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후보와 김종인의 복귀, 20대 대선의 퇴행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온통 대선 뉴스다. 5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되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대진표가 확정돼서다. 이로써 20대 대선의 막이 올랐다. 20대 대선의 후보자 등록신청은 2022년 2월 13일~14일이고, 2월 15일부터 선거운동이 개시되며 투표일은 2022년 3월 9일이다. 선거일까지 4개월이 남았지만, 대선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윤석열 후보는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선출직 공직자를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 그가 제1야당에 입당한 지 고작 3개월 만에 쟁쟁한 경력의 홍준표 의원(5선, 19대 대선 후보), 유승민 전 의원(4선, 19대 대선 후보),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3선 의원, 재선 도지사)를 모두 제치고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윤 후보가 올 3월 초에 검찰총장을 중도에 사퇴하고 6월 말에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았다. 정치 경력이 전무한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다.
전직 검찰 총수가 대선 후보로 나선 것도 초유의 일이지만, 윤석열 후보는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측근이 여러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소위 ‘고·윤·주’ 의혹(고발 사주·윤우진 관련 스폰서 및 뇌물수수외압·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옵티머스 펀드사기 부실수사,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수수 등 모두 8건의 의혹에 연루돼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윤 후보의 장모는 요양급여 부정수급 혐의로 1심에서 법정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나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래서 검찰과 공수처의 수사가 20대 대선의 변수라는 말도 나온다. 과연 그럴까. 2007년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시끄러웠던 17대 대선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선거일을 2주일 앞둔 12월 5일, 검찰이 BBK 주가조작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BBK 사건에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후보가 관여하지 않았다는 발표였다. 이로써 이명박 후보는 BBK 의혹에서 벗어나 대통령에 무난히 당선되었다. 대선 후보를 둘러싼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대선의 변수가 전혀 아니었다.
진실은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BBK에 190억원을 투자한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이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에 벌금 130억 원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되었다. 뒤늦게 밝혀진 진실은, 14년 전 검찰이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 면죄부를 주었다는 것이다. 검찰이 오히려 대통령 당선의 일등 조력자 역할을 한 셈이었다. 만일 윤석열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최고권력을 자기 수중에 장악하게 되는 건데, 과연 검찰과 공수처가 윤 후보 관련 사건을 법과 원칙에 따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모두 국회의원 경험이 전혀 없는 ‘0선’ 후보다. 1당, 2당의 대선 후보가 0선 후보로 결정된 건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민주화 이후 7명의 대통령은 전부 국회의원으로 정치 경력을 쌓은 뒤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대 대선처럼 1·2위를 다투는 유력 후보가 둘 다 여의도 정치의 경력이 없는 건 이례적인 현상이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이낙연 전 대표(5선 의원, 국무총리 역임), 정세균 전 국무총리(6선 의원, 국회의장 역임), 추미애 전 대표(5선 의원)를 이겼다. 이재명 후보는 9명의 당내 경선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후보였다. 여의도 정치와 거리가 먼 변방의 정치인이 집권 여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것이다. 기성 정치에 대한 염증과 반감, 특히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 역시 성남시 대장동 비리 의혹에 휩싸여 있고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구속 기소)이 압수수색 직전 이 후보의 측근인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비서실 부실장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후보 자신의 연루와 무관하게 측근들을 둘러싼 의혹이 끊이지 않으면서 대장동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의도 정치와 거리가 멀다곤 하지만, 1당과 2당의 후보 모두 비호감도가 매우 높다. 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기관이 이달 1~3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비호감도는 각각 60%와 56%에 달했다. 지난달 19~21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호감 간다”는 답변은 이 후보와 윤 후보가 각각 32%, 28%에 불과한데, “호감 가지 않는다”는 답변은 60%, 62%로 배를 넘었다. 역대 대선에서 선두권 대선 후보들의 호감도가 50%가량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대선 후보들처럼 비호감도가 높았던 적이 없었다.
20대 대선 이후 출범하는 차기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막중하다. 코로나 재난을 극복하고 순조롭게 일상을 회복하면서 위기의 민생을 살려야 한다. 금융 불안정을 해소하고 집값을 안정시켜야 한다. 자산 불평등의 해소,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도 해결이 시급하다. 기후재난 대책도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이처럼 절박하고 시급한 민생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공약의 제시는 뒷전인 채 오로지 서로에 대한 보복과 응징의 날선 공방만 난무하고 있다. 그러니 유력 후보들에 대해 비호감도가 높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20대 대선의 퇴행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복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선대위의 총괄선대위원장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이다. 그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정부를 당선시키는 데 기여했고, 2016년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아 공천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러다가 지난해 총선에선 다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지휘했었다.
김종인 같은 정체불명의 기회주의 정치인이 대선판에 끼어들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 자체가 현재의 거대 양당이 얼마나 낙후한 정당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거대 양당 체제가 적대적 공존의 기득권 보호 체제임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2021년 11월 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