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천조국’인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전쟁이 나면 <CNN>과 군수업체들은 남몰래 미소 짓는다”는 속설이 있다. <CNN>은 전쟁뉴스를 팔고 시청률이 올라가면 광고수입이 올라가서 신나고, 군수산업은 매출이 올라가고 덩달아 주가가 뛰어서 웃는다는 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마자 미국 무기 회사들의 주식 가격이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 F-35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군수업체인 록히드마틴의 주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 이후 지난 7일까지 17.6% 급등했다. 같은 기간 노스럽그루먼(19%), 제너럴다이내믹스(11.5%), L3해리스테크놀로지스(14.2%)도 강세를 보였다. 군사용 드론업체인 에어로바이런먼트 주가는 66.9% 폭등했다.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수출하는 프랑스 군수업체 탈레스의 주가는 38% 뛰었다.

군수업체들의 최고 경영진은 이런 상황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지난 1월 미국의 군수업체인 레이시온의 그렉 헤이즈 최고경영자(CEO)는 동유럽 긴장 국면에서 “국제 매출의 기회”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록히드 마틴의 CEO 제임스 테이슬린도 “거대 열강 경쟁의 개시”을 강조하면서 군비 예산 증가와 추가 매출을 기대했다. 작금의 현실은 그들의 기대를 뒷받침한다. 무기 회사의 주가는 급등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다.

이들 군수업체의 주가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 각국에서 막대한 유동성을 풀어도 꿈쩍 않던 종목이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벌이는 동안엔 비싼 무기를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지자 양상이 급변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들 군수업체의 이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주요 국가들의 군비 경쟁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27일 의회 연설에서 올해 국방비를 GDP(국내총생산)의 2%까지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1.4%) 여기에 추가로 1000억 유로(약 130조 원)의 국방기금 조성 계획도 덧붙였다. 독일이 과거 군국주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국방비 지출에 신중했던 전례를 고려하면 놀라운 반응이다. 독일의 국방비 증액 선언에 군수업체들은 환호했다. 독일 최대 방산업체인 라인메탈은 4거래일 사이 주가가 62% 폭등했다.

독일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등 다른 서유럽 국가들도 잇따라 군사비를 지디피 대비 2% 선으로 올리고 있다. 이탈리아는 현행 지디피의 1.37%인 국방비를 2024년까지 2%로 늘리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GDP 2%’는 그동안 미국이 나토 동맹국들에게 줄기차게 요구해온 군사비 증액 수준이다. 여태까지 한 번도 동맹에 가입한 적이 없는 중립 외교 성향의 핀란드와 스웨덴도 나토 가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3월 28일 백악관이 발표한 2023년 미국 정부 예산안은 군사 지출의 폭발적 증가를 예고하고 있다. 5조8000억 달러의 예산 총액 가운데 8,133억 달러가 국방예산으로 책정됐고, 이 가운데 7,730억 달러가 국방부에 배정됐다. 미 국방부 예산은 전년 대비 8.1% 대폭 인상이며 유사 이래 최고의 연간 국방예산이다. 게다가 행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최종 국방예산이 아니다. 의회가 다시 국방비 지출을 증액할 가능성이 크다. 국방비에 대한 미 의회의 비준 금액은 행정부가 제출한 금액보다 오히려 증액되는 게 통상적이다.

미국은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의 40%를 차지하며, 다른 경쟁국들을 압도한다. 미국은 1,000조 원에 달하는 군사비를 지출하여 ‘천조국’(千兆國)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내년도 미 국방예산 8,133억 달러를 한화로 환산하면 999조6758억 원에 달한다. 2023년에 미국이 마침내 천조국으로 되는 것이다.

