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전 장관의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 출마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전남 여수의 요트 선착장에서 잠수 작업을 하던 특성화고 3학년 현장 실습생이 바다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홍 군은 지난 6일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 등을 제거하기 위해 잠수 작업을 하다가 숨졌다.

잠수 상태에서 요트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작업은 전문 잠수사가 하는 일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발급하는 잠수기능사나 잠수산업기사를 보유한 전문 잠수사도 2인 1조 원칙을 지켜가며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홍 군은 잠수 작업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이 없었다. 학교에 잠수 교육 과정이 있지만 홍 군은 물을 무서워해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전 수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잠수 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2인 1조로 진행하고 안전관리자가 있어야 하지만, 사고 당시 홍 군은 홀로 잠수했다. 업체 관계자가 현장에 있었더라면 숨지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교육부는 그동안 학생들이 실습 나가는 기업에 현장실습 담당자를 둬 사고를 예방하겠다고 했지만 빈말이었다. 이런 위험한 작업을 실습생 혼자 하라고 시킨 것 자체가 사고를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현장실습 기업과 학생, 학교장이 맺은 ‘현장실습표준협약서’에는 현장 실습생 특별 보호를 위한 조항이 있다. 협약서에 현장실습 기관이 실습생에게 시켜서는 안 되는 업무가 규정돼 있는데, 잠수 작업은 금지 업무로 명확히 적시돼 있다. 근로기준법 65조는 ‘18세 미만자를 도덕상 또는 보건상 유해·위험한 사업에 사용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40조는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사용 금지 직종을 표로 명기하고 있는데, 잠수 작업이 고압 작업과 함께 맨 위에 명시돼 있다.

이번 사고는 위험에 노출된 특성화고 학생들의 실습 현장 실태를 보여준다. 안전관리 자체가 허술한 조건에서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일해야 하는 열악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017년 제주의 특성화고 실습생 이 군이 한 생수 제조업체에서 압착기에 끼여 숨진 사고가 발생하자 교육부가 현장실습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어린 학생들이 현장실습이라는 미명 아래 위험한 노동에 내몰려 목숨을 잃는 상황을 언제까지 내버려 둘 것인가.

여수의 홍 군은 지난달 27일부터 이 업체에서 현장실습 중이었고 현장실습 열흘 만에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홍 군이 실습을 나간 사업장은 요트를 소유한 사업주와 홍 군 단 2명이 근무했다. 근로기준법에 18세 미만 청소년은 잠수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돼 있지만,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되지 않은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 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도 마찬가지다. 이 법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를 처벌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이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이 3년 유예됐다. 빛 좋은 개살구다. 더구나 ‘누더기’라는 비판을 받은 법안은 정부의 시행령으로 더 후퇴했다. 2인 1조 작업 범위, 과로사를 막기 위한 적정인력 배치 등 내용이 빠져서 사용자가 면죄부를 받게 됐다.

우리나라가 언제까지 ‘산재 왕국’이라는 오명을 들어야 할까.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산재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망자 수는 2천62명이며, 이 중 882명이 사고로 숨졌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발간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산재 사망사고 실태 비교·분석보고서를 보면, 2017년 기준 건설산업 노동자 10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8.29의 세 배 이상인 25.45로 가장 높았으며, 전체 산업 노동자 10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도 3.61로, 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 회원국 평균 2.43을 훌쩍 뛰어넘었다.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가 우리 노동자에게 언제까지 ‘희망 고문’이어야 할까. 노동자는 먹고살기 위하여 현장으로 출근한다. 그런데 살기 위하여 일하러 출근한 뒤 퇴근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는 노동자가 1년에 2천 명이 넘는다.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 수는 3.98명이다. 그런데, 방역 당국이 발표한 2020년 코로나19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 이래 12월 31일까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는 총 900명이다. 10만 명당 사망자 수는 1.74명이다.

세계 최대 노동조합 단체인 국제노총(ITUC)이 지난 6월 30일 ‘2021년 글로벌 노동권 지수’(Global Rights Index)를 발표했다. 국제노총의 2021년 글로벌 노동권 지수 발표는 149개 나라를 대상으로 올해로 8년째다. 이 발표에 따르면 파업의 자유, 노동조합 설립과 활동의 권리, 시민적 권리와 언론·집회의 자유 등에 대한 침해는 지난 8년간 최악의 수준이었다.

국제노총은 글로벌 노동권 지수를 6개 등급으로 나눈다. 구체적으로 보면 △노동권이 가끔 침해되는 나라(1등급) △노동권이 반복 침해되는 나라(2등급) △노동권이 정기적으로 침해되는 나라(3등급) △노동권이 체계적으로 침해되는 나라(4등급) △법·제도에서 노동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나라(5등급) △사실상 정부 기능이 마비돼 평가 자체가 무의미한 나라(5+등급)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최하위인 5등급을 받았다. 법과 제도에서 노동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나라로 분류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노동권이 최하위 수준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38개국 중에서 5등급을 받은 나라는 한국·콜롬비아·터키 세 나라다. (일본 2등급, 영국 3등급, 미국 4등급) 국제노총이 노동권 지수를 처음 발표한 2014년 이래로 한국은 5등급을 벗어난 적이 없다. 부끄러운 ‘노동 후진국’의 기록이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지난 1일 외교부와 고용노동부가 보도자료를 냈다. 정부는 강 전 장관이 당선되면 한국이 ‘노동 선진국’으로 위상을 강화할 기회이며 아시아 최초이자 첫 여성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이 탄생한다며 범부처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강 전 장관의 입후보 활동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 전 장관의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 선거 출마를 어떻게 봐야 할까. 단언컨대 가당치 않고 주제넘은 일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노동권 지수 최하 등급의 ‘노동 후진국’으로 평가받는다. 눈 가리고 아웅도 아니고, 어디다 대고 ‘노동 선진국’ 타령인가. 정부가 내세우는 ‘아시아 최초이자 첫 여성’이라는 타이틀도 터무니없다. 강 전 장관이 아시아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향상에 무슨 기여를 한 게 있다고 그런 타이틀을 갖다 붙인단 말인가.

강 전 장관이 특성화고 학생의 현장실습이 뭔지나 알며, 한 해 2천 명 넘게 죽어가는 노동 현장에 평생 한 번이라도 가본 적이나 있을까. 강 전 장관을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시키는 걸 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참 후안무치하다는 걸 새삼 절감한다. 지난달 2일 새벽 민주노총 사무실을 폭력 침탈해 양경수 위원장을 체포·구속한 이 정부가 ‘노동 선진국’ 운운하다니, 철면피하기 짝이 없다. 단지 후안무치와 철면피를 넘어 우리 노동자를 모욕하고 조롱하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최소한의 염치가 있다면 강 전 장관은 입후보를 당장 철회하라.

모욕과 조롱을 당하고도 가만있으면 깨어있는 노동자가 아니라 비굴한 노예와 다를 게 없다. 노동자의 분노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다음 주 수요일 ‘10.20. 민주노총 총파업’이 더욱 중요해졌다. (2021년 10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