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공 챌린지’와 55공약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20대 대선은 사상 최대의 ‘비호감’ 대선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그 양상이 갈수록 가관이다. 거대 양당 후보들이 마치 비호감 부추기기 경쟁을 벌이는 것 같다.
비호감 조장을 주도하는 집단은 단연 국민의힘이다. 정치검찰의 상징 윤석열 후보에게 기대할 건 애당초 없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무능하고 한심한 후보임이 속속 드러남으로써 지지율이 추락하자, 급기야 ‘멸공’까지 등장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멸공, #반공방첩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올리자 윤 후보는 즉각 호응하여 ‘멸공 챌린지’에 앞장섰다. 윤 후보는 신세계 계열사인 이마트를 방문해 멸치와 콩(멸·콩), 달걀과 파(달·파)를 사는 사진을 올렸다. 나경원 전 의원, 김연주 상근부대변인 등이 잇따라 인증샷을 공개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멸치, 콩 반찬을 먹는 모습을 올렸다.
‘반공’도 아니고 ‘멸공’이라니, 시대는 2020년대인데 국민의힘의 정치는 1950년대 냉전 시대로 퇴행하고 있다. 70년을 거슬러 두 세대 전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20~30대 지지율을 회복하는 정책이란 말인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시대착오적 퇴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윤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아예 남녀차별을 제도화하여 전근대 봉건시대로 되돌아가자는 말인가. 노골적으로 혐오와 비호감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데 앞장서는 자가 만일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어떤가. 이재명 후보는 종합 국력 세계 5위(G5)를 목표로 국민소득 5만 달러를 이뤄 국민 대도약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이 후보는 지난 4일 오전 경기도 광명시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정부는 코로나19, 저성장·양극화, 기후위기와 미중경쟁 등 안팎으로 직면한 4대 위기를 당당하게 극복하고 국민 대도약 시대를 열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재명 후보의 ‘55’(국력 세계 5위·국민소득 5만 달러) 공약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747’ 공약을 연상시킨다. 연평균 7% 고성장·국민소득 4만 달러·국력 세계 7위라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공약이었던가. 만일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력 세계 5위·국민소득 5만 달러를 달성한다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에 버금가는 위대한 영도자로 추앙되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허풍을 쳐도 분수껏 해야지, 감옥에 있는 이명박이 앙천대소할 노릇이다. 이게 어디 실현 가능성이 1%라도 있는 공약인가. 한마디로 국민을 우습게 보고 우롱하는 처사다. 황당무계한 공약은 비호감을 조장할 뿐이다.
55 공약이 747 공약을 연상시킨다는 말이 나오자 이재명 후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747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소리였다. 거기에 비교는 안 해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55 공약은 747 공약보다 더 부황한 헛소리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재명 후보가 이명박과 비교되는 것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후보는 줄곧 자신의 정치철학이 실용주의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실용주의는 이명박이 15년 전에 내세웠던 구호였다. 이러니 20대 대선이 갈수록 더 비호감일 수밖에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이재명 후보의 55 공약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가당치 않은 주장인지 살펴보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두 달 연속 한국 경제의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KDI는 9일 발표한 ‘1월 경제동향’에서 “우리 경제는 완만한 경기 회복세가 유지되고 있었으나, 최근 방역조치가 다시 강화되고 대외 수요의 개선세가 약화하면서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최근 수출과 내수가 동반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수출이 6445억4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였지만 12월 무역수지는 20개월 만에 5억9000만 달러 적자였다. 내수 부진도 뚜렷하다. 12월 소비심리지수가 전달보다 3.7포인트 떨어졌고, 같은 달 신용카드 매출도 부진했다.
미국의 조기 금리 인상 및 긴축이 예고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예상보다 빨리 올리는 것을 넘어 시중의 돈을 걷는 ‘양적 긴축’에 나설 채비를 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미국이 이르면 3월쯤 돈줄 조이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주 이틀 연속 달러당 1200원대로 뛰어올랐다.
미국에 앞서 지난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올린 한국은행은 14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를 연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이 큰데, 그러면 연 1.25%로 높아진다. 기준금리가 올라가면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위험해진다.
정부가 돈을 풀어 인위적으로 경기를 유지하는 양적 완화 정책과 저금리 정책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빠르게 치솟는 물가와 인플레이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제호황의 결과로 나타나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양적 완화로 막대한 돈을 찍어낸 결과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은 매우 위험하다. 경제불황, 인플레이션, 자산 거품 붕괴라는 3가지 위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암울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경제위기의 모순이 격화되면 위기 탈출을 위한 패권경쟁이 가열된다. 그리고 경제적 패권경쟁은 정치적·군사적 패권경쟁으로 번지게 마련이다.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미·중 사이에 긴장이 격화되고, 우크라이나 접경에서 미·러 간에 전운이 고조되고 있는 배경이다. 미·중 간의 대립갈등이 격화될수록 그 틈바구니에 낀 한국의 선택지는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중국 봉쇄 압박이 강화되자 임기 후반기의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로 기울었으며, 한국은 최대교역국 중국과의 관계에서 외교적 난관에 봉착해 있다. 숭미사대주의가 골수에 박힌 수구반동 세력은 이때다 싶어 반중·혐중 감정 부추기기에 앞장서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지난달 28일 문재인 정부의 ‘중국 편향 정책’ 때문에 “한국 청년들 대부분이 중국을 싫어한다”고 매도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 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사진이 들어간 기사와 함께 ‘멸공’ 태그를 올렸다.
이처럼 국내외 정세는 그 어느 해보다 험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끊임없는 변이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되고 일상이 회복될 전망은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국에 이재명 후보가 55 공약을 들고나온 것은 너무나 뜬금없고 황당하다. 현실 인식이 안이할 뿐 아니라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함으로써 가뜩이나 비호감 대선을 더욱 비호감으로 전락시키는 것밖에 안 된다.
이재명 후보는 ‘위기에 강한 유능한 경제·민생 대통령’을 표방하기 전에 현실 진단부터 ‘제대로’ 하기 바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대책위는 지난달 29일 ‘앞으로 제대로’, ‘나를 위해 이재명’이라는 새 캐치프레이즈와 후보 슬로건을 발표했다. 이 후보의 55 공약은 이명박의 747 공약보다 더 허무맹랑한 공약이며, 실현 가능성이 영이다. ‘앞으로 제대로?’ 전혀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나를 위해 이재명?’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 이재명 후보 자신을 말하는 것인가. 비호감엔 끝이 없다. (2022년 1월 1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