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와 정치의 퇴행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지난주 칼럼에서 ‘20대 대선의 퇴행’을 지적했다. 촛불 항쟁 이후 한국 정치가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왜 우리 정치는 되레 퇴행하고 있는가.

전직 검찰총장이 정치판에 뛰어들어 대선 후보로 나선 것은 우리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헌법 규정을 뿌리째 뒤흔드는 초유의 사건이다. 전직 검찰총장이 현직 당시에 검찰을 지휘한 모든 행위가 정치적 의혹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실제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재직 당시의 ‘고발 사주’ 혐의가 공수처의 수사대상에 올라있다.

1995년 김도언 검찰총장이 퇴임 뒤 곧바로 총선에 출마하자 국회에서 ‘검찰총장 퇴임 뒤 2년간 정당활동 금지’ 입법 논의가 이뤄진 바 있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는 검찰총장을 도중에 사퇴하고 몇 달도 안 돼 제1야당에 입당하여 대통령에 출마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원천 부정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논의를 찾아볼 수 없다. 26년 전보다 못한 정치의 퇴행이다.

정치적 중립 위반을 둘러싼 논란이 아니더라도 가뜩이나 검찰은 불신의 대상이다. 지난해 9월 형사정책연구원의 형사사법기관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검찰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31%에 불과했고 57.1%는 검찰에 대해 불신을 나타냈다. 경찰 49.2%, 법원 35.3% 등 사법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절반도 되지 않을 만큼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었지만, 특히 검찰이 꼴찌였다. 2012년 이후 6차례 진행된 조사에서 검찰은 2012년을 제외하고 줄곧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통계청의 ‘2020 한국의 사회지표’에서도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경찰(46.4%), 법원(41.1%), 검찰(36.3%) 순이었다.

그런데, 신뢰도 꼴찌인 검찰의 전직 총수가 대선 후보로 출마하는 것 자체가 반헌법적인데도 지지율 수위를 달리는 괴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이 무엇일까. 이 사태를 초래한 원인 제공자는 말할 것도 없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집권세력이다. 윤석열 후보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연출하면서 ‘공정과 상식’을 외치고, 다 죽어가던 탄핵세력의 몸통인 국민의힘에 입당하여 ‘정권교체’를 부르짖고 있으니 말이다.

윤석열 후보가 검찰총장직을 사퇴하던 지난 3월 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4·7 재보선에서 참패할 거라고 전혀 예상치 않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참패였다. 박근혜의 탄핵 이후 국민의힘 정당지지도가 더불어민주당을 앞설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상상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의힘의 정권교체론이 더불어민주당의 정권연장론을 크게 앞선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상전벽해의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박근혜를 탄핵시킨 촛불항쟁 덕분에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장악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을 포함하여 전국 규모의 선거에서 세 번 연이어 승리했다. 부패 타락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국정농단 세력의 수구 퇴행적인 행태에 힘입은 어부지리 반사이익의 결과였다. 그런데도 현 집권세력은 마치 자기들이 잘나서 선거에서 승리한 줄 착각하고 교만하게 굴었다. ‘30년 집권’을 떠벌이면서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었다. 한때 ‘윤나땡’(윤석열이 야권 대선후보로 나와주면 땡큐)이라고 기고만장했을 정도였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강한 건 현 정부에 대해 실망한 민심의 반영이다. 집값 폭등으로 대변되는 민생의 위기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와 집권 여당의 무능을 상징한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일말의 반성도 없이 오로지 국민의힘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그들은 국민의힘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 있다. 정부·여당이 아무리 싫다고 해도 탄핵을 반성하지 않는 국정농단의 몸통인 야당을 설마 찍기야 하겠냐고 착각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진영논리의 함정에 빠져 있다. 진영논리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념은 무조건 옳고, 다른 조직의 이념은 무조건 배척하는 논리를 말한다. 자기편은 선이고, 상대편은 악이라고 규정하는 획일적이고 배타적인 논리이다. 따라서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자기편은 무조건 옹호하고 상대편은 무조건 비난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내로남불’(naeronambul)이다. 진영논리에 빠지면 자기반성과 성찰이 없고 묻지 마 상대방 탓하기에 골몰한다.

예컨대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것은 악인가. ‘정권교체라니, 어떻게 국민의힘과 윤 후보의 주장에 동조하느냐?’고 분개해야 맞는가. 전형적인 진영논리이다. 정권이 잘못하면 교체되는 것이 정상이다. 여당이 야당으로, 야당이 여당으로 교체될 수 있어야 그게 바로 민주주의다. 정권이 잘못 해도 교체하면 안 되고 계속 편들어야 하며, 그 이유는 야당이 악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게 바로 진영논리다.

왜 민심이 이탈하여 정권교체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반성과 성찰 없이 반정부 여론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집권 초기 80%대에 달했던 지지율이 폭락한 원인이 무엇인가. 민심 이반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정부·여당은 지금껏 ‘야당 복’을 타고났다고 희희낙락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그 한심한 탄핵 야당이자 적폐 본산인 야당보다도 인기가 없다니, 과연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는 말인가.

정권교체에 대한 동의와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를 동일시하는 것도 틀렸다. 흑백논리의 이분법적인 사고다. 정권교체에 동의하지만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국민의힘을 반대하고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지만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더불어민주당이 선이고 국민의힘은 악이라는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거대 양당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어느 당이 덜 악하고 더 악한가에 대한 판단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양당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규정해 구별하긴 어렵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무산된 사례를 보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88.5%에 달했다. 그런데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의 심사기한을 21대 국회 마지막 날인 2024년 5월 29일까지 연장하기로 의결했다. 여야 만장일치였다. 여야가 선악의 이분법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은 1997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제정을 주장한 이래 24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더구나 여당의 단독입법이 가능한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안 된다면 그 책임은 여당이 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역대 대선과 비교할 때 이번 20대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후보에 대한 ‘비호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5일 이후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그 특징이 뚜렷하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1월 5~7일 전국 성인 1천 명에게 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재명 후보의 비호감도는 59.5%, 윤석열 후보는 56.1%로, 두 후보 모두 60%에 가까웠다. 반면 호감도는 이 후보 36.8%, 윤 후보 40.1%에 그쳤다.

1·2위를 다투는 거대 양당 대선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진영으로 확연히 갈라져 있고 상대 진영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큼 진영논리의 골이 깊고, 그 결과 자기 당 후보의 잘못과 약점에 대해서는 무조건 옹호하고 감싸고 돌면서도 상대 당 후보의 실수와 흠결에 대해서는 부풀려 과장하고 묻지 마 비난하기 바쁘다는 것이다. 상대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하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자기 후보에 ‘올인’하는 진영논리의 폭주 현상이 심각하다. 우리 정치의 퇴행을 초래하는 원인이다. (2021년 1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