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대선 이후이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이번 주에 20대 대선의 결과가 나온다. 4~5일의 사전투표에 1632만여 명이 참가했다. 사전투표율이 36.93%로 집계돼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종전 최고였던 20대 총선 사전투표율(26.69%)을 10% 포인트 이상 웃돌았다. 여야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대선 결과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대 대선의 결과가 나라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 중요성에 대해선 굳이 더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문제는 대선 이후이다. 오는 9일 대선의 승패가 갈린다고 해서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과제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잔치가 끝나면 요금청구서가 날아오듯이 선거가 끝나면 당선자에게 고지서가 발부될 터다. 현재 나라 안팎으로 긴급한 대책이 필요한 현안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현실화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요동치고 있다. 2일(현지 시각 기준)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 가격은 배럴당 110.60달러로 전날보다 7% 급등했다. 110달러를 넘긴 것은 2011년 5월 이후 11년 만이다. 영국 런던 거래소에서 5월분 브렌트유는 배럴당 113.94달러로 전날보다 8% 오르며 2014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역시 110달러 선에서 거래를 마쳤다. 유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록했던 배럴당 140달러 선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곡물 가격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 세계 밀 수출량의 28.5%를 차지한다. 지난해 러시아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고 우크라이나는 4위다. 우크라이나는 옥수수 수출도 전 세계의 16.4%를 차지한다. 3일 시카고옵션거래소에서 소맥 가격은 전일 대비 21.78% 급등하며 부셀(27㎏)당 12.89달러를 기록했다.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2월 이후 상승 폭만 70%에 달한다. 옥수수 가격은 부셸당 7.51달러로 2월 이후 20% 가까이 뛰었고, 대두 가격도 16.8달러로 10% 이상 올랐다.

4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40.7을 기록해 1996년 집계 시작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월 지수는 전월 대비 3.9%,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4.1% 급등했다. 2월 지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상황을 주로 반영한 것으로, 향후 지수가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광물·원자재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런던 금속거래소에서 알루미늄 선물가격은 지난달 28일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러시아는 전 세계 알루미늄 생산의 6%를 차지한다. 알루미늄 가격은 올해만 24% 급등했다. 러시아가 전 세계 생산의 11%를 차지하는 니켈도 올해 23% 올랐다. 이 밖에 전기차 배터리 등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인 리튬(71%)도 급등세다. 전 세계 생산량에서 러시아산 비율이 높은 건설·자재용 석면(65%), 반도체 제조용 팔라듐(43%), 공업용 다이아몬드(31%)도 가격이 뛰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앞으로 4~5년간 원자재 가격이 급등세를 타는 ‘슈퍼 스파이크’(‘대폭등’이란 뜻으로 원자재 가격이 수년 동안 급등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싱크탱크인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 세계 성장률을 1%포인트 낮추고, 물가상승률은 3%포인트 끌어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JP모건체이스는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완전히 끊기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이르고,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1.6% 줄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 더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통계청이 4일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5.30으로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0월 3.2%로 올라선 뒤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3%대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가 5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보인 것은 10년 만이다. 일시적인 수급 요인 등에 의해 출렁이는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하고 계산한 근원물가는 3.2%로, 지난달에 이어 3%대를 기록하면서 2011년 12월(3.6%)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2월에는 석유류와 외식비를 중심으로 가공식품, 공공요금 등 전 부문에 걸쳐 물가상승이 나타났다. 휘발유(16.5%), 경유(21%), 자동차용 LPG(23.8%) 등 석유류가 전년 동월 대비 19.4% 올랐다. 외식 물가는 생선회(9.8%), 쇠고기(8.2%) 등이 상승을 주도해 6.2% 올라, 2008년 12월(6.4%)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 밖에도 빵(8.5%) 등 가공식품이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2%대 초반에서 3.1%로 대폭 올렸지만, 이 전망에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반영돼 있지 않다. 국제 유가 상승이 국내 시장에 약 2~3주의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점을 감안하면 3월 석유류 가격 상승세는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국제 유가가 평균 100달러 수준이 계속되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1%포인트 상승하고, 경제성장률이 0.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3.1%로 전망하고 있지만, 고유가 요인만으로도 3%대 성장률 달성이 어렵고 물가가 4%대로 뛴다는 뜻이다.

대선이 끝나고 나면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예정돼 있다. 전기요금은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10.6%, 도시가스 요금은 연말까지 16.2% 인상이 예고돼 있다. 게다가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요금의 상승 추이가 이어진다면 원가 상승 폭이 커지기 때문에 추가 인상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올해 한전의 영업손실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15조 원(NH투자증권)에서 최대 20조 원(현대차증권)까지 폭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음 주 15~16일 미국의 기준금리가 인상된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제롬 파월 의장은 2일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양적 긴축을 병행할 가능성과 함께 이후엔 더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지난 1월 전년 동월 대비 7.5%까지 치솟은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더 높아질 수 있어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5일 한국 경제가 자산 거품이 꺼지기 전인 1980년대 일본과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보도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80년대 후반 일본과 현재 한국에 모두 금융 위험이 있다. 한국에선 비싼 집값이 대선에서 주요 이슈가 됐고 토지 가치가 2013년 지디피 대비 4배에서 현재 5배로 뛰었다. 일본의 문제가 정점에 도달했을 때 토지 가치는 지디피의 5.4배였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작년 9월 기준 지디피 대비 107%에 달했다. 이는 독일(58%), 미국(79%)보다 훨씬 높다. 일본의 8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의 호황기에 자산가치와 부채가 함께 증가하다가 거품이 터지며 자산가치는 사라지고 부채는 남았다.”

9일 투표가 끝이 아니다. 문제는 대선 이후이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해결해야 과제들이 나라 안팎으로 산적해 있다. 어느 것 하나도 해결이 쉽지 않은 난제들이다. 그런데 대선 이후의 정치 상황이 문제의 해결을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중 누가 집권하든 문재인 정부 초기보다 훨씬 큰 갈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 지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부정선거’를 외치는 시위가 벌어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고, ‘적폐 수사’와 ‘정치 보복’을 둘러싸고 격렬한 정치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대선 이후가 걱정이다. (2022년 3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