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들어서면 민중의 삶이 나아질까?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2022년이 시작되었다. 올해 정세에서 최대 변수는 선거일 것이다. 3월 9일 20대 대통령 선거와 6월 1일 제8회 동시지방선거, 상반기에만 전국 선거가 연이어 치러진다. 큰 선거가 이어지니 선거 이후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하지만 주권자의 심정은 착잡하고 심란하다.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부정적인 우려의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후보에 대한 호감보다 거부하는 후보에 대한 비호감이 훨씬 크고, 그래서 이번 대선은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는 것이 세간의 여론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 대해 유권자들은 호감보다 비호감이 강하다. 한국일보의 새해 여론조사에서, 비호감도를 나타내는 “느낌이 나빠지고 있다”는 응답이 윤 후보 50.4%, 이 후보 33.8%였다. 또한, 도덕성에 대한 질문에서 “부족하다”는 응답이 이 후보 70.4%, 윤 후보 60.6%에 달했다.
언론은 정작 중요한 관심사는 뒷전인 채 온통 1, 2위 후보의 순위 경쟁을 보도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민중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민생 문제이다. 집값 폭등에 이어 물가까지 크게 오르면서 서민의 삶은 나날이 팍팍해지고 있다. 불평등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의 현안인데 그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거대 양당의 대선후보 중에서 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한들 과연 민생이 나아지길 기대할 수 있을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윤 후보가 반노동·반인권 망언에 이어 험한 말까지 서슴지 않는 걸 보면 ‘이 사람이 대선 후보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여당 후보에 대해 “어이없고 너무 같잖다”고 모욕하질 않나, 정부에 대해 “대선도 필요 없고 이제 곱게 정권 내놓고 물러가라”고 비난하질 않나, 표현이 험악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무식하고 깜냥이 안 되는 후보에게 민생 문제 해결을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표만 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식으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1주택자 보유세 완화, 공시가격 동결, 종부세 부분 완화, 다주택자 양도세 한시 경감 등 부동산 세금을 깎아주는 방안을 잇달아 발표했는데, 그게 과연 부동산 폭등을 잡고 집값을 안정시키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 더구나 자신이 주장했던 국토보유세 도입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게 아닌가. 이런 말 바꾸기를 ‘이재명식 실용주의’라고 강변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20대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는가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으며, 향후 5년의 한국 사회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게 틀림없다. 유력 대선후보의 도덕성과 능력, 그의 정책 공약을 비교하고 따져보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3월 9일 대선 결과 정권이 교체되느냐 아니면 정권이 재연장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점이 적지 않을 터다. 하지만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 민중의 삶이 나아질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회의적이다.
올해 민중의 삶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정치 공방에 가려져 경제위기의 실상이 은폐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해 11월 15일 「세계 부채 보고서」를 통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가 한국이 104.2%로, 세계 1위이며 증가 속도도 가장 빠르다고 발표했다. (세계 37개 주요국 중 영국 89.4%, 미국 79.2%, 일본 63.9%, 유로 지역 61.5% 등)
국제결제은행(BIS)은 한 국가가 감내할 수 있는 가계부채 수준을 GDP 대비 85%로 본다. 미국은 2004년 85%를 넘어선 뒤 98%에 이르렀던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하면서 금융위기가 터졌다. 당시 경제위기를 겪었던 남부 유럽의 포르투갈은 92%, 스페인은 86%에서 금융위기를 겪었다. 한국은 현재 104.2%다. 지금 당장 가계부채가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선 위기의식 자체가 없다. 어떤 대선후보도 경제위기에 대한 경고는커녕 문제의식조차 말하지 않는다. 당장 경제위기가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후보들의 도덕성 검증과 자질 논란이 화제일 뿐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법은 아예 관심 밖이다. 전혀 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만일 경제위기가 터졌을 경우 그것이 미치게 될 거대한 사회정치적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가가 심상치 않다. 통계청의 지난달 31일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소비자물가가 전년보다 2.5% 올라 10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2019년(0.4%)과 2020년(0.5%) 2년 연속 0%대를 보이다 2021년에 급등했다. 생활물가지수도 3.2% 상승했고, 2011년(4.4%) 이후 10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물가 상승세가 새해엔 더욱 가파를 전망이다. 정부가 4월 이후 전기요금을 10.6%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전기요금의 두 자릿수 인상은 1981년 이후 41년 만의 일이다. 도시가스 요금도 대선 뒤 16.2% 오른다. 전기요금은 4월과 10월, 가스요금은 5월, 7월, 10월 단계적 인상이 예고돼 있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6.8% 상승해 1982년(7.1%) 이후 3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로존의 11월 물가상승률도 4.9%를 기록해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97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면 돈을 회수해야 하고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내년 기준금리를 세 차례 인상할 가능성을 시사했고,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이달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의 시대가 끝나고 금리 인상과 긴축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이미 가계부채가 위험 수위 상태인 한국 경제로선 시한폭탄과도 같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우리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높은 금리를 쫓아 이동하는 금융자본의 속성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두 차례 금리를 올린 한국은 올해도 두 차례 이상 금리를 인상, 1.5%~1.75%까지 기준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가파른 금리 상승은 가계부채 폭탄의 폭발과 부동산·자산 거품의 붕괴라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급격한 금리 인상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이어졌다. 일본의 경우, 중앙은행이 1980년대 말 2.5%까지 낮춘 기준금리를 1990년 8월에 6%까지 급격하게 올리면서 부동산 거품 붕괴가 발생했다. 미국의 경우, 2003년 1%였던 기준금리가 2006년 5.25%까지 오르면서 집값 하락과 가계 연쇄 부도, 은행 부도로 이어지면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다.
지난해 기준금리가 0.5%에서 1%로 오른 한국은 이미 주택시장의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지난해 7~9월에만 해도 ‘15년 만의 최대 폭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열됐던 주택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은행은 대출을 줄이고 기존 대출금의 상환을 서두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점 근처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마련을 한 사람들은 급속한 자산 하락에 더해서 원리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부채 위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 민중의 삶이 나아질까? 되레 더 나빠질 것 같아서 걱정이다. ‘대통령을 잘 뽑아서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생각 자체를 아예 버려야 한다.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인물을 바꿔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과 착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22년 1월 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