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12일 전남 여수에서 자영업자 ㄱ씨가 생활고를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치킨집을 운영한 ㄱ씨는 ‘경제적으로 힘들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지난 7일에도 서울 마포에서 자영업자 ㄴ씨가 자택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3년째 맥주집을 운영한 ㄴ씨는 2년째 지속된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었다. 숨지기 전 ㄴ씨는 직원의 월급을 주기 위해 살고 있던 원룸을 빼고 모자란 돈을 지인에게 빌렸다고 한다.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영업 제한이 계속되면서 자영업자의 고통이 깊어지고 있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 발생 이후 자영업자들은 지난 1년 6개월 동안 66조원이 넘는 빚을 떠안았고, 45만3000개 매장이 폐업을 했다. 자영업자들은 지난 9일 정부에 영업시간·인원제한 폐지 등을 요구하면서 “정부의 시설 방역 일변도의 정책에 국민의 20%인 자영업자만 희생됐다”, “1년 반 동안 희망고문을 당하며 살았는데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고 호소했다.

재난의 장기화에 따른 민생의 위기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생존의 기반이 무너지고 백성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니, 국가의 존립 이유에 대하여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일 가운데서 백성의 생명을 지키고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보다 더 우선이고 중대한 과제가 존재하는가?

새삼 ‘인간 안보’(human security)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인간 안보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보고서 1994>를 통해 통용되기 시작했다. 보고서는 기존의 전통적 안보 개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안보 개념을 제시했다. 인간 안보는 군사력 위주의 전통적인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안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보고서는 인간 안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인간 안보란 지속적인 기아, 질병, 범죄, 억압 등으로부터의 안전이며, 가정이나 직장 등 사람들의 일상을 갑작스럽고 고통스럽게 파괴하는 위협으로부터의 보호이다.” ‘일상을 갑작스럽고 고통스럽게 파괴하는 위협’에는 전쟁과 같은 군사적 위협뿐 아니라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른 생존의 위기와 같은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도 포함된다.

인간 안보의 개념은 국가 안보라는 미명 아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희생돼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안보의 개념에서 ‘국가’가 아니라 ‘국민’을 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 안보는 국가주의에서 탈피하여 평범한 백성의 삶을 우선하고 중시할 것을 강조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끔찍한 재난을 겪으면서 우리는 인간 안보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있다. 나아가 기후 위기 상황도 인간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기후 위기가 아직 최악은 아니지만, 파괴적인 기후 영향(식량 부족, 질병, 살인적인 폭염, 생태계 붕괴, 해수면 상승으로 위협받는 도시 등)이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기후 위기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어느 순간에 지구의 전체 균형이 깨져버리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일어나고, 지구상의 전체 인류는 대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유엔개발계획의 <인간개발보고서 1994>는 “사람들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환경 내에서 안전하지 않으면 유엔헌장의 어떤 조항도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사람 친화적, 일자리 친화적, 자연 친화적인 지속 가능 인간발전을 위한 대안 정책의 하나로 세계적인 차원의 군축을 제안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1년에 3%씩 군사비를 줄여 인류가 ‘평화 배당금’의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제안이었다.

보고서가 나온 때로부터 거의 한 세대가 지났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도 국방 예산으로 55.2조원을 제출하였다. 임기 첫해인 2017년 국방비가 40.3조원이었으니,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만에 무려 37%가 증가했다. 국방부가 향후 5년간의 국방 계획을 담은 <2022~2026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는데, 소요 재원이 총 315.2조원이다. 이 계획대로 매년 5.8%씩 증가하면, 국방비가 2024년에 63.4조, 2026년에 70조원을 넘어선다. 게다가 방위력 개선비(무기 도입 및 개발비)의 연평균 증가율은 무려 8.3%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국방비를 크게 늘릴 때인가? 정부는 군비 증강의 이유로 ‘주변국 위협’을 비롯한 전방위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2.8%로, 주변국 일본(약 1%)·중국(약 1.7%)과 비교하면 훨씬 높다. 지금 당장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기 침체와 민생의 위기 문제만 해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가? 나아가 양극화, 그리고 기후 위기 등에 대비한 예산 배정이 우선 시급한 터에, 막대한 재원을 군비 증강에 쏟아붓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정부가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의 선별 지급을 고집하는 이유가 이른바 ‘균형 재정’이다. 정부 재정이 부족하여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방비를 이렇게 펑펑 써대면서 건전재정 핑계를 대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백성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

어디 그뿐인가. 지난달 말(8/31)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비준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방위비 분담금이 2019년보다 13.9% 인상되었으며, 향후 4년간 해마다 국방비 증가율과 연동하여 자동 인상된다. 그렇게 해서 결국 국방중기계획의 마지막 해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했던 방위비 분담금 50% 증액에 도달하게 된다. 역대 최악이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한·미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의해 원칙적으로 미국이 부담해야 할 주한미군 주둔경비를 특별협정이라는 조치에 따라 부당하게 부담해왔다. 한국이 주한미군 전체 주둔 비용의 70% 이상을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2018년 말 기준 방위비 분담금의 미집행액이 현물과 현금을 합쳐 1조3천억원에 달하고, 미국은 미집행 지원금을 불법 전용하고 이자수익을 챙기고 있다. 2019년 3월 국내 은행에 예치됐던 방위비 분담금 미집행 현금 약 2800억원이 미국 재무부 계좌로 송금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방위비 분담금 미집행액을 환수해야 맞지, 그걸 그냥 놔둔 채 역대급으로 증액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여론을 봐도 명백하다. 통일연구원이 세 차례(2019.9, 2020.6, 2020.11)에 걸쳐 진행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방위비 분담금을 현 수준으로 유지(69.7%)하거나 감액해야 한다(25.3%)는 응답이 95%에 달한다. 극소수 5%를 제외한 사실상 전 국민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백성들의 뜻을 철저히 외면하고 역대 최고의 방위비 분담금 퍼주기를 하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우리 국민에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은 재정이 부족하니 아껴야 한다고 역설하던 정부가 정작 주한미군에게 주는 지원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낌없이 퍼주고 있다. 이 나라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21년 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