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9~10일(현지시간) 110여개 국을 초청해 화상으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권위주의 타파와 부패 척결, 인권 증진을 핵심 의제로 내세운 이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각국의 협력과 동참을 호소했다.

이에 앞서 미국은 지난 6일 중국의 인권 상황을 문제 삼아 내년 2월 4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선수들은 참가하되 정부 대표단은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스포츠와 정치를 분리한다는 게 올림픽의 기본 정신이다. 미국의 올림픽 보이콧은 올림픽 정신 위반이다. 미국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기 직전에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을 발표한 것은 이 회의의 정치적 의도를 보여준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앞세워 동맹을 규합하고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강화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중국 관영 <신화> 통신은 10일 ‘민주주의를 내세운 미국식 해프닝’이란 제목의 논평에서 “미국이 주최한 이른바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세계를 진영으로 가르고 분열을 조장해,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한 의도”라며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국제사회의 의견도 구하지 않고, 유엔 등 국제기구와 협의도 없이 미국이 독단적으로 주최하는 등 도처에서 반민주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한 정치적 의도나 회의 개최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하여, 중국은 자국의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와 관련하여 그 정치적 의도와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 이전에, 미국이 이 회의를 주도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미국이 개최했다는 것, 미국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하여 말하는 것 자체가 희대의 코미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가. 미국의 민주주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올 초 벌어진 연방 의회 폭력 난동 사건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 수천 명은 1월 6일 백악관 앞에서 집회를 연 다음 의회로 향했고, 경찰 저지선을 뚫고 의사당에 난입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최종 승인하는 절차를 진행하던 상·하원 의원들은 긴급 대피했고 의사당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 사태로 경찰 2명을 포함해 5명이 숨졌고, 현장에 있었던 경찰 2명이 나중에 목숨을 끊었다. 경찰 부상자도 150명에 달했다.

시위대가 연방 의회에 난입해 벌인 약탈과 파괴의 현장은 처참했다. 의원실 출입문은 부서졌고, 책상에는 최루탄가루와 먼지가 두껍게 쌓였다. 의회 복도 바닥은 최루탄가루 위에 남겨진 시위대의 발자국으로 어지러웠다. 의회 출입문의 유리창에는 총알이 뚫고 지나간 흔적이 남았고, 대리석 내벽 곳곳도 총탄 흔적으로 얼룩졌다. 시위대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의장실 책상을 뒤져 사무용품을 훔쳐서 달아났고, 의원 명패와 거울 등 사무실 집기를 박살 냈다. 다른 의원 사무실에서는 노트북이 도난당했다. 이런 난장판이 벌어지는 나라 미국이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가.

민주주의의 기본은 인권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다. 인종의 차이를 이유로 차별이 횡행한다는 게 과연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가. 특정 인종에 대해 적대감을 퍼뜨리고 혐오감을 부추기면서 낙인과 배제를 조장하는 것은 반인륜적인 혐오범죄이다.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1969.1.4. 발효된 유엔 협약)은 인종주의 전파·인종적 증오 고취·특정 인종에 대한 폭력 행동 선동을 금지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협약을 가장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지난해 우리가 목격한, 미국 경찰이 자행한 인종차별의 폭력은 충격적이었다.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질식사한 조지 플로이드, 집에서 자다가 경찰의 총을 여섯 발 맞은 브레오나 테일러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결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항의 시위가 격렬해지자 정부가 통금령을 내렸지만,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2020년 BLM 운동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운동이었다. 야만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인종차별이 만연하여 초보적인 인권조차 짓밟히고 있는 나라 미국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도한다고? 지나가는 소가 비웃을 일이다.

미국은 총기규제가 가장 느슨하고 총기 사고가 가장 잦은 나라다. 미국은 가장 많은 총기(3억 9,300만)를 보유하고 있다. 총기 범죄는 무고한 희생을 양산하며 기본적인 인권을 위협한다. 미국에서는 2015~2019년 동안 매년 총기 폭력으로 3만8천 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총격 사건이 더욱 심각해 4만5천 명이 사망했다. 미국은 세계 인구의 4%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총기 자살의 35%를 차지한다.

18살의 미국 백인 청소년 카일 리튼하우스는 2건의 살인과 1건의 살인미수 등 모두 5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지난해 8월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가 경찰의 과잉진압 총격으로 반신불수가 된 사건이 발생한 뒤 항의 시위가 벌어지자 백인 자경단원들과 함께 거리로 나가 시위 참가자에게 총격을 가해 2명을 숨지게 하고 1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엄중 처벌의 여론이 들끓었지만,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보수 세력들은 그를 영웅시하며 무죄 평결을 촉구했다. 총기 소유 지지자들은 후원금을 모아 200만 달러에 이르는 리튼하우스의 보석금을 대고 지난해 11월 그를 석방시켰다. 그리고 지난달 19일 전부 무죄 평결이 내려졌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는 나라 미국이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가.

전쟁 국가 미국이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도 가소로운 일이다. 2021년 8월,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여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을 끝냈다.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해 20년 넘게 전쟁을 벌인 미국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20년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은 국토가 폐허로 변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전쟁지역에서만 약 24만1천 명이 사망했다. 살해당한 시민(비무장 민간인)도 7만8300여 명에 달한다. 지난해 민간인 희생자 중에 여자와 어린이가 43%였다. 202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약 354만 7000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실향민이 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대의 난민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서 이처럼 참혹하고 끔찍한 참상을 벌인 나라 미국이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가.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Pew)리서치센터가 지난 2월 1일부터 5월 26일까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한국을 포함한 17개국의 성인 18,850명에게 전화 응답을 통해 미국 사회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16%만이 “미국 민주주의가 본받을 만하다”고 답했으며, 73%는 “예전엔 그랬지만 최근엔 아니다”, 11%는 “한 번도 본받을 만한 적이 없었다”고 답했다. 미국을 제외한 16개국 응답자의 17%만이 미국 민주주의가 본받을 만하다고 답했으며, 57%는 미국 민주주의가 “한때 본받을 만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23%는 미국이 민주주의의 좋은 모범인 적이 없었다고 답했다. 미국 응답자들도 부정적이었다. 19%만이 미국 민주주의가 좋은 모범이라고 답했으며, 72%는 “한때 좋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미국의 공영방송 PBS가 올해 7월에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도 미국인의 81%가 미국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주의에 대한 젊은이들의 만족도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55%는 민주주의에 불만족하고 신뢰를 잃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은 주제를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와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침략전쟁과 내정간섭을 일삼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파괴국가인 미국은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미국은 주제넘게 남의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참견하고 간섭하기 이전에 자기 내부의 민주주의와 인권부터 제대로 지켜야 할 것이다. (2021년 1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