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경쟁과 기준금리 인상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16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다시 짓는 서울’ 공약을 발표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5년 임기 내에 서울에만 신규주택 40만 호를 공급하고 역세권 첫 집으로 10만 호를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수도권 도심 철도와 경부선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지하화하고, 신분당선은 서울 서북부 지역까지 연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7일 윤 후보는 광역급행철도(GTX) 기존 노선 연장 및 3개 노선 추가건설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파주 운정에서 동탄까지 연결하는 A노선, 양주 덕정에서 수원까지 연결하는 C노선을 모두 평택까지, B노선은 춘천까지 연장한다는 계획이었다. 신설 노선으로 김포에서 팔당까지 연결하는 D노선, 인천에서 남양주까지 수도권 북부를 연결하는 E노선, 수도권 외곽 순환선인 F노선을 발표했다.
겉으로 보기엔 교통 공약처럼 보이지만 실은 집값 올려주겠다는 공약이다. 기존 GTX 건설 계획의 수혜를 입지 못한 수도권 지역의 집값을 올려주겠다는 것이다. GTX 신설 공약은 GTX 노선 불발 지역 주민들에게 토지 불로소득을 약속하는 것으로, 표를 얻기 위하여 집값을 올려주겠다고 현혹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공약이다. 최근 수도권 부동산 상승추세가 꺾이고 하향 안정화로 들어서고 있는 시점인데, 다시 수도권의 집값이 요동칠까 무섭다.
수도권뿐 아니다. 윤 후보는 15일 부산에서 “화끈하게 가덕도 신공항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겠다”며 부산·울산·경남을 잇는 GTX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충청·강원 등에도 대규모 철도 건설 등 개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다간 ‘다시 짓는 서울’이 아니라 온 나라의 전 국토가 공사판으로 뒤바뀌게 생겼다.
윤 후보는 11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연 신년 기자회견에선 “전 국민을 대상으로 부모급여를 도입해, 아이가 태어나면 1년간 매월 100만 원의 정액 급여를 받게 하겠다”고 밝혔다. 부모급여에 필요한 예산은 약 3조12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재정부담 문제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윤 후보는 재정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고 일축했다.
윤 후보의 공약은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표를 위해서라면, 당선을 위해서라면 무슨 공약인들 발표 못 할 게 있겠느냐는 식인데, 공약의 이행에 소요될 예산(재정)에 대한 명확한 대책도 없이 일단 질러놓고 보자는 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하긴 윤 후보가 한 말이 있긴 하다. 지난 2일 소상공인 피해 보상 추경과 관련해 ‘당선되면 하겠다고 하는데, 낙선하면 안 하겠다는 것인가’라는 지적에 대해, 그는 “공약이란 것이 다 그런 것 아닌가”라고 답한 바 있다.
2021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재정점검보고서에서 선진국 대부분은 부채비율이 낮아질 전망이지만, 일부 국가는 계속 상승할 예정이라면서 대표적인 예시로 한국을 들었다. 보고서에 의하면 2026년까지 5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 증가치는 한국이 15.4% 포인트로 선진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선진국 35개국 평균은 –3.0% 포인트다. 물론 이는 미국, 일본, EU 회원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부채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정부 부채 증가 속도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국회예산정책처의 ‘2021~2030년 중기재정전망’ 보고서도 정부 부채의 급증을 우려하고 있다. 보고서에 의하면 현행과 같은 정부지출 기조를 이어가면 2030년 국가채무가 2200조 원에 이른다는 전망이었다. 보고서는 2022년 나랏빚이 1000조 원을 넘은 뒤 2029년 2000조 원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대선후보들이 경쟁적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면 정부 부채 증가 속도가 한층 가속화될 게 빤하다.
‘일단 지르고 보자’식 퍼주기 공약 경쟁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거대 양당이 동조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13일 유튜브 영상에서 “윤석열 후보님, 우리 오랜만에 통한 것 같습니다”라면서, 윤 후보가 최근 공약한 ‘병사 봉급 200만 원’ ‘전기차 보조금 대상 확대’ 등이 원래 자신의 공약임을 상기시켰다.
이 후보는 같은 날 서울 노원구 상계동을 찾아 “용적률을 500%까지 높일 수 있게 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이는 윤 후보가 지난해 내놓은 ‘역세권 첫 집’ 공약과 비슷하다. 최근 정부가 밝힌 14조 원 규모의 코로나 지원 추경을 놓고도 윤 후보가 “50조보다 더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 후보는 “당장 협상하자”고 즉각 호응해 나섰다.
주택 공약도 마찬가지다. 이 후보와 윤 후보는 집값을 잡겠다며 각기 250만 호 주택공급 대책을 발표했다. 이 후보는 이 중 100만 호를 ‘기본주택’으로 지어 일반에 공급한다는 건데, 한 채에 평균 3억 원 정도 건설비가 드는 걸 고려하면 약 300조 원이 필요하다. 윤 후보도 250만 채를 임기 중 공급하고 그중 30만 채는 ‘청년 원가주택’으로 공급하겠다고 했다. 약 90조 원의 재정이 소요된다. 대규모 재정을 투입한다는 점에서 두 후보의 주택정책에서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
반면에 한국은행은 돈줄을 조이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4일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려 연 1.25%로 결정했다. 기준금리가 5개월 새 0.75% 포인트 올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는 기준금리는 앞으로도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가 연 1.5%로 된다고 해도 긴축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혀 추가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고 추가 금리 인상까지 시사하는 건 인플레이션과 금융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대비 2.5%에 달해 2011년(4.0%)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치(2%)를 훌쩍 넘었고, 작년 12월에는 3.7%까지 치솟았다.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금융 불균형 우려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은 1845조 원으로, 1년 전보다 9.7% 늘었다. 지난해 2분기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2%로 조사 대상 36개국 중 1위였고, 증가 속도도 1위였다.
한은이 서둘러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은 미국 등 주요국들이 초저금리와 돈 풀기 등 부양책을 철회하고 있어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 종료가 예정된 오는 3월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할 전망이다. 예상보다 금리 인상 속도를 높여 연내 4차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작년 12월 소비자물가는 40년 만의 최대 폭인 7%나 상승하여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대 양당의 대선후보들은 다가오는 경제위기와 민생의 어려움 따윈 안중에도 없다.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는 기준금리 인상엔 아예 관심조차 없고 포퓰리즘 공약 경쟁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김건희 7시간 통화’가 양당의 최대 관심사다. 미쳤다.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고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을 태세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영혼을 팔고 나면 인간에게 무엇이 남는가. 영혼이 없다면 인간이 짐승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런 영혼이 없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것은 나라의 비극이고 민중의 불행이다. (2022년 1월 1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