미 국방예산 8,133억 달러가 얼마나 천문학적인 액수인지, 다른 나라의 지디피 규모와 비교하면 쉽게 이해된다. 내년도 미 국방예산을 다른 나라의 전체 지디피와 비교하면 세계 상위 20번째 지디피 강대국 수준이다. (2021년 세계 20위 스위스의 지디피 8,108억 달러) 미국 한 나라의 국방비가 세계 20위 순위의 경제 대국의 전체 지디피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지디피는 세계 지디피 총액의 20% 정도를 차지하는데, 반면에 군사비 지출은 세계 군사비 총지출의 거의 50%에 가깝다. 세계 100여 개 나라들이 사용하는 군사비 지출 총액과 맞먹는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21세기 패권 국가 미국의 천문학적 국방예산 편성 뒤에는 군산복합체라는 실체가 도사리고 있다. 군산복합체는 ‘전쟁 국가’ 미국의 감춰진 민낯을 드러내 보여준다. 1961년 1월 당시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8년 재임을 마치는 고별 연설에서 “국가의 거대한 군부집단이 엄청난 힘을 지닌 영구적 군수산업과 결탁해 모든 도시, 모든 지방의회, 연방정부의 모든 부서에 경제적, 정치적, 정신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연설이었다. 그의 퇴임 연설은 군산복합체가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고발이나 다름없었다.

아이젠하워 발언의 요지는, 미국 국민이 정치라고 착각하는 것-민주당과 공화당의 경쟁, 백악관과 의회의 대립-이 사실은 쇼에 불과하며, 실상은 군산복합체에 의해 연출되고 좌우된다는 고발이었다. 그의 고백은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과도한 군비 증강을 막지 못했는데, 그것은 군산복합체의 힘이 대통령의 통제 밖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재 우리나라로 치면 재벌만큼이나 미국 군산복합체의 힘이 막강했다는 체험적 증언인 셈이다. 군 출신의 대통령이 군산복합체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미국 정치의 실상을 고발한 것은 용기 있는 발언이었다.

브라운 대학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무기업계는 약 700명의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있다. 그중 약 75%가 연방 공무원 출신이다. 이는 모든 업계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 30년간 미 의회 군 관련 위원회에서 일했던 직원 약 530명이 무기업체로 가기 위해 사표를 냈다. 수많은 국방부의 고위 공직자와 군 지휘관 출신들이 군수업체의 고위간부와 이사가 돼 이 분야의 컨설턴트나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05년까지 3성급 이상 군 장성 중에 2년 금지 규정을 어기고 퇴직 후 군수업체로 간 사람들이 80%에 달했다. 군수업체를 위해 일하던 장성들이 정부의 고위직에 다시 채용되기도 한다. 이른바 회전문 인사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이든 행정부의 현 국방부 장관 로이드 오스틴이다. 그는 레이시온 이사 출신이다. 군산복합체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경쟁적으로 벌어지는 군비 증강이 전쟁의 위험을 줄일 수 있을까. 더 많은 군사비 지출이 해답이었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어야 맞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에 군사기지를 유지해 왔으며 수만 명의 미군이 그곳에 주둔하고 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미국과 나토의 팽창 정책이 동유럽으로 확대됨으로써 미군과 무기 시스템이 러시아 국경까지 배치되었다. 하지만 미국과 나토의 군사적 팽창과 막대한 군사비 지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지 못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과 나토의 무리한 동진 팽창 정책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초래한 원인을 제공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미국만 해도 이미 러시아보다 12배나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동맹국의 군사비를 합치면 최소 15:1로 러시아를 능가하고 남는다. 군비 증강은 전쟁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전쟁의 위험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국의 2023년 국방예산이 마침내 천조 원에 도달할 전망이다. 누구를 위한 천조국인가. 군비 증강은 전쟁 위험을 더 높일 뿐이며 군산복합체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는다. 반면에 군사비 지출이 늘어나면 교육, 의료 또는 사회기반 시설을 위한 예산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미국 시민의 복지는 더 후퇴한다는 뜻이다. 누구를 위한 천조국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22년 4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