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통같은 동맹’보다 ‘더 깊고 강력한 동맹’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11일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대선후보 2차 티브이(TV)토론이 열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더힐’ 군사잡지에서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네 가지 중에 한 원인이 윤석열 후보라고 한 것 보셨습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그 저자는 국제정치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하는 분으로 유명한 분인데 이런 대선 토론에서 그런 분의 글을 인용한다는 것이 참 어이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대선 후보 티브이토론에서 언급된 글은 한국계 미국인인 최승환 교수가 지난 9일(현지 시각) 더힐(The Hill)에 기고한 것이다. 최 교수는 11일 토론에서 윤 후보가 자신에 대해 ‘국제정치학계에서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엉뚱한 분’이라고 말한 것은 “제 개인에 대한 인격 모독성 발언”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2004년부터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교(UIC)에서 국제정치와 한국정치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정치학과 종신교수”라고 밝히면서, “제가 ‘국제정치학계에서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학자라면, 윤 후보를 돕고 있는 한국정치학자들은 어떤 수준의 학자들로 보고 있는지 윤 후보에게 묻고 싶다. 윤 후보의 외교 안보 정책을 돕는 학자들 중에서 학문적 업적도와 논문인용지수가 저보다 더 높은 분이 있는지 팩트체크해서 꼭 알려주기 바란다”라고 항변했다. 아울러 “더힐이 미국 정치일번지인 워싱턴디시에 거주하는 정치인과 거주인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인 만큼 가장 전문화된 기고문들만을 엄선하여 출판한다는 것은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더힐은 “미국에서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중립적인 매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본분이며, 그 주장에 대하여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다. 만일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비판의 논거를 제시하고 반대의 의견을 밝히면 될 일이다. 그런데 윤 후보는 티브이토론에서 최 교수의 주장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않은 채 마치 언급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일방적으로 최 교수를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 취급하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국제정치학계에 대하여 자기가 뭘 아는 게 있다고 “국제정치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하는 분으로 유명”하다고 아는 체하면서 함부로 인격을 매도하고 모욕한단 말인가. 윤 후보의 외교 안보에 대한 식견 이전에 인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윤석열 후보의 외교 안보 정책은 2월 8일 미국의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 기고문에서 읽을 수 있다. 이 매체는 미국외교협회(1921년 설립)가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잡지로, 1922년 9월 창간돼 국제 외교 안보 분야에서 상당한 명성과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 기고문을 통해 윤 후보가 어떤 외교 안보 정책을 주장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윤 후보는 “한·미 양국 간 대북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견해차는 한미동맹을 표류하게 만들었다. 한국이 대북협력을 중시한 반면, 미국은 북한의 핵 위협과 인권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 남북대화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여러 정책수단 중 하나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대화는 그 자체가 유일한 목표가 돼 버렸다”라고 작심 비판했다.

윤 후보의 주장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대북협력을 중시하고 남북대화에 치중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가 뒷전으로 밀리고 한미동맹이 표류하게 된 것처럼 읽힌다. 과연 그런가. 사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문재인 정부의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정상회담 합의문은 한반도 비핵화를 핵심 과제로 명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역대 어느 정부의 남북대화와 남북합의문에서 과연 4·27 선언과 9·19 합의처럼 비핵화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 적이 있었던가. 윤 후보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가짜뉴스’와 다를 게 없는 거짓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협력 중시로 한미동맹이 표류하게 되었다는 윤 후보의 주장은 더욱 황당무계하다. 사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한미동맹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한미동맹에 발목이 잡혀서 남북 정상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대북협력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정부의 요구로 2018년 11월 출범한 ‘한미워킹그룹’이다. 미국은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대북협력사업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을 걸고 발목을 잡았다. 오죽했으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워킹그룹이 비핵화와 관련해서 창의적인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고, 주야장천 남북관계에 대해서 된다, 안 된다는 얘기만 한다”면서 “그러니 신 조선총독부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라고 일갈했겠는가. 윤석열 후보의 강변처럼 대북협력 중시로 한미동맹이 표류하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의 ‘깨알 지시’ 간섭과 통제로 남북관계가 후퇴하고 파탄에 이른 게 오늘의 현실이다.

지난해 5월 21일 발표된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동맹이 그야말로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자평한 공동성명의 첫 문단은 “철통같은 동맹에 대한 공약의 재확인”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하여 비난 일색이던 수구 언론들조차 5·21 공동성명을 이례적으로 칭찬했을 정도였다. 수구 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동맹이 복원됐다”라고 반색하면서, ‘한미동맹 강화 재확인한 정상회담, 실천으로 이어지길’(중앙일보),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길 기대한다’(조선일보)라고 사설을 통해 환영을 표시했다.

5·21 공동성명은 “우리의 대북 접근법이 완전히 일치되도록 조율해나가기로 합의하였다”라고 밝혔다. 말이 좋아 “조율”이지, 그게 어디 조율인가. 한미 간에 조율은 없다. 미국의 “승인”이 있을 뿐이다. 승인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직접 한 말이다. 2018년 10월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한국 정부가 (대북) 제재 해제를 검토한다는 보도가 있다’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그들은 우리의 승인(approval) 없이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며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고 거듭 확인한 바 있다. 미국의 승인은 말로 그치지 않았다. 트럼프의 이 발언 직후 한미워킹그룹이 설치되었던 것이다. 한미워킹그룹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남북관계와 남북 협력, 그리고 그에 따른 대북 제재 관련 사안을 “조율”하기 위해 만든 협의체다.

그간의 조율로도 성이 차지 않는다면 얼마나 더 “완전히 일치되도록 조율”을 해야 한다는 말일까. 대북정책에 관한 한미 간의 “완전 일치의 조율”에서 말 그대로 “철통같은 한미동맹의 재확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는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에서 “견고한 한미동맹을 구축하는 것이 곧 한국 외교의 중심축을 튼튼히 하는 것”이라면서 “더 깊고 강력한 동맹”을 역설했다. 윤 후보는 “한국은 미국과 포괄적 전략동맹을 구축해야 하며, 양국의 협력 관계는 21세기의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도록 진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후보가 “더 깊고 강력한 한미동맹”이라고 하면서 내세운 정책들(개인정보 보호, 공급망, 공중 보건 협력, 첨단반도체, 배터리, 사이버 장비, 우주여행, 원자력, 제약, 녹색기술 분야 협력)은 지난해 5·21 공동성명에 포함된 내용이다. 윤 후보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대미 외교 안보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그가 제시하고 있는 정책들을 살펴보면 아무것도 달라진 내용이 없이 그저 ‘한미동맹의 강화’만을 동어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한미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일방적인 상하관계이지 서로 평등한 관계가 아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전시작전지휘권이 없다. 한미 연합사령부는 미국군이 사령관을, 한국군이 부사령관을 각각 맡고 있다. 군대 조직에서 사령관과 부사령관의 관계는 엄격한 상명하복의 관계다. 아무리 한미동맹을 ‘혈맹’이라고 미화하여도 명령하고 복종하는 상명하복의 관계가 달라지진 않는다. ‘철통같은 동맹’보다 ‘더 깊고 강력한 동맹’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더 복종하고 수그려야 한단 말인가. (2022년 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