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덕’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급증하고, 누적 확진자 수는 1천만 명을 돌파했다. 27일 국제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에 따르면, 한국은 3월 1일에서 26일 사이 약 832만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했고, 인구 100만 명당 감염자 숫자로도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국가로 집계됐다. 사망자 수도 크게 늘었다. 유엔 인권사무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 이후 3월 19일까지 사망한 민간인이 847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에 한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가 4,175명이다.
23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일부 장례식장에선 화장장으로 옮기지 못한 시신이 안치 냉장고 밖에서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신을 안치 냉장고 밖에 두거나, 한 냉장고에 시신을 2구씩 겹쳐 넣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시신을 하루만 밖에 둬도 거의 못 알아볼 정도로 부패가 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화장장 자리가 부족하니 예약부터도 쉽지 않다. 존엄 있는 죽음과 장례는 꿈도 꾸기 어려운 참혹한 현실이다.
이처럼 참혹한 현실을 외면한 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청와대에 단 하루도 머물 수 없다’고 집무실 이전 문제로 소동을 일으키고 있다. 윤 당선인은 국정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전혀 파악조차 안 된 모습이다. 그를 지원했던 보수 언론들까지 초과권력 행사, 불통, 안보 공백, 졸속 절차라고 비판하는 지경이다. 하지만 안하무인의 독불장군처럼 집무실 용산 이전을 밀어붙이고 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6일(현지 시간) 윤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 계획을 조명하면서 “시민을 가까이 두려다 오히려 더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부임을 앞둔 대통령으로서는 인기가 사상 최저 수준”이라고 들췄다. 이코노미스트는 집무실 이전과 관련한 안보·비용 논란 등을 소개하고, 국민이 이 계획에 대해 ‘돈 낭비’,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본다고 전했다. 특히 윤 당선인이 선거 기간 그의 최우선 과제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피해 해결’을 꼽았다는 점에서 국민의 불만을 사고 있다면서 “윤 당선인이 개인적 과제를 밀어붙이는 데 정치적 자산을 소모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디어토마토가 19~20일 이틀간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8.1%가 ‘현 청와대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찬성한다’는 여론은 33.1%에 불과했다. 20일 윤 당선자가 직접 나서서 용산 이전 기자회견을 한 뒤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반대 여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25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반대(53%)가 찬성(36%)을 크게 앞섰다. (22~24일 전국 18살 이상 1,000명 조사)
이렇게 반대 여론이 높은데도 윤 당선인은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할 생각이 없다. 그는 24일 약식 기자간담회에서 ‘반대 여론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거는 뭐, 지금 여론조사를 해서 몇 대 몇이라고 하는 거는 의미가 없고. 국민들께서 이미 정치적인, 역사적인 결론은 내리신 거라고 저는 보고 있다”고 답했다. 국민의 반대 여론을 “의미가 없다”고 단칼에 무시해 버린 것이다.
취임도 하기 전에 민심을 거역하고 고집불통을 부리고 있으니 윤 당선인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일 리 없다. 리얼미터가 14일~18일 전국 유권자 2,521명을 대상으로 ‘윤 당선인 국정 수행 전망’을 조사한 결과, ‘취임 후 국정 수행을 잘할 것 같다’는 긍정 전망이 49.2%로 나타났다. 50%에도 못 미쳤다. 반면에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 전망이 45.6%에 달했다. 앞서 리얼미터가 2007년부터 대선 직후에 수행한 조사에서 국정 수행 긍정 전망치는 이명박 전 대통령 79.3%, 박근혜 전 대통령 64.4%, 문재인 대통령 74.8%였다. 한국갤럽 조사(22~24일)에서도 ‘윤 당선인이 앞으로 5년간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할 것’이란 응답은 55%였고,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은 40%였다. 비슷한 시기의 같은 조사를 보면, 2007년 12월 이명박 당시 당선인 84%, 2012년 12월 박근혜 당시 당선인 78%,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87%였다. 윤 당선인이 대통령 당선인으로서는 역대 최저의 기록이다.
오죽했으면 ‘취임덕’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까. 정권 임기 말에 나타나는 권력 누수 현상(레임덕)에 빗대어 윤 당선인이 취임도 하기 전에 스스로 레임덕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비꼬는 말이다.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 ‘허니문 기간’이라고 하여 의회와 언론에서 특별히 배려를 해주는 게 관행이다. 갓 결혼한 부부의 신혼 때처럼 비판과 질타를 자제하고 지켜보면서 일정 기간 배려해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윤 당선인은 난데없이 집무실 이전이라는 자충수를 두어 소모적인 논란을 일으키고 민심의 반발을 자초함으로써 스스로 허니문 기간을 망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국가적 중대사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국가의 백년대계로 다룰 문제를 졸속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이미 예고된 사태나 다를 게 없었다는 점이다. 윤 당선인은 정치 경력이 전무하고 정치 입문 1년도 안 돼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국정 운영을 책임질 준비가 갖춰지지 않았으며 정치 지도자로서 전혀 검증도 안 된 인물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불린다. 깜냥도 안 되는 인물이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얻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제왕적 권력에 취하여 취임도 하기 전에 덜컥 큰일을 벌여서 한바탕 법석을 피우면서 자기 권세를 과시하려고 들지 않을까.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찬반과 호불호를 떠나서, 선거라곤 이전에 단 한 번도 출마해본 적이 없는 인물이 단박에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정활동과 행정 수완 등을 통하여 정치적 자질과 능력을 검증받는 절차와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단번에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이 벌어진다면, 선거제도 자체에 심각한 맹점이 있을 터다. 현행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는 단순 다수제 방식의 선출제도이다.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는 지지율이 과반을 넘지 않아도 당선되는 제도다.
단순 다수제 선출제도가 얼마나 비민주적인 제도인가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첫 대선에서부터 명백히 드러났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여권 후보로는 노태우가, 야권을 대표하는 후보로는 김영삼과 김대중이 각각 출마하였다. 각 후보의 경쟁력 조사에 따르면, 김영삼 후보는 노태우 후보와의 일대일 맞대결에서 이길 뿐만 아니라 김대중 후보와의 일대일 맞대결에서도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노태우 후보는 다른 두 후보와의 일대일 맞대결에서 지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따라서 세 후보 중에서 당시 노태우 후보는 선호도가 가장 낮은 후보였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런 단순 다수제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140년 전에 프랑스에서 시행한 제도가 결선투표제이다.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 결과 최다득표자가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1, 2위 득표자에 대해 재투표를 실시해 최다 득표자를 당선자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법과 역사학회’의 보고서 <민주적 대표성과 대통령 선거에 관한 연구-결선투표제를 중심으로>(2017.7.)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대통령 선거의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곳은 총 89개국이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95개국 중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6개 국가에서만 결선투표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진작에 고쳤어야 할 이런 뒤떨어진 선거제도를 여태껏 그대로 놔둔 채 35년째 8번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 왔다. 20대 대선에 이르러 마침내 대통령 선거가 ‘역대급 비호감’이라는 오명을 얻고, 깜냥도 안 되는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격의 실추이고 국민의 불행이다. (2022년 3월 2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