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고 미흡한 기준금리 인상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26일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기준금리 인상은 지난해 5월 이후 15개월 만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누적된 금융불균형을 완화시켜 나갈 필요성이 있어 첫발을 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금융불균형은 이 한 번의 조치로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며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도 예고했다.

금융불균형이란 금융과 실물 경제 간의 불균형 상태로, 실물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시장에 유동자금이 넘쳐나는 현상을 말한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주요국들은 역사상 최저 수준의 기준금리를 도입하고, 최대 규모의 양적완화를 시행했다. 그런데 싼 금리로 풀린 막대한 돈이 실물 경제에 투입되지 않고 부동산, 주식, 코인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거대한 자산 거품을 일으키고 있다. 이 거품이 급격히 꺼질 경우 금융 위기로 비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금융불균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위험하다.

우리나라의 금융불균형은 가계부채가 주요 원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24일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 잠정치’ 통계에 따르면, 가계가 금융기관에서 빌린 부채와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을 합한 가계신용은 1805조9000억원이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최고 기록이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도 가파르다. 1년 새 168조6000억원(10.3%)이 불어나 사상 최대 증가 폭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주요 국가들의 가계부채 증가율을 보면 한국이 9.5%로 압도적 1위다. 캐나다·스웨덴 6.0%, 프랑스 4.6%, 독일 4.4%, 일본 3.9%, 미국 3.4%, 영국 2.4% 등과 비교해 큰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작년 말 기준으로 103.8%에 이르렀다.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의 80%를 넘어서면 원리금 상환 부담 때문에 소비가 위축되는 등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의 한계치를 85% 안팎으로 본다. 가계부채가 이 수준을 넘어서면 위험하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과도한 가계부채가 금융 위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4년에 85%를 넘어선 뒤 계속 높아져 2007년 98.5%까지 치솟았고 2008년에 마침내 금융 위기가 터졌다.

가계부채의 규모와 증가율도 문제지만, 부채의 내역을 살펴봐도 문제가 심각하다. 가계신용대출이 고신용자 대출 위주로 증가했다. 올해 1분기 전체 가계 신용대출 중 고신용자의 대출 비중이 75.5%에 이른다. 고신용자의 신용대출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 13.3%에서 올해 1분기 19.6%로 증가한 반면, 저신용자는 -6.1%에서 -9.7%로 3.6%포인트 감소했다. 대출의 양극화 심화다. 한국은행은 고신용자 대출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고신용자 대출 증가율과 주택가격 상승률의 상관계수가 작년에 0.75로 나타났다. (2019년 상관계수 0.23) 고신용자가 돈을 빌리는 목적이 대부분 자산 증식을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은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시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저금리와 양적완화가 자산가(고신용자)들에게 자산을 불리는 기회로 이용되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저금리와 대출 지원을 활용하여 자산가들은 더 많은 자산에 투자해 자산을 불려나가고, 넘쳐나는 유동성이 자산 가격을 폭등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신용대출의 양극화가 부동산·주식 등 자산 격차를 더욱 벌려놓아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 양극화가 한층 심해지고 수많은 ‘벼락 거지’가 양산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채에 의한 경기부양은 한계에 다다르게 마련이며, 거품은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부채의 증가와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얼마나 위험한 파국적 결과를 초래하는가는 최근의 외국 사례들이 생생히 보여준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2012년 일명 피그스(PIIGS: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국가부도) 위기 역시 부동산 대출의 급증과 그 이후 거품 붕괴에서 비롯된 사태였다.

가계뿐 아니라 경제의 또 다른 주체인 기업의 부채도 양상이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부채가 국내총생산 대비 107.2%였고, 기업 부실이 은행 부실로 이어지는 바람에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은 바 있다. 그런데, 기업부채가 지난해 2분기에 108.3%까지 높아져 외환위기 수준을 넘어섰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 111.1%를 기록했다.

지난해 재무제표 공시기업 2520개 가운데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이 39.7%에 달했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1 미만이면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빌린 돈의 이자도 못 갚는다는 뜻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상황이 심각한데, 지난해 중소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은 50.9%였다. 절반 이상의 중소기업이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속에서 상당수 한계기업은 정부의 대출 원금 및 이자 유예 조치로 어렵사리 겨우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되고 정부의 금융지원이 끝날 경우 한계기업들은 타격이 불가피하며, 이른바 ‘좀비기업’의 줄도산이 이어질 우려가 크다. 금리 인상→상환 부담→줄도산→금융 위기의 과정을 거쳐서 전체 경제 위기로 번질 위험이 예상된다. 전체 노동자 중 중소기업의 비중이 83.1%이므로, 고용 위기 역시 심각해질 것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주요 시중은행들이 예·적금 상품의 금리를 일제히 올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대출금리도 곧 오를 전망이다. 예·적금 등 수신금리가 오르면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은 ‘시간 문제’다. 시중은행들은 우대금리 축소, 가산금리 인상 등의 조처를 통하여 대출금리를 인상할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저금리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이다.

게다가 부동산 관련 대출이 어려워진다. NH농협은행이 11월 말까지 신용대출을 제외한 신규 가계 부동산담보대출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고, 우리은행도 9월 말까지 전세대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SC제일은행과 농협중앙회는 일부 부동산담보대출을 중단키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에 이어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도 대출 한도 축소를 요구한 상황이다. 은행뿐 아니라 카드사, 보험사 등의 대출도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은 주요국 가운데 한국이 최초이다. 주요 외신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아시아 주요국 중 첫 기준금리 인상’이라고 보도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 주체들의 부채 상태가 심각하고 자산 거품이 위험하다는 의미다. 8월 전국의 집값이 1.50%, 수도권의 집값이 1.88% 오르며 14년 8개월 만에 월간 상승률 최고치를 기록했고, 전셋값 상승도 지난해 12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29일 KB국민은행의 ‘월간주택시장동향’)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0.25% 인상은 때늦고 미흡하다.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인상한다고 해도 금리가 1%에 불과하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금리는 여전히 마이너스다. 부채 위기가 경제 위기로 번지기 전에 금리를 정상화하여 금융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 선제적 대응을 하지 않으면 1997년 외환위기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의 큰 재난을 피할 수 없다. (2021년 8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