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감세에 여야가 따로 없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정부가 23일 올해 공동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 공시가격을 발표한다. 서울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지난해와 비슷하게 20% 안팎으로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보유세 과세표준 산정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발표에 맞춰 정부는 재산세와 1세대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일단 올해분 1가구 1주택자 보유세를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공정시장가액 비율(과세표준을 정할 때 공시가에 곱하는 비율)을 낮추거나, 보유세 산정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올해가 아닌 지난해분으로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관련 안건을 논의한 뒤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건 약과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하겠다고 공약하였다. 지난해 수준의 동결이 아닌 2020년 수준까지 낮추자는 것이다. 이 공약대로 공시가격을 2020년으로 환원하면, 올해 공시가격 상승률을 20% 정도로 예상하면 올해보다 40%, 지난해보다 20%가량 공시가격이 내려가는 셈이다. 또한, 윤 당선인은 1주택자의 종부세 세율을 문재인 정부 이전 수준으로 환원하겠다고 공약하였다.
공시가격이 2020년 수준으로 환원되고 세율이 낮아지면 현행 기준으로 올해 내야 할 세금보다 재산세와 종부세가 급감할 것으로 추산된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 노원구 전용 84㎡의 올해 예상 공시가가 9억 원대인데, 2020년 공시가는 6억3000만 원 선이었다. 공시가 2020년 수준으로 환원되면 재산세가 280만 원에서 160만 원이므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고가주택의 경우 재산세와 종부세가 급감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84㎡의 올해 예상 공시가가 21억 원대인데, 2020년 공시가는 11억5000만 원 선이었다. 2020년 수준으로 환원되면 은마아파트 1주택자의 올해 재산세는 730만 원에서 350만 원으로, 종부세는 87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급감한다. 부자일수록 더 많은 감세 특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놀라운 건, 윤 당선자만 부자 감세를 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이 1가구 1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보유세를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간사)은 지난 18일 비대위 회의에서 “1가구 1주택 실수요자의 보유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와 똑같은 주장을 한 것이다. 부자 감세에 관한 한 윤 당선자나 더불어민주당이나 하나도 다를 게 없는 한통속인 셈이다.
하긴 이번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은 1가구 1주택 소유자의 재산세 감면 기준을 공시가격 6억 원 이하에서 9억 원 이하로 올리는 지방세법 개정안을 6월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시가 10억 원(공시가격 7억 원)이던 아파트가 13억 원(공시가격 9억 원)으로 오르면 재산세가 54만 원 오른다. 집값이 3억 원 뛰는데 재산세 54만 원 더 내는 것이다. 1세대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도 공시가격 9억원에서 11억원으로 완화되었다. 법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죽이 잘 맞았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것이 조세 공평주의 원칙이다. 집값이 폭등해 불로소득이 발생했으면 그에 합당하게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 조세 정의이다. 종부세의 입법 취지는 과도한 불로소득을 사회적으로 환수하고 집값 폭등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집값이 폭등해 집 부자들이 가만히 앉아서 수억에서 수백억의 불로소득으로 폭리를 취하는데 과세 없이 방치하는 것은 사회 정의에 역행한다. 그런데 폭리를 사유화하도록 고스란히 보장해 주면서, 거기에다 세금 감세의 특혜까지 안겨준다면, 그야말로 집 부자들의 천국이 아닐 수 없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20일 국회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세제 부담 완화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겠다. 다주택자 중과세 한시적 유예, 주택 취득세 인하, 1세대 1주택 실수요자 보유세 부담 경감 등을 힘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당선자의 집 부자 감세 특혜 공약과 아무 차이가 없다. 부자 감세에 여야가 따로 없는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16%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8개국 평균 0.54%와 비교하면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2018년 기준, 조세재정연구원) 소득 불평등보다 자산 불평등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이다. 자산 불평등의 핵심 원인인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보유세 강화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차기 행정부의 책임자인 윤석열 당선자도, 입법부를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도 보유세 완화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권 교체가 이뤄져 여소야대 정국에서 행정부와 입법부가 크게 대립·충돌할 것처럼 떠들어대는 세간의 평가가 무색해진다.
한편에서 부자들을 위한 감세 특혜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이 지난 15일 ℓ당 2천 원을 돌파하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20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을 보면, 이날 오후 3시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가격은 ℓ당 2002.7원으로 집계됐다. 치솟는 기름값에 서민들은 물가 걱정, 생활고 걱정이 쌓여간다.
지난달 국제유가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한 달 새 배럴당 83.47달러에서 92.36달러로, 10.7% 올랐다. 국제유가는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에 반영되는데, 이달 셋째 주(3월 13~17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은 전주보다 132.8원 오른 ℓ당 1994.4원으로 집계됐다. 휘발유 판매가격이 한 주 만에 100원 이상 오른 것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12월 넷째 주(161.3원) 이후 처음이다.
국제 곡물 가격도 급등하는 추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2월 140.7(2014~2016년 평균 100 기준)로 1년 전보다 24.1% 올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은 국내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7% 올라 5개월째 3%대를 보였고, 생활물가 상승률은 4.1%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일 발표한 ‘최근 글로벌 경기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최근 글로벌 경제를 위협하는 위험 요인 세 가지를 꼽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주요국의 통화 긴축, 중국 경제 둔화 가능성이다. 보고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세계 경제 불확실성과 국제유가 상승세가 커짐에 따라 국내 주요 거시경제 지표에도 악영향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보고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가 되면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이 0.3%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포인트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 경상수지 흑자는 305억달러(39%)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주 기준금리를 0.25% 인상했다. 연준은 최근 물가 상승률이 7.9%까지 치솟자 올해에만 7번 금리 인상(약 1.75%포인트)을 예고한 상태다. 연준의 긴축 행보는 한국 경제에도 위협이다.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투자 자금이 안전 자산인 달러와 미국 시장으로 몰리면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고,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국내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행도 올해 2~3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키움으로써 가뜩이나 위험한 세계 1위의 가계부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윤석열 당선자는 뜬금없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로 난리법석의 소동을 일으키고 있다. 민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터무니없이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2022년 3월 2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