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의 위기 경보 ‘헝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중국의 헝다 그룹 파산 위기와 미국 연준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소식이 전해지고, 국내에서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은행의 대출 억제 등이 잇따르고 있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저금리와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했고, 금융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나면서 흥행했던 ‘빚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2021년 기준 포춘의 글로벌 500대 기업 중 122위를 기록한 헝다 그룹은 과도한 부채경영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다. 이 회사 재무 보고서에 따르면, 총부채 규모 354조원 중 1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금액이 43조원으로 현금 보유액 15조원의 3배에 이르고, 거액의 이자 상환 압박을 받고 있다. 홍콩 시장에 상장된 헝다 그룹 주가는 연초 대비 80% 이상 폭락했으며, 2023년 만기가 예정된 헝다 그룹 회사채는 30% 넘게 폭락하여 거래 자체가 중단된 상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테이퍼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22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가 끝난 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올해 11월부터 테이퍼링에 들어갈 수 있음을 시사했으며, 금리 인상 시점이 내년으로 앞당겨질 가능성도 내비쳤다. 연준의 테이퍼링이나 조기 금리 인상은 신흥국 시장에서 달러 자금이 대량 이탈하는 충격을 줄 수 있다. 달러의 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과 환율 급등이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한국은행은 0.25%포인트 추가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케이비(KB)국민은행이 29일부터 전세자금대출, 집단대출 등 각종 가계대출 한도를 축소해 운영하기로 했다. 엔에이치(NH)농협은행이 11월 말까지 각종 가계대출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한 뒤 국민은행으로 수요가 몰리며 대출 잔액이 빠르게 늘자 대응 조처를 한 것이다. 국내 은행 가운데 가계대출 규모가 가장 큰 케이비국민은행의 대출 한도 축소가 다른 은행들의 대출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가계대출의 전년 대비 증가율 목표치를 5∼6% 정도로 제시한 바 있는데, 16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이 4.69%로 목표치에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 중심의 서방 언론들은 헝다 그룹의 파산 위기가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면서 위험을 과장한다. 반중국 여론을 조장하기 위한 가짜뉴스에 불과한데도, 일부 국내 언론은 여기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이런 가짜뉴스와는 별개로, 헝다 그룹의 위기가 주는 교훈은 부채로 부풀린 거품은 터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헝다 사태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넘어갈 수 없는 까닭은 우리가 지금 남의 나라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거품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한 상태다.

가계와 기업 부채가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가계부채는 1805.9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3% 늘었다. 기업신용 역시 올해 상반기 말 기준 2219.6조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7.3%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비율은 각각 105.6%, 111.6%로 나타났다. 모두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0년 1분기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계와 기업 부채를 합산한 민간부채 비율은 217.1%로, 역시 최고치를 기록했다. (참고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비율은 각각 46%, 107%였다.)

국제결제은행(IIF)은 국가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가계부채 비율을 85% 안팎으로 본다. 예컨대 미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2004년에 85%를 넘어선 뒤 계속 높아져 2008년 98%까지 치솟았고, 결국 금융위기가 터졌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비율(105.6%)은 국제결제은행의 가계부채 비율 임계치를 크게 뛰어넘은 수치다. 부채 문제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천만한 상태라는 뜻이다.

부채의 내역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위기가 더욱 도드라진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상황’ 보고서를 보면,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자영업자, 버는 돈보다 이자 비용이 많은 부실 기업, 소득이 비교적 낮은 2030세대 청년층 등의 부채가 크게 불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자영업자, 한계기업, 청년층이 사실상 갚지 못할 악성 부채는 총 23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차례차례 살펴보자.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 1년간 빠르게 불어났다. 지난 6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858.4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불어났다. 한 해 사이 103조원, 2분기에만 27조원이 늘었다. 소득별로는 1~3분위 중·저소득 자영업자의 대출 증가율(16%대)이 다른 소득분위 증가율(12%대)을 웃돌았다. 자영업자 대출은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2금융권에서 많이 늘었다. 2금융권 대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증가했고, 저축은행·신용카드사·대부업 등에서 받은 고금리 대출 증가율이 18%로 특히 높았다. 자영업자 대출 중엔 빚 갚을 가능성이 매우 낮은 대출자를 뜻하는 ‘취약차주’ 비율이 11%(대출자 수 기준)에 달한다. 한은은 자영업자 대출 중 9% 정도인 약 77조원을 갚지 못할 대출로 추산한다.

연간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도 다 못 갚는 한계기업(좀비기업)의 비율은 2010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인 15.3%에 달한다. 2018년 이후 한계기업의 비중이 증가세이며 대기업의 한계기업 진입이 늘어나고 기업당 평균 차입금이 중소기업의 약 10배에 달한다. (한계기업의 기업당 평균 차입금: 대기업 1509억원, 중소기업 164억원) 한계기업의 부채 위기가 금융기관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이런 한계기업이 빌린 돈은 124.5조원으로, 전년보다 9.1조원 증가했다.

청년층 대출도 지난 1년간 급증했다. 20·30대가 진 빚은 약 490조원이며, 대출 증가율은 13%(2분기, 전년 동기 대비)로 다른 연령층(8%)보다 훨씬 높았다. 청년층 대출 중 약 25%가 전세대출로, 다른 연령층(8%)보다 그 비율이 아주 높았다. 청년층이 전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17년 24%에서 지난 2분기 27%까지 올라갔다. 가계부채 증가분 중 청년층이 기여하는 비율은 2018~2019년 30%에서 42%로 확대됐다. 눈여겨볼 대목은 청년층의 신용대출 증가율도 20%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청년층이 신용대출 일부를 주식 투자 등에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주요 증권사의 지난해 신규 계좌 중 20·30대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청년들이 빚을 내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에 대거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은은 청년층 대출 중 7% 정도인 약 33조원을 갚지 못할 대출로 추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채 없이 살기는 어렵다. 신용구매도 일종의 부채이며, 새 차를 살 때 할부 없이 사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나라 가구 자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집을 매입할 때 대출 없이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출(부채)을 활용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취급을 당한다. 자본주의에서 ‘자산=자본+부채’라고 회계 처리하는 데서 보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채는 자산에 속한다.

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과도한 부채 차입은 파산의 근원이다. 원리금 상환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채의 늪에 빠지면 파산을 피할 수 없다. 과도한 부채경영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 헝다 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대우 그룹을 연상시킨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주체(가계, 기업, 정부)의 국내총생산 대비 부채비율은 이미 외환위기 당시의 수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거품 붕괴와 경제 공황 사태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21년 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