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사면 세습이 이뤄질까?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사면론이 흘러나온다. 문 대통령 퇴임일 전날인 석가탄신일(5월 8일)을 맞아 특별사면을 할 수 있다는 뉴스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김경수 전 경남지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교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그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 사면 대상자로 거론된다.

사면론이 나올 때마다 ‘국민통합’, ‘경제위기 극복’ 등의 그럴싸한 명분이 들먹거려지곤 한다. 하지만 역대 정권이 단행했던 사면이 과연 그 명분에 부합하는 결과를 낳았을까? 여론은 부정적이다. 미디어토마토가 4월 26~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 김경수 전 경남지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경심 전 교수 등의 사면에 대해 ‘반대한다’는 응답(49.6%)이 ‘찬성한다’는 응답(30.2%)보다 훨씬 많았다.

여론이 사면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면 때마다 내거는 국민통합 취지의 명분과 달리 ‘내 편 봐주기’의 정략적 사면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 살리기’ 운운하면서 기업인의 사면을 단행했지만 정말로 그게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되었다는 근거는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반면에 기업인이 사면된 이후에 해당 기업의 실적이 되레 더 나빠지고 주가가 하락했다는 자료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예: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이후 추락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가)

사면이란 형의 선고의 효력 또는 공소권을 상실시키거나, 형의 집행을 면제시키는 걸 말한다. 사면은 근대 이전에는 일종의 은혜로서 풀이되는 사면권자의 특수한 권한이었다. 그래서 사면을 ‘은사(恩赦)’라는 개념으로 칭하는 나라도 아직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사면권은 1948년 제헌헌법에서부터 유래하는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다. 현행 헌법은 제79조에서 대통령이 사면, 감형, 복권을 명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하여 정하고 있다.

사면은 사면권자의 의중이 특정인의 사건에 대하여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한다. 사법부에 의하여 확정된 범죄자에 대한 형벌을 무력화하게 만들어 권력분립의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 특히 사면권자가 정의에 반하는 부당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면권을 남용·악용하게 되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근대 입헌 민주국가가 성립한 이후 사면제도에 대해 여러 문제 제기가 이어져 왔다. 사면권의 존재 자체에 대한 원론적 문제 제기뿐만 아니라, 특히 사면권을 행사하는 위정자가 권한을 남용·악용하는 데 대한 비판적 문제 제기가 강했다.

우리의 과거 사면 역사를 돌아보면 '대체 사면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역대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한 결과를 종합하면, △범죄가 중대하고 규모가 클수록, △범죄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사면의 특혜를 더 많이 받아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두환·노태우 등 헌정파괴 쿠데타 주범들에 대한 사면, 그리고 한국의 대표 재벌 이건희 삼성 총수에 대한 사면이다.

먼저,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사면을 보자. 대법원은 1997년 4월, 전·노에 대해 12·12 군사반란 및 5·17 내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혐의에 대해 반국가적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결 확정하였다. 전·노가 저지른 범죄의 죄목만 나열해도 그 혐의가 얼마나 엄중한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반란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등등. 대법원은 위 죄목들에 대하여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전두환에게 무기징역 및 추징금 2205억 원, 노태우에게 징역 17년 및 2628억 원을 최종 확정판결하였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12월, 전·노를 특별사면으로 풀어줘 버렸다. 대통령의 사면권을 악용하여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악의 특급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사면권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악용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실례다.

당시 김 대통령이 내세운 사면의 명분은 “대화합”, “국민단결”, “국가발전”이었다. 하지만 헌정파괴와 국정농단, 양민학살의 반국가적·반민중적 특급 범죄자를 사면하는 것이 어떻게 국민통합이란 말인가? 오히려 거꾸로 이런 사면권 행사는 국민화합이 아니라 논란과 갈등만 부추길 따름이다. “국가가 애국적 국민에게는 상을 주고 배반자에게는 벌을 줘야만 비로소 국민을 단결시킬 수 있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1943년 8월, 나치 협력자 숙청 방침을 처음으로 밝히면서 강조한 말이다.

다음으로, 삼성 총수에 대한 사면이다. 고 이건희 회장은 2009년 연말 사면·복권의 특혜를 받았다. 한 사람만 특별사면을 한 것은 헌정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고, 국경일이나 기념일이 아닌 연말 사면도 전례가 없는 초유의 일이었다. 이 회장은 그해 8월 배임과 조세포탈 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은 상태였는데, 불과 4개월 만에 사면·복권이 이뤄진 것이다. 사면권이 어떻게 악용되는가를 확인시켜주는 또 하나의 대표 사례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작품이었다. (이 대통령은 퇴임 직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등 본인 측근들도 빠짐없이 사면하였다.)

게다가 이건희 회장은 1997년 10월,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확정판결이 난 뒤에 특별사면을 한 차례 받은 바 있었다. 그러니 이 회장은 두 번이나 사면·복권의 특혜를 받은 것이다. 무소불위의 1등 재벌 삼성 총수가 아니라면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특혜가 아닐 수 없다. 삼성의 총수가 청와대의 대통령보다 더 센 최고 지존이라는 세간의 속설을 확인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일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에 의하여 특별사면을 받게 된다면? 경영권 세습으로도 모자라 삼성은 이제 사면도 세습이 이뤄지는 셈이다. 더구나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삼성물산 합병 주가조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으로 기소돼 현재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피고인 신분이다. 사면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지만, 형이 확정된 사건 이외에 또 다른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 중인 피고인을 사면하는 것은 명백한 권한 남용이다. 지금껏 그런 전례가 없다. 대통령의 통치 행위라고 할지라도 사법부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헌법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사면권의 악용은 ‘법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훼손한다. 게다가 중대범죄를 저지른 자와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은 자에게 유독 사면권의 특혜가 집중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법 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국민의 준법의식이 무너지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이 퇴임을 하루 앞두고 과연 이재용 부회장에게 사면 세습이라는 사상 초유의 특혜를 베풀고 청와대를 떠날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프랑스 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치 부역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우익의 주장을 규탄하며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남긴 말이다. 그는 치욕의 역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모든 과거의 불행은 반역을 처벌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오늘 또다시 처벌하지 않는다면, 주모자들을 처단하지 못한다면, 커다란 위험이 닥칠 것이다. 어제의 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곧 내일의 죄를 부추기는 것이다.” (2022년 5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