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란 명목의 민중 수탈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대장동 개발 특혜 논란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이 논란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선후보 측에서 무차별적으로 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그들의 정치적 속셈은 분명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당시의 검찰이 개입한 ‘고발 사주’ 또는 ‘청부 고발’ 사건이 폭로되면서 치명적인 위기에 몰리게 되자 궁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였다. 프레임을 전환하여 위기 국면에서 탈출하려는 술책이었던 것이다.
고발 사주는 윤석열 정치검찰이 저지른 무소불위의 국기문란 사건이다. 이 사건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못지않은 중대한 범죄행위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국기문란 사건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관심은 온통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의혹에 쏠려있다. 고발 사주 사건이 뒷전으로 사라지고 대장동 개발 의혹이 전면에 부각됨으로써 국민의힘이 의도했던 대로 프레임이 전환된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은 부동산 정책의 실패다. 지난 4·7 재보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에게 참패를 당했던 결정적인 요인도 집값 폭등에 따른 민심 이반이었다. 최근 통계자료로도 명확히 확인된다. KB국민은행 월간 주택매매가격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3.3㎡당 평균 아파트값이 지난달 4652만 원으로 집계됐다.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2326만 원에서 2배 오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은 판도라의 상자이다. 한국 사회에서 지배계층이라면 ‘토건족’으로 일컬어지는 부동산 개발사업에 연루되지 않은 세력이 없다. 여야 정치권, 검찰과 사법부는 물론이고 재벌과 언론 등이 복잡한 이해관계로 치밀하게 얽히고설킨 복마전이 바로 부동산 개발사업이다. 게다가 부동산 민심이 폭발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국민의힘이나 윤 후보의 입장에서는 고발 사주 사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대선은 사실상 ‘게임 끝’이므로 이판사판으로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 바로 대장동 개발 건이다.
고발 사주와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은 2019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조국 사태’와 닮았다. 윤석열이 논란의 중심으로 등장한 점에서 그렇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인화성이 강한 문제인 자녀의 대학입시와 부동산 비리 의혹이 논란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조국 사태’는 윤석열 정치검찰이 조국 장관을 낙마시키기 위해 조 장관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정치검찰의 속셈은 분명했다. 공수처 설치와 검찰개혁을 무산시키기 위한 술책이었다. 윤석열은 특권층의 특혜 입학 비밀창구로 이용되던 수시입학제도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서 결국 조 장관을 낙마시켰다. 궁지의 위기에서 탈출하고 역공을 펼치려는 속셈에서 이번에는 부동산 개발 비리 의혹을 꺼낸 건데, 그 술수가 2019년에 써먹었던 수법 그대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점은, 문제의 본질이 은폐되고 있다는 것이다. 2년 전 조국 사태 때도 그랬었다. 거대 양당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서로 죽일 듯이 싸웠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함께 은폐했다. 당시의 쟁점은 조 장관의 딸이 특혜 입학전형에 제출한 서류가 위조된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였다. 물론 부정이 있었다면 책임이 있는 사람이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문제, 곧 ‘부모 찬스’와는 거리가 먼 학생들에게는 특혜 입학전형의 기회조차 아예 주어지지 않는다는 ‘기회의 평등’ 문제는 양당의 관심 밖이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수저’에 따라서 인생의 출발선이 달라진다는 본질적인 문제는 비켜 갔던 것이다.
현재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대장동 개발사업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은 성남시장이 2014년 5월 도시개발법에 근거해 대장동 일대 92만㎡를 개발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2월 민관합동 개발 방식으로 성남의뜰을 시행사로 정하고 15개 필지 42만㎡에 주택을 공급해 1조원이 넘는 개발이익이 발생했다. 이 천문학적인 개발이익의 분배를 둘러싸고 누가 폭리를 취했으며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둘러싸고 거대 양당이 상대방에게 ‘000 게이트’라고 서로 공격하면서 사생결단의 판가리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대장동 개발사업은 당초 토지공사가 공영개발로 추진하려던 것을 이명박 정부 때 한나라당 의원 등의 압력으로 민영개발로 변경됐고, 다시 이재명 성남시장 시절 공영개발로 전환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다수였던 당시 성남시의회의 반대 등으로 결국 공공이 민간과 공동추진한 도시개발사업이다. 그러므로 국민의힘은 애당초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해 무슨 비리니 게이트니 운운하면서 떠벌일 자격조차 없는 집단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에서 반사이익을 얻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고 있다. 그들이 내놓은 부동산 정책을 보면 기가 차다. 하나같이 집값 안정이 아니라 되레 집값을 폭등시키는 정책이다. 주택공급확대,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등 공공연한 투기 조장 정책들뿐이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은 너나없이 수백만 호의 주택 공급을 공약한다. 도심은 초고층 고밀도로 개발하고, 부동산 개발에 장애가 되는 모든 법적 규제를 풀어주며, 재개발·재건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한다. 완전히 부동산 투기판을 만들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도시개발사업에서 문제의 본질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민중 수탈이다. 대장동 개발사업도 민관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원주민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고 분양가 상한제를 피해 다수 분양자에게 비싸게 팔아 성남시와 민간 사업자들이 천문학적 이익을 나눠 가져간 사업이다. 대장동 개발사업은 원주민의 토지를 평당 250만 원 수준으로 강제 수용하여 평당 2500만 원에 분양하여 10배의 폭리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도시개발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공공의 인허가권을 동원하고 토지를 강제 수용하여 부동산 개발업자의 막대한 불로소득 수탈을 돕는 것은 반민중적이다. 정부가 토건족의 민중 수탈의 공범 노릇이나 해서야 되겠는가. 민간이 아닌 공공이 개발 주체가 된다 해도 마찬가지다. 고가 분양을 통해 개발이익을 목표로 하는 개발사업은 민간이건 공공이건 똑같이 불로소득을 조장하고 투기를 부추길 뿐이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개발사업은 개발의 주체가 어디이건 결코 공공성이 없다.
우리가 분노해야 하는 지점은, 역대 정부가 독재와 민주를 불문하고 모두 ‘공공’의 이름으로 부동산 개발사업을 통해 땅 장사와 집 장사를 해왔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농지와 유휴지를 강제 수용해 공공택지로 개발하고 민간 건설사와 한통속이 되어 아파트를 짓고 팔아 천문학적인 규모의 불로소득을 취해왔다. 민중을 수탈하는 데서 관과 민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이윤추구의 시장으로 전락한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와 투기의 구분은 어불성설이다.
불로소득이란 일하는 사람 어느 누군가의 노동소득을 착취한 산물이다. 도시개발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부동산 개발사업의 본질은 민중 수탈이다. 물론 개발사업의 추진과정에서 부정부패와 불법 비리가 있다면 철저히 밝혀내서 합당한 처벌을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민중 수탈이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과정의 공정’만을 따지는 것은 비본질적이다. 민영개발인가 공영개발인가를 따지는 것도 부차적이다.
작금의 집값 폭등 사태는 이미 무력화된 토지공개념 제도로는 해결 불가능하다. 노태우 정권 시절 도입됐던 토지공개념 3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택지소유상한제’는 위헌결정을 받았으며, ‘토지초과이득세법’은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고 폐지되었다. 택지소유상한제법 및 토지초과이득세법의 부활을 포함한 관련 입법 없이 부동산 투기를 막을 방법은 없다. 토지의 사적 소유를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놔둔 채 과연 집값 폭등 사태와 부동산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는가. (2021년 10월 1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