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성 드러낸 윤석열 정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예상했던 대로 윤석열 정부의 반동주의 성향이 드러나고 있다. 반동주의는 구체제로 돌아가려는 정치이념이며 진보주의의 반대말이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로,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공화정에서 다시 왕정으로 회귀한 부르봉 왕정복고가 대표적인 반동주의 사례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후 들어선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과거로의 퇴행을 거듭했던 반동주의 정부였다.

윤석열 정부의 첫 가석방 대상에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남재준·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 등이 선정됐다. 법무부는 지난 20일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열고 남·이 전 원장과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 등을 오는 30일 가석방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 8일 대법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불법 상납한 혐의로 남 전 원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이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을, 이 전 실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판결했다. 남 전 원장은 이와 별도로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와 재판을 방해한 혐의로 2019년 3월 14일 징역 3년 6개월을 확정받기도 했다.

가석방에 관한 규정을 보면, 징역 또는 금고의 집행 중에 있는 자가 그 행상이 양호하여 개전의 정이 현저한 때에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한 후 행정처분으로 가석방을 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다. (형법 제72조 제1항) 가석방심사위원회(위원장 법무부 차관)가 대상 명단을 검토한 뒤 적격 여부를 과반수로 의결하면 법무부 장관이 이에 대한 최종 승인을 한다. 남·이 전 원장 등에 대한 가석방 결정은 윤 정부의 ‘소통령’으로 불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최종 결재한 것이다.

남재준·이병기 등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이후 국정농단 사태의 공범으로 단죄를 받았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윤 정부가 국정농단 사범을 풀어주는 것은 적폐청산을 부정하고 촛불 항쟁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윤석열 정부가 노골적으로 반동적 퇴행을 드러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맨 먼저 한·미 군사동맹 강화를 강조했다. “핵, 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능력을 포함하여 가용한 모든 범주의 방어역량을 사용한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 확인”, “가장 빠른 시일 내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재가동 합의”,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의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 확대”,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등이다.

무엇보다 먼저, 한･미 공동성명에 담긴 내용이 무슨 말인지 파악하려면 군사‧외교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확장억제”란 무슨 뜻인가? 미국이 2002년에 발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 따르면, 확장억제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핵 공격뿐 아니라 타격정밀도가 높은 저위력 전술핵무기를 사용하여 선제 핵 공격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이번 공동성명에는 미국이 한국에 제공할 확장억제 수단으로 ‘핵·재래식·미사일 방어’가 명시되었다.

확장억제는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대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천만한 작전개념이다. 이 땅에서 핵전쟁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섬뜩하고 끔찍하다. 정작 걱정스러운 일은 ‘위험 불감증’ 현상이다. 한‧미 정상이 선제 핵 공격과 핵전쟁의 가능성을 공언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아무 일도 아닌 듯 무사태평한 반응이다.

다음으로,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의 재가동’은 또 무슨 말인가? 확장억제전략협의체는 지난 2016년 10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집권 당시 공식 출범했다. 확장억제 관련 한‧미 양국 외교·국방(2+2) 고위급 협의 플랫폼이다. 이 협의체는 북과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2018년 1월 두 번째 회의를 마지막으로 4년 넘게 중단 상태에 있다. 그런데 윤 정부 들어서 재가동을 한다는 것이다. 2018년 이전, 곧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의 정세로 돌아가는 반동적 퇴행이다.

다음으로, 한‧미 양국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확대에 합의했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의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협의를 개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 훈련이다. 예컨대 2017년 봄에 실시된 키 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에는 약 33만 명의 병력이 참가했다.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그는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전쟁 게임(war game)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트럼프는 2019년 6월 30일 김정은 위원장과의 판문점 회동에서도 훈련 중단을 거듭 약속했다. 하지만 그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빈말에 불과했다.

이번 한‧미 공동성명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북과의 외교와 대화에 대한 의례적인 수사조차 없었다. 1년 전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 성명에서는 그나마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외교와 대화를 아예 외면한 채 연합 군사 훈련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향후 남북·북미 관계가 극도로 나빠지고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가 긴장 고조로 치달을 게 불을 보듯 빤하다. 4‧27 판문점 선언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반동적 퇴행이다.

다음으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파악하려면 전작권(전시작전지휘권) 반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미국은 2007년 2월 노무현 정부에게 2012년 4월 17일까지 전작권을 반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전작권 환수 시기를 2015년 12월 1일로 미뤘고, 박근혜 정부는 환수 시기 자체를 없애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10월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는데, ‘전환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미국이 전작권을 계속 행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전작권 환수를 포기하는 각서다.

우리의 군사주권을 되찾는데 애당초 그 무슨 ‘전환 조건’을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말이 좋아 ‘전작권 전환’이지, 미국의 판단과 처분에 맡기겠다는 뜻이 아닌가? 문재인 정부는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였다. ‘전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미국산 무기를 대량 구매하고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조건’은 전작권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미국이 갖다 붙인 핑계일 뿐이라는 사실이 명확히 확인된 셈이다.

한‧미 공동성명에서 윤 대통령은 군소리 없이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해주었다. 군사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일말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전작권을 우리에게 반환하겠다고 할까 봐 내심 우려했을지도 모른다. ‘설마 그럴 리가…?’

2006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전작권 환수 추진’에 합의했다. 그런데 당시에 예비역 장성들이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대선 기간에 윤석열 후보 지지 선언을 했던 그 예비역 장성들이다. “자기 나라 군대 작전 통제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2006년 12월 21일, 노 대통령이 예비역 장성들에게 “직무유기자”라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일갈했던 질타다.

2007년 2월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2012년 4월 17일에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전작권을 환수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반동세력은 합의를 뒤엎으려고 집요하게 책동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2010년 6월 환수 시기를 미뤘고, 이어서 박근혜 정부는 2014년 10월 아예 반환 시기 자체를 없애버렸다. 윤 정부야 이‧박 정부를 계승한 정부이니 오죽하겠는가? 전작권 환수는 기약 없이 사라질 위기이다. 윤석열 정부의 반동적 퇴행이다. (2022년 5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