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의 대한민국, 98%의 비국민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국세청이 오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고지서를 발송한다. 종부세 부과를 앞두고 진작부터 보수 정치권과 언론들은 일제히 ‘세금폭탄론’을 떠들어 왔다. 해마다 그랬지만 특히 올해는 대선을 앞둔 터라 유독 더욱 요란하게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오늘 고지서가 발송되고 나면 목소리가 한층 거세질 게 불 보듯 뻔하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때를 만났다는 듯이 거짓 선동에 앞장선다. 그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년 이맘때면 종부세 폭탄 걱정 없게 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대통령이 되면 종부세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종부세는 납세 대상자 수가 적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많은 세금”이라면서 “중장기적으로 아예 종부세를 재산세에 통합하거나 1주택자에 대해서는 면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재산세에 통합’하는 방안은 사실상 종부세를 폐지하겠다는 말이다.

윤 후보의 주장은 거짓 선동이다. 그는 종부세가 “문제가 많은 세금”이라고 강변한다. “이중과세, 조세평등주의 위반, 재산권보장원칙 위반, 과잉금지의 문제 등이 쟁점”이란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쟁점이 아니라 이미 결론이 난 문제다. 2006년 종부세 도입 초기에 종부세 부과 대상자들이 헌법재판소에 온갖 종류의 위헌소송을 제기하였는데, 헌법재판소는 이중과세와 기본권 침해 등 쟁점들에 대해 합헌으로 판결하였다. (세대별 합산조항과 1주택 장기보유자 세금 부과에 대해서만 위헌·헌법불합치 판정)

윤 후보의 발언은 거짓이고 위험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검찰총장이라는 최고 법조인 출신이 어떻게 이 정도로 무식한가?’라고 비웃을 수 있다. 무식해서 그런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알면서도 그런 발언을 한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불길하고 위험한 징조다. 위헌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취임선서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로 시작한다. (헌법 제69조)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마한 후보가 거리낌 없이 헌법 위반 발언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독재자의 사고방식이다.

윤 후보는 “1주택 보유자 중에는 수입이 별로 없는 고령층도 있고 코로나 사태로 소득이 정체되거나 줄어든 사람도 많은데, 이런 분들이 어떻게 고액의 세금을 감당하느냐”면서 종부세가 세금 폭탄이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다음날인 15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가 성명서를 냈다. 이 성명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시가 20억원 아파트의 종부세가 많아야 125만원이며, 시가 20억원 아파트 소유자가 현재 70세, 보유기간 10년인 경우에는 많아야 25만원”이다. 이게 세금 폭탄인가. 아무리 선거용 발언이라지만 거짓 선동도 정도껏 해야지….

올해부터 1주택자 기준 종부세 과세기준이 공시가격 9억 원에서 11억 원으로 상향됐다. 공시가격은 시장 가격의 70% 정도다. 최소 15~16억 이상 돼야 종부세 납부 대상이다. 서울에서 최근 집값이 크게 오른 과열지역 중소형 아파트 대부분이 비과세 대상이다. ‘최근 5년간 서울시 공시가격별 공동주택 현황’에 따르면 서울에서 올해 1주택자 종부세 과세기준인 11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은 총 27만7074채다. 지난해 9억 원 초과 주택(28만1033채)보다 3959채가 줄었다. 과세기준이 상향돼 서울 아파트 1주택자의 경우 오히려 종부세 납부 대상자가 줄어든 것이다,

통계청이 16일 발표한 ‘2020년 주택소유 통계’를 보면, 집값 상위 10%(10분위) 가구의 평균 집값이 1년 새 2억원 넘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11억300만원에서 2020년 13억900만원으로 2억600만원 상승) 종부세 부과 대상인 상위 2%의 집값은 이보다 훨씬 많이 올랐을 게 틀림없다. 종부세 과세기준일(매년 6월 1일)을 고려하면 올해 오른 집값만도 족히 수억이 넘을 텐데, 불어난 불로소득은 무시한 채 오로지 세금 걱정이란 말인가. 윤 후보의 2% 집 부자 걱정이 눈물겨울 지경이다.

하긴 윤 후보의 종부세 걱정은 남 걱정이 아니라 제 걱정이라는 비판도 있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올 6월 공개한 재산공개에 따르면, 윤 후보는 검찰총장 퇴직일인 지난 3월 6일 기준으로 서초구의 아크로비스타 아파트를 포함해 71억6900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윤 후보의 아파트는 배우자 김건희 씨 명의로 당시 공시가격 기준 15억5500만 원이다. 이 아파트의 종부세는 110만 원 정도다. 배우자 김 씨가 경기 양평군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윤 후보 부부의 합산 종부세는 182만 원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종부세 폐지는 윤 후보의 ‘셀프 감세’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으며, 그가 내세운 ‘공정과 상식’이 무색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후보의 종부세 발언에 대해 맹비난을 퍼붓는다. 그들의 비판이 일리 있는 면도 없지 않지만, 자업자득의 책임은 외면한 채 남 탓만 하고 있어 귀에 거슬린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예상 종부세수는 적게는 4조6000억 원, 많게는 6조1000억 원에 이른다. 2019년 종부세수가 9524억 원, 2020년 1조5224억 원(추정)인 점을 고려하면 1년 새 3~4배 증가하는 셈이다. 과세 대상도 지난해보다 약 10만 명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폭등해 나타난 결과다.

더불어민주당은 종부세 고지서 발송 이후 민심 이반을 걱정한다고 한다. 그래서 윤석열 후보를 더 매섭게 공격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물론 세금을 선거용 포퓰리즘의 정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잘못됐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더불어민주당도 예외가 아니다. 종부세 논란을 자초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종부세를 깎아 주기 위해 법안을 개악하는 데 앞장섰던 주모자가 다름 아닌 더불어민주당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8월 집값 폭등을 막겠다며 종부세 인상을 위한 종부세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그런데 개정된 법을 단 한 번도 시행하지 않고서 올해 다시 종부세 인하를 위해 법 개정을 추진했다. 4‧7 서울시장 재선거에서 완패하자 부랴부랴 부자 감세에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선 이전에 쓴 칼럼들에서 여러 차례 비판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종부세 부과 기준을 공시가격 9억 원에서 11억 원으로 상향하는 완화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마침내 지난 8월 개악 법안을 처리하였다. 국민의힘이 쌍수를 들어 찬성했던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후보의 종부세 폐지를 비판하는 데 대해서,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라는 쓴소리를 듣게 되는 이유다.

부동산 보유세는 낮추는 게 아니라 더 높여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유세 비율은 2019년 기준 한국이 0.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평균 1.06%보다 낮다. 보유세 실효세율(부동산 보유세액÷민간 부동산 자산총액)도 한국이 0.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 15개국 평균 0.3%의 절반 수준이다. (작년과 올해 부동산 자산총액이 크게 상승했으니 보유세 실효세율은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보유세 강화를 권고한다. 자산·소득의 불평등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2%의 대한민국에서는 보유세를 낮춰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퇴행이 벌어지고 있다.

종부세는 집값이 상위 2% 안에 드는 주택 소유자에게만 부과된다. 절대다수 국민은 종부세와 무관하다. 이억원 기재부 제1차관의 말마따나 “분명한 것은 전체 국민들 중 약 98%의 국민들께는 고지서가 발송되지 않는다.” 98%에 이르는 절대다수 국민들은 종부세 고지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보는 것이 평생소원이다’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2% 부동산 부자의 대한민국에서 98%의 서민은 비국민인가. (2021년 1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