프간 인구가 3700만명(추정)인데, 난민만 500만명이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다른 나라로 탈출한 난민이 약 250만명에 달하며, 올해 들어 아프간 내에서 흩어진 내국인 난민만 55만명이라고 한다.
이처럼 참혹하고 끔찍한 참상이 벌어졌으면, 종전과 함께 전쟁범죄에 대한 항의와 규탄의 목소리가 들끓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피해 배상과 전후 복구에 대한 요구가 뜨거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전쟁을 일으킨 당사국 미국과 그 추종 국가들은 추호의 반성도, 일말의 유감 표시조차도 없다. 가해자에 대한 규탄과 책임추궁은커녕 거꾸로 탈레반의 폭력성과 야만성에 대한 선정적인 뉴스가 난무하고 있다. 또한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 국민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난민의 고통을 부각하는 척하면서 은근히 불안과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아무리 미국 언론과 서방 통신사의 뉴스를 따라 베끼기에 급급하다고 하지만, 정말 이건 아니지 않는가. 심지어 ‘피해자 중심주의’를 말하던 자칭 진보 인사들이 언론 보도에 부화뇌동하여 동조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들은 아프간전 이전에 시행됐던 과거 탈레반 정부 시절의 일부 그릇된 정책을 들먹이면서 탈레반 귀환 이후의 아프간을 걱정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일부 극단주의 행태를 상기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탈레반 비난에 동조하는 걸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프간전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혐오의 감정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의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최근 대구에서 이슬람 사원의 건축을 둘러싸고 심각한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경북대에 유학 중인 무슬림들이 기도처로 쓰던 가정집을 이슬람 사원으로 증축하려다가 인근 주민들의 방해로 공사가 반년째 중지된 상태다. 주민들은 공사 현장 입구에 천막을 치고 공사 장비의 출입을 가로막고 있다. 지자체가 나서 중재를 시도했지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은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면 이 지역이 슬럼화돼 재산권이 침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슬람이 사이비 종교인가. 이슬람은 기독교, 힌두교, 불교와 더불어 세계 4대 종교의 하나다. 2015년 4월 기준 전 세계 이슬람 인구는 약 17억 명이다. 세계 인구 73억명의 종교 분포를 보면, 기독교 31%, 이슬람 24%, 비종교 16%, 힌두교 15%, 불교 7%의 순서이다. 국제연합(UN) 가입국 중 57개가 이슬람 국가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슬람이 마치 사이비 종교인 것처럼 오해받고 있으며, 심지어 ‘이슬람=테러리스트’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만연해 있다.
이슬람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를 살펴보자. 이슬람 하면,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같은 급진 테러 집단을 떠올리는 게 대표적인 오해다. 우리가 그동안 미국과 유대 중심의 언론 보도와 정보에만 익숙해진 탓이다. ‘이슬람권의 UN’으로 불리는 세계이슬람협력기구(OIC)는 알카에다와 IS를 ‘없애야 할 테러 조직’으로 공식 규정하고 있으며, 전 세계 무슬림의 약 99%가 IS를 반이슬람적 테러 조직으로 간주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카타르의 위성 TV방송 <알 자지라>의 여론조사 결과)
이슬람 하면, 아랍을 떠올리는 것도 대표적인 오해다. 이슬람권에서 아랍이 차지하는 비중은 교인 수나 지역 분포를 기준으로 25% 정도다. 이슬람 인구의 대부분은 아시아 지역에 집중돼 있다. 무슬림 인구가 많은 나라는 인도네시아(2억484만명), 파키스탄(1억7810만명), 인도(1억7729만명), 방글라데시(1억4860만명) 순이다. 중앙아시아 전역도 이슬람권이며, 중국의 무슬림 인구도 5000만명 이상이다. 이슬람은 아랍 종교가 아니라 아시아 종교라고 해야 더 어울린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슬람은 동질적이기보다 이질적이다.
이슬람 혐오는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무슬림을 공포와 배척의 대상으로 보는 지독한 편견의 산물이다. 이슬람 혐오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결정적 계기는 2001년 9·11 테러와 이를 빌미로 한 미국의 아프간·이라크 전쟁이다. 이때부터 이슬람 극단주의라는 말이 유행했으며, 이슬람주의가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리즘과 동의어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그리고 아프간의 탈레반 조직을 키운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1979년~1989년 아프간 전쟁 당시에 친소 정부를 무너뜨리고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탈레반을 배후에서 지원했다. 탈레반은 미국의 지휘 아래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 지원과 파키스탄의 병참 지원을 받으면서 급격히 힘을 키웠다. 탈레반은 소련의 남하정책 봉쇄와 천연자원 확보를 노린 미국의 아프간 정책이 낳아 기른 세력인 것이다.
아프간에서 친소 정부를 무너뜨리고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뒤 미국과 탈레반 정부는 대립 끝에 갈라섰다. 탈레반이 이슬람 근본주의를 퍼트리며 알카에다에게 군사기지를 제공했고, 결국 9·11사건이 터지자 미국은 카불을 공격하여 탈레반을 쫓아냈다. 카불에서 밀려난 탈레반은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댄 남부와 동부, 이른바 파슈툰 벨트(파슈툰족 중심지)를 거점 삼아 저항을 계속하면서 영토를 장악해 들어갔고, 마침내 지난 8월 15일 카불에 재입성하게 된 것이다.
전쟁은 잔혹 범죄를 동반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유태인 학살, 일본의 종군위안부 강제 동원이 대표적이다. 미군이 아프간전에서 사용한 드론은 정밀폭격을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라지만, 피해자들에겐 무고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는 무기였을 뿐이다. 드론은 아이, 노약자, 여성과 군인, 테러리스트를 식별하지 않은 채 폭탄을 퍼부었다. 2019년 9월 아프간 동부 난가르하르 산지마을에서 잣 농사를 짓고 있던 농민 30여명이 드론 폭격으로 그 자리에서 집단 폭사했다. 2019년 11월 아프간 남동부 코스트주에서는 산모 등 5명이 탑승한 차량이 미군 드론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법원과 도쿄 극동군사법원은 전통적인 전쟁범죄 외에 ‘평화에 대한 죄’와 ‘인도에 반한 죄’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인정하고 추궁하였다. 침략전쟁 개시를 결정한 사람, 침략전쟁의 계획과 실행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평화에 대한 죄’의 죄책으로 처벌되었고, 전쟁 중 일반인을 살해하고 절멸시키며 노예화하는 등의 비인도적 행위를 하거나 인종적, 정치적 이유로 박해한 행위는 모두 ‘인도에 반한 죄’로 처벌되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여 20년 동안 전란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은 데 대하여 아프간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침략전쟁은 범죄이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아프간전 범죄를 결코 용인 묵과해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으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게 되는 법이다. (2021년 8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