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기 금리 역전과 ‘R의 공포’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제로 금리 시대를 끝내고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가운데 미 국채 금리가 출렁이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연준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콘퍼런스에서 연준이 너무 높아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면서, 필요하면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 이후 금리 선물 시장에서는 5월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전망이 확산했다.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해 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자 2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가파르게 올랐다. 그리고 2년 6개월 만에 장·단기 국채 금리가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 1일(현지 시각)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2.38%, 2년 만기가 2.44%로 역전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지난달 29일에도 2년물이 10년물 금리를 장중에 웃돌면서 한때 역전이 이뤄졌다. 앞서 28일에는 30년물이 연 2.55%로 떨어지고, 5년물 금리가 연 2.56%로 오르며 2006년 이후 16년 만에 처음 역전되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이상 현상이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금리가 높은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2년 안에 도산할 위험이 낮은 기업이라고 해도, 10년 후라면 그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래의 불확실성 리스크를 안게 되므로 그만큼의 위험 프리미엄으로 금리가 오르게 된다. 그래서 같은 기업이라도 1년 만기로 발행하는 채권보다는 5년 만기 채권의 금리가 더 높게 형성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경기가 조만간 나빠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확산하면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장기 채권 투자에 몰리게 된다. 그러면 장기 채권의 가격이 오르고 금리는 떨어져 장기 채권 금리가 단기 채권 금리보다 낮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을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의 신호로 여긴다.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을 경기 침체의 전조라고 하는 이유는 조만간 경기가 침체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일종의 신호라고 보기 때문이다. 단기 채권 금리가 유난히 급등한다는 것은 시장에 불안 심리가 그만큼 팽배한 상태임을 방증한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자료를 보면 1978년 이후 장·단기 금리의 역전이 6차례 발생했고 예외 없이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예컨대 2007년 6월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뒤 세계 금융 위기가 터졌다.

최근 미 국채의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7.9% 뛰는 등 40년 만에 가장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연준은 이미 지난달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고, 올해 남은 모든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0.5%포인트 올릴 것을 시사한 상태다. 제로 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넘치던 상황이 종료되고 있으니 투자 시장엔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고 미국 주도 아래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가해졌다. 러시아는 세계 에너지 생산·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또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 밀 수출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어서 밀 가격이 급등했다. 니켈, 코발트, 팔라듐 등 배터리와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금속의 생산·수출에서도 러시아의 비중이 커서 이들의 가격이 급등하고 공급 차질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2022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1.1%포인트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이 2.5%포인트 더 높아질 전망이다.

이런 요인들이 겹쳐서 경기 전망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고 단기 금리가 급등하면서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아울러 예의주시하는 부분은 금리 역전의 속도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올해 2분기 중 역전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JP모건 등은 내년 1분기에나 역전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더 빨리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하면 ‘R의 공포’가 시작된다. 여기서 ‘R’은 Recession, 곧 ‘경기 침체’다. ‘R의 공포’는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를 말하는 것이다. 경기가 침체되는 신호가 보인다면 사람들은 공포에 질릴 수 있다.

물론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다고 하여 경제가 당장 침체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투자은행 유비에스(UBS)에 따르면 금리 역전 이후 경기 침체가 나타나기까지는 평균 21개월이 걸렸다. 골드만삭스 등은 내년 말부터 경기 침체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번에는 ‘이전과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경기보다는 통화 긴축에 대한 우려가 반영됐다는 시각도 있다. 연준은 지난달 25일 “10년물과 2년물의 금리 차이에 대한 과거의 사례가 과도하게 관심을 받고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R의 공포’ 확산 차단에 나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경기 전망이 불투명하고 ‘R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인플레이션) 공포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최근 1조 달러 이상 자산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 34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2%는 가장 큰 우려로 스태그플레이션을 꼽았다. 한 달 전 응답률(30%)보다 두 배 이상 뛴 수치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오는 5일 발표되는 3월 소비자물가는 4%대 진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2월까지 5개월 연속 3%대의 고물가 흐름이었고, 3월 소비자물가에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도 반영된다. 4%대 물가 상승은 2011년 12월(4.2%) 이후 처음이다. 높은 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3월 평균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11달러로, 2월 대비 20% 상승했다. 지난 1일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1996.48원을 기록했다. 이달 다섯째 주(3.27~31) 전국 주유소의 경유 판매가격은 리터당 1919.8원이었다. 특히 경유 가격이 폭등하면서 유류비가 적게는 월 60만 원부터 많게는 300만 원까지 뛰어 화물노동자들은 심각한 생계위협에 내몰려 있다.

최근 국제 밀 가격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40% 넘게 치솟았다. 지난달 30일 기준 밀 가격은 t당 409달러(약 49만5000원)로 작년 말(283.20달러)보다 44.42% 올랐다. 곡물 가격은 3~7개월의 시차를 두고 수입단가와 외식 및 가공식품 등 물가에 반영된다. 올 하반기에 빵과 라면 등 밥상물가가 크게 뛸 전망이다. 이미 롯데제과는 이번 달부터 일부 초콜릿 과자류와 아이스크림 가격을 100원~1000원씩 올렸고, 농심도 새우깡 등 주요 스낵류 가격을 일제히 인상했다.

다음 달 새 정부의 출범이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윤석열 당선인의 지난 한 달여 행보를 보면 다가오는 경기 침체와 민생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지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윤 당선인은 서울 남대문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꼬리곰탕을 먹고, 통의동 인수위 인근 식당에서 인수위원들과 김치찌개를 먹는 등 ‘먹방 소통’ 행보를 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하여 일대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시급한 민생 현안을 내팽개친 채 정쟁을 일으킴으로써 스스로 민심의 이반을 자초하였다. 윤 당선인은 경기 침체와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진단과 대책에 대하여 아예 언급조차 없다. 과연 관심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민생이 걱정이다. (2022년 4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