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결권 도입 논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복수의결권 도입 법안 개정안이 지난주 24일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법안소위에서 통과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은 창업주가 총 발행주식 30% 미만을 소유하게 되는 경우 1주마다 최대 10개의 의결권이 있는 복수의결권주식을 창업주에게 발행할 수 있게 했다. 국회 산자위는 25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 개정안을 상정해 논의했으나 의결에 이르지 못했고, 12월에 다시 상정해 정기국회 회기 안에 재논의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상법은 1주 1의결권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주식을 가진 주주라면 누구나 평등하다는 주주 평등의 원칙이다. 투자한 만큼만 의결권을 부여하고 주주총회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 역시 투자한 만큼 비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수의결권 주식은 1주당 1의결권을 주는 일반 주식과 달리 1주당 2의결권 이상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경제단체들이 오랫동안 복수의결권 주식 도입을 주장해 왔다. 대주주 또는 창업자가 가진 주식에 대해 예외적으로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경영권 방어에 활동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복수의결권 도입은 20대 국회 때부터 논의됐다. 하지만 1주 1의결권이라는 주주 평등의 원리를 훼손하고 대주주의 지배력 집중을 심화시킬 것이란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2월 개정안을 제출하였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식회사인 벤처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의 투자 유치로 인하여 창업주가 총 발행주식의 30% 미만을 소유하게 되는 경우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복수의결권주식의 의결권 수는 1주마다 10개 이하로 하고 존속기간은 10년이다.

특혜 논란으로 유보되었던 복수의결권 도입 논의는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비상장 벤처기업의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 허용 법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에 협조를 구하겠다”면서 개정안 추진을 재점화시켰다. 올해 초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이 복수의결권 재논의 촉발의 계기였다. 쿠팡이 창업자 Bom Kim(한국명 김범석) 의장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나스닥 증시 상장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올해 3월 쿠팡이 미국에 상장함으로써 김범석 의장이 가진 클래스 B 주식 1주는 일반 주식(클래스 A)과 비교해 29배의 의결권을 갖는다. 김범석 의장의 경우, 클래스 B 보유 지분이 2%만 돼도 58%에 해당하는 주주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공시에 따르면, 김범석 의장은 쿠팡 상장 직후 자신이 보유한 클래스 B 주식 일부를 일반 주식인 클래스 A 주식으로 전환했음에도 약 76%의 의결권을 가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만일 복수의결권 주식을 허용했더라면 쿠팡이 한국 증시에 상장했을까. 그럴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다. 우선 기초적인 사실관계부터 확인하자. 쿠팡은 한국 회사가 아니라 미국에 설립된 회사다. 쿠팡의 지분은 미국 법인인 지주회사 쿠팡 Inc.가 100% 보유하고 있으며, 쿠팡 Inc.가 주식회사로 전환한 후 상장을 추진한 것이다. 미국 회사인 쿠팡 Inc.가 주식회사로 전환한 후에 해외기업 국내 상장 제도를 활용해 우리나라 거래소에 상장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야구선수가 국내리그에서 뛰겠다는 것과 같다. 해외 토픽감이다.

쿠팡 및 금융권 안팎의 이야기에 따르면, 쿠팡은 복수의결권 때문에 뉴욕 증시로 향한 것이 아니다. 모기업인 쿠팡 Inc.의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지분 33.1%)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처음부터 국내 증시는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열린 복수의결권 도입 관련 중소기업벤처부 공청회에서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쿠팡이나 일부 벤처기업이 (국내) 상장을 꺼리는 이유가 경영권 위협을 받을 수 있어서인지는 의문이 든다. 아직 국내 증권시장에서 벤처기업 출신이 경영권을 위협받거나 뺏긴 적은 거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복수의결권 제도가 도입되면 여러 폐단이 발생한다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돼 왔다. 복수의결권이 도입된 벤처기업을 대기업집단 총수일가 등이 인수할 경우, 이들의 경영권 강화 수단으로 악용돼 재벌의 경영권 세습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또한, 지배주주의 영향력이 강한 한국의 기업 문화에서 창업주의 입맛대로 회사 경영을 할 우려가 크고, 이는 소수 주주의 권리 보호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비판도 일반적이다.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장치는 복수의결권이 아니더라도 이미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계열사 간 출자라는 수단을 이용해, 2020년 5월 기준 공시 대상 55개 재벌 총수 일가는 평균 3.6% 지분율로 57%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자기자본보다 15배 넘는 의결권을 이미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주 10의결권의 복수의결권까지 이용할 수 있게 되면 1주에 150의결권의 행사도 가능해진다는 계산이다.

무엇보다도 복수의결권은 재벌의 편법 세습에 악용될 위험이 크다. 예를 들어 재벌 4세가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이 비상장 벤처기업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재벌 3세가 보유한 지주회사나 대표회사의 지분을 이 벤처기업들의 보통주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재벌 4세가 손쉽게 세습할 수 있다. 복수의결권 주식을 10년 이후 보통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재벌 4세가 새로운 벤처기업을 만들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하고 두 벤처기업을 합병하면 존속기간 10년 제한 규정은 무력해지고 만다.

복수의결권으로 경영진의 입지가 굳어지면 전체 주주보다 특정 주주를 위한 의사결정 경향이 강해질 우려가 커진다. 주주가치에 신경 쓰지 않아 소수 주주에게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복수의결권이 오히려 축소되기도 한다. 예컨대 캐나다 토론토증권거래소 상장기업 중 복수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은 2005년 100곳(비중 6.9%)에서 2018년 69곳(비중 4.6%)으로 줄었다.

게다가 현행 상법에도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장치가 존재한다. 의결권 없는 종류주식,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 등에 대해 내용이 다른 주식 등 다양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비상장사 종류주식 발행 한도는 발행주식 총수의 25%로 제한되지만, 상장사의 경우 특례로 50%까지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2015년 기준 종류주식을 도입한 상장사는 전체 상장사의 18%, 보통주 대비 종류주식 발행 비중도 8.7%에 불과하다. 이처럼 의결권이 없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종류주식을 통해 경영권을 위협받지 않으면서 자본을 모을 수 있는 제도가 이미 존재하지만, 그 활용도가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수의결권 같은 새로운 종류주식의 도입이 도대체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벤처업계에 투자자금이 유입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투자자에 대한 유인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지,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투자자의 입지를 제약하는 것이 해법이란 말인가. 벤처 활성화에는 실익이 없으면서 재벌 세습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큰 복수의결권 개정안은 폐기해야 마땅하다. (2021년 1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