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코뿔소와 돈 룩 업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주식투자는 계층과 세대를 초월한 관심사다. 개인 투자자는 2016년 490만 명에서 2019년 614만 명까지 늘었고, 2020년에는 300만 명 급증한 919만 명이 됐다. 작년 말 기준 개인 투자자 수가 1000만 명을 훌쩍 넘었을 터라 경제활동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주식 투자자인 셈이다. 삼성전자 개인 소액 주주 수도 지난해 2배 이상 급증했다. 삼성전자 개인 소액 주주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570만 명으로, 2020년 말(254만 명)보다 316만 명 늘었다.

전국의 고등학교에 주식투자 동아리가 번져가고, 중학생들도 투자자로 나서고 있다는 소문도 빈말이 아닌 것 같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내 주식 계좌 수 증가율(전년 말 대비)은 10세 미만이 151.7%로 가장 높았고, 10대(126%)와 20대(78.1%)가 뒤를 이었다. 특히 20대 계좌 수는 249만2000여 개로 60대(249만1000 개)를 넘어섰다. 2016년 말 20대 계좌가 31만7000여 개로, 60대 계좌(106만6000여 개)의 3분의 1 수준이었던 데 비하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주식 투자자들에겐 설연휴가 그리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휴일이 아닐 듯하다. 새해 첫 달엔 주가가 오른다는 게 증시의 경험 법칙이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코스피는 1월 마지막 주식 개장 날인 28일 종가 기준 2663.34로 마쳐 지난해 말(2977.65)보다 314.31포인트(10.55%) 하락했다. 1월 수익률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급습했던 지난 2008년 1월(-14%) 이후 가장 큰 하락률이다. 지난해 7월 최고점 3305.21에 대비하면 20%나 추락했다. 코스피가 2500까지 밀릴 수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미국의 금리 인상 예고가 주가 하락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25~26일(현지시간) 올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 인상과 양적완화 종료 방침을 명확히 했다. 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에 나선 제롬 파월 의장은 오는 3월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포함해 향후 매 회의마다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인상하는데 이어 양적긴축에도 나설 전망이다.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에 대해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연준 의장으로서 지금까지 발언 중 가장 매파적”이라고 평가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도 “전반적으로 매파적인 톤을 유지했다”면서 “금년 중 금리 인상이 4회 이상일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향후 시장이 금년 중 6~7회 인상을 반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통화정책 목표는 물가 안정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7.0% 상승하면서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이 6개월째 6%대를 이어가다가 마침내 7%대로 올라선 것이다. 연준의 관리 목표치인 소비자물가상승률 2%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연준이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도 도미노식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는 영국이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지난달 3년 4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15%포인트 인상했다. 작년 11월 영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1%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자 금리를 올린 것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새 4.8% 상승해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캐나다도 3월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칠레 중앙은행이 26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4%인 기준금리를 5.5%로 1.5%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20년 만에 최대 폭의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칠레의 작년 물가상승률은 7.2%다. 작년 6월까지만 해도 0.50%였던 기준금리는 불과 7개월 만에 5%대를 훌쩍 넘어섰다. 멕시코는 작년 6월부터 최근까지 5차례 연속 금리를 올려 현재 기준금리가 5.5%에 달한다.

“유동성 파티가 끝나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우리가 맞닥뜨릴 충격의 폭과 깊이를 가늠하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 지난 25일 열린 금융발전심의회 모두발언에서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던진 말이다. 그는 “2022년 새해엔 경제·금융시장이 불확실성과 변동성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긴축 시계가 앞당겨지면서 과열된 자산시장의 조정 가능성이 커지는 중”이라며 이렇게 경고했다.

하지만 여러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식시장에서는 ‘유동성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IPO(기업공개)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기관투자자 수요조사 경쟁률은 ‘2023대1’을 기록했는데, 주문 금액을 모두 더하면 1경5203조 원에 달한다. 일반투자자 대상 청약에는 무려 442만4470명이 참여해 114조 원이 넘는 증거금이 몰렸다.

국내 기업공개 사상 최대의 기록을 세운 LG에너지솔루션은 상장과 동시에 SK하이닉스를 제치고 코스피 시가총액 2위에 올라섰다. 27일 종가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의 시총은 118조1700억 원으로, 기존 2위였던 SK하이닉스(82조6283억 원)를 제쳤다. LG에너지솔루션을 업은 LG그룹 시총도 120조 원대에서 230조 원대로 뛰면서 시총 기준 SK그룹(180조 원대)을 제치고 2위가 됐다. 1위는 삼성그룹(670조 원대)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성장성 자체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긴축 전환으로 대다수 성장주가 급락세를 보인 가운데 천문학적 자금이 몰리며 과열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시가총액이 118조 원이나 되지만 순이익은 1조 원이 안 된다. ‘유동성 파티’의 후유증이 걱정이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시중금리 상승은 부채 이자 증가로 이어져 경제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가계·기업 부채의 합) 비율은 219.9%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9.4%포인트 상승했다. 1975년 통계편제 이후 역대 최고치다. 여기에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등 금융지원 조치도 3월 말 종료될 예정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자영업자 부채는 887조5000억 원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자영업자 만기연장 금액은 115조 원, 원금 유예 12조1000억 원, 이자 유예 5조 원이다. 3월 이후 대출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이자 자산운용사 GMO의 공동창업자인 제레미 그랜섬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미국 증시 100년 중 지금이 네 번째 버블”이라며 “지난 2년 반 동안 밈 주식, 전기차 관련주, 암호화폐, NFT 등에 대한 광적인 투자행태는 2000년 닷컴버블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슈퍼버블이 터질 경우 S&P500 지수가 향후 45% 가까이 폭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회색 코뿔소’의 경고다. 회색 코뿔소는 지속적인 경고로 인해 사회가 인지하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을 뜻하는 말이다. 코뿔소는 덩치가 커서 달려오면 땅이 흔들릴 정도라 코뿔소가 달려온다는 걸 쉽게 알 수 있고 코뿔소와 부딪히면 위험하다는 것도 안다. 예상할 수 있고 사고가 터지면 파급력도 크지만 무시하다가 통제 불능의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사태, 회색 코뿔소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쳐다보지 말라고 한다. 이 영화는 6개월 뒤 거대 혜성과 충돌해 지구가 멸망할 위기에 처해있다고 과학자들이 다급하고 간절하게 경고하지만, 선거에만 신경 쓰는 정치와 대중의 엿보기 심리를 자극하는 언론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자연스레 40일도 안 남은 우리나라의 20대 대선을 떠올리게 만든다. 회색 코뿔소를 외면한 채 지지자에게 애써 보지 말라는 ‘쇼’를 한다고 현실이 달라지는가. (2022년 1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