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와 정치 위기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15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 ‘빅 스텝’(0.50%포인트 인상)에 이어, 또다시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밟은 것이다. 자이언트 스텝은 1994년 11월 이후 28년 만이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6%(41년 만의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거세지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다음 7월 정례회의에서도 0.5%포인트 또는 0.75%포인트 추가 인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유로존 19개국의 지난 5월 물가상승률은 8.1%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인플레이션 목표치(2%) 4배 수준이다. 유럽중앙은행은 오는 7월에 11년 만에 금리를 인상하고 9월에는 상황에 따라 빅 스텝을 선택하겠다고 지난 9일 발표했다. 영국 중앙은행과 스위스 중앙은행이 16일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오랜 기간 양적완화를 고수해온 스위스마저 15년 만에 금리를 0.5%포인트 올렸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올릴 전망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한은이 올해 남은 네 차례 금융통화위원회(7·8·10·11월)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연속 인상해 연말에 2.75%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미 연준 위원들이 예상하는 연말 미국 기준금리(3.4%)보다 훨씬 낮다. 그래서 한은도 한 차례 정도 빅 스텝을 밟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투자은행 제이피(JP)모건은 “한은이 7월에 빅 스텝을 밟아 연말에 연 3%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장금리가 상승하고 대출금리도 뛰게 된다. 기준금리 상승 폭(1.00%~1.25%포인트)만큼만 올라도 올해 안에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가 연 8%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미 우려가 현실로 되고 있다. 16일 우리은행의 주담대 상품인 ‘우리아파트론’의 상단 금리가 연 7%를 넘겼다(연 5.41~7.09%). 다른 은행도 곧 7%대 진입이 예상된다. 8%대 주담대 금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경제적 충격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 가계부채의 60%가량은 주담대다. 지난 6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3%다. 조사 대상 36개국 중 가장 높았으며,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 규모보다 큰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금리가 인상되면 가계부채는 시한폭탄이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집을 산 이들은 대출금리 인상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진다.

지난 13일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직방은 주담대 금리가 연 7%로 오르면 서울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월 원리금 상환액이 전국 도시 근로자 가구 평균 가처분소득(419만 원)의 70%를 차지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올해 서울 84㎡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12억8582만 원)에 대출 기간 30년, 비거치 원리금 균등상환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 비율(LTV) 규제 상한선까지 대출받았다고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다. (주담대 상한선인 4억3716만 원을 대출받았을 경우 금리가 7%면 매달 원리금 지출액이 291만 원이다)

연준이 지난 15일 금리 인상과 함께 발표한 2022~2024년 연간 미국 실질경제성장률 수정 전망치도 충격적이다. 연준은 올해 미국 경제의 실질 국내총생산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3월 2.8%에서 불과 석 달 만에 1.7%로 대폭 낮췄다. 내년 성장률도 1.7%에 그치고 2024년에도 1.9%에 머물 것으로 수정했다. 향후 3년간 미국 경제가 1%대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경기 침체가 곧 시작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FT가 지난 6~9일 경제학자 4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데 따르면 응답자 중 68%는 2023년에, 30%는 2024년에 미국 경기가 침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응답자의 38%는 경기 침체 구간을 공식 판단하는 전미경제조사국(NBER)이 내년 상반기 중에 공식적으로 경기 침체를 선언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대다수도 내년 말까지 경기 침체를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17일 비영리 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에 따르면 지난달 10~24일 전 세계 주요 기업의 CEO와 고위 임원 75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향후 12개월에서 18개월 내에 그들의 주 사업장이 있는 지역에서 경기 침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답변이 60%를 넘었다. 응답자의 15%는 이미 경기 침체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지난해 말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는 경기 침체 위험을 예상한 CEO가 22%에 불과했으나, 반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한은은 지난 5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기존 3.0%에서 2.7%로 내렸는데, 이 수정에 사용한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올해 2.9%였다. 미국의 예상 성장률이 1.7%로 크게 낮아졌기에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도 하향 수정이 불가피하다. 기획재정부는 17일 펴낸 ‘6월 최근 경제동향’에서 “투자 부진, 수출회복세 약화 등 경기 둔화가 우려된다”면서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 및 글로벌 경기 하방 위험이 더욱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가 심각한 곤경에 처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상승)의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 증시는 공포에 휩싸이는 모양새다. 코스피는 지난 17일 기준 2440.93으로 떨어졌다. 코스피 2500선은 심리적 저항선으로 인식됐는데 그게 무너졌고, 지난해 연말과 비교해 18.02%나 하락했다. 이 같은 하락률이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코스피 -40.73%) 이후 최대 연간 하락률을 기록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걱정스러운 것은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이다. 지난 16일 윤석열 정부의 경제부처 장관들이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윤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자유, 공정, 혁신, 연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한마디로 ‘재벌특혜‧규제완화‧부자감세’의 기조이다. 새로운 게 하나도 없고 과거 보수 정부의 구태의연한 정책을 답습한 데 불과하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3고(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불황이 닥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윤 정부의 경제정책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치솟는 물가와 주가 급락 등 경제위기 상황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판국에 재벌과 부자를 위한 구시대의 낡은 정책이 웬 말인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인하하고 부동산 보유세를 낮추면 물가 안정에 어떤 도움이 된단 말인가.

윤 정부와 여당의 더 심각한 문제는 경제문제엔 관심이 없고 온통 정쟁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여당은 서해상에서 벌어졌던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을 끄집어내 정쟁으로 몰아가고,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 문재인 정부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문재인 정부 때 임명돼 아직 임기가 1년 정도 남은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겨냥해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14일 국무회의에 두 위원장더러 오지 말라고 통보하더니, 17일 윤 대통령이 직접 “굳이 올 필요 없는 사람”이라면서 노골적으로 배제 의사를 밝혔다. 경제를 살리려는 의지도 대책도 안중에 없고 정치 쟁점으로 이슈를 물타기 하겠다는 속셈이 엿보인다.

그러면서 다른 한 편에선, 경제문제를 비롯하여 중대한 국가 현안 관련 뉴스보다 대통령실 이전 기념 주민 초대 행사 소식이나 대통령 부인 관련 가십성 기사를 언론들이 대서특필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금 태평성대인가. 나라 사정이 지금 그런 쓸데없는 뉴스에 신경 쓸 만큼 한가한 상황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비정상 사태에 대해서 정부·여당은 뭐라고 답할까. 윤 대통령이 15일 출근길에 말했듯이,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라고 황당하게 둘러댈 텐가. 경기 침체가 걱정이지만 정치 위기 역시 그에 못지않게 심각하다. (2022년 6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