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치인의 토사구팽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가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라는 ‘토끼사냥’이 끝나자 두 선거의 연승에 기여했던 ‘사냥개’가 잡아먹힌 것이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위원장 이양희)는 8일 새벽 이 대표를 ‘성 상납 증거인멸교사 의혹’과 관련된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을 이유로 ‘6개월 당원권 정지’를 의결했다. 당 대표를 그만두라는 중징계 처분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두 달을 하루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이 대표는 징계 전 윤리위에 출석하면서 “대선 승리하고도 어느 누구에게도 축하받지 못했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대접받지 못했으며 지방선거 승리하고도 공격당하고 무시당하고….”라고 울먹였다. 중징계가 떨어지자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대법원 유죄판결까지 난 김성태(KT 채용 청탁) 전 의원 사건은 아직 처리조차 안 되고 있다”며 “(저의 경우) 아직 경찰 수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중징계한 것은 의아하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가처분이라든지 재심이라든지 이런 상황을 판단해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불복 의사를 밝혔다.

집권 여당 대표가 개인 비위 의혹으로 당에서 중징계를 받은 것, 그것도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한 당 대표가 강제로 밀려나는 건 초유의 사태다. 당사자인 이 대표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항변할 만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나는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 대표로 당선되었던 지난해 이맘때 칼럼을 통하여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고한 바 있다. (「이준석 현상에 대하여」_2021년 6월 14일, 「능력주의에 대한 찬양」_2021년 6월 21일)

이준석 대표는 작년 6월 전당대회에서 당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합쳐 43.8%를 득표해 당선됐다. 이 대표는 당원투표에서 37.4%를 득표해 경쟁자였던 나경원 후보(40.9%)에게 뒤졌다. 하지만 일반 국민여론조사에서 58.8%를 얻어 나 후보(28.3%)를 크게 앞서 승리했다. 국민의힘 당원들은 여전히 ‘태극기 우파’를 상징하는 나경원을 더 선호했고, 이 대표가 당심을 장악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준석은 당 대표이면서도 때로 눈엣가시처럼 취급받기도 했다.

이준석이 당 대표가 된 건 선거용이었다. 국민의힘은 당원의 70%가 50세 이상이고 영남권 당원이 55%를 차지하는 정당이다. 청년 정치인 이준석이 당 대표가 됐다고 하여 국민의힘 당원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청년 정당으로 탈바꿈할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터다. 이 대표가 당선된 것은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연전연패하여 몰락의 위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나경원 같은 인물을 당 대표로 내세웠다간 ‘수구꼴통’, ‘태극기 부대’, ‘아스팔트 우파’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할 테고, 그렇게 되면 대선에서 필패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여 고육지책으로 이준석이 선택됐던 것이다.

국민의힘은 2020년 4·15 총선에서 황교안과 나경원을 간판으로 내세웠다가 치명적인 참패를 당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나경원이 아니라 비주류 이미지의 오세훈 후보를 내세워 승리함으로써 연패를 끊고 참패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국민의힘은 여세를 몰아 다가오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당의 이미지 변신을 꾀했고 그 도구로 이 대표가 당의 간판으로 등용되었다. 대선 승리를 위한 선거용 카드로 당 간판을 바꾼 것이지, 국민의힘을 이준석의 당으로 바꾸기 위하여 그가 당 대표로 추대된 건 결코 아니었다.

국민의힘은 올해 대통령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연승을 거뒀다. 선거가 끝났으니 선거용으로 써먹었던 이 대표 카드가 폐기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는 지난달 12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제 제대로 자기 정치 한번 해보겠다”고 선언하였다. 당 일각에서 제기된 ‘조기 사퇴론’을 일축하고,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당을 만들기 위해 제 의견을 더 많이 투영시키겠다”고 도전을 한 것이다. 이 대표는 공천 등 정당 개혁을 논의하겠다는 명분으로 ‘혁신위원회’ 설치를 밀어붙였다.

그러자 당내 주류 인사들(소위 ‘윤핵관’)은 이 대표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본격화했고, ‘성 상납 의혹’ 등을 내세워서 당 윤리위 개최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이 대표는 윤리위의 징계 추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대표가 국민의힘을 ‘자기 색채가 더 강해질’ 당으로 바꾸겠다는데, ‘윤핵관’이 그것을 가만 보고 앉아있을 턱이 없었다. 당 윤리위의 징계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기세등등해 보였던 이 대표는 속절없이 토사구팽을 당했다.

당 안에서 이 대표를 편드는 의원은 없었다. ‘싸가지 없는 애’ 취급을 당했던 당 대표가 감히 자기 정치를 하겠다고 도발을 했는데, 그게 용납이 되겠는가?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은 윤리위가 열린 7일 낮에 종편방송 MBN에 출연하여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 국회의원 80%(109명 중 87명)가 이준석 대표 탄핵에 동의했다”고 털어놓았다. 다만 선거 기간이라서 이 대표를 내치지 않고 참았을 따름이었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중징계로 정치적 궁지에 몰린 이 대표가 이제 와서 “정치보복이다. 토사구팽이다. 윤리위나 윤핵관은 조폭 같다”고 하면서 반발해 봐야 당내 권력투쟁의 결과가 뒤집힐 것 같진 않다. 이 대표의 토사구팽은 자업자득의 결과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대표는 ‘정글의 법칙’을 공공연히 찬양하는 능력주의 신봉자다.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은 정글이죠. 또한 정글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습니다. 약육강식입니다. 강자가 다 먹는 세상이죠.” (이준석 저/강희진 편, 『공정한 경쟁』)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철저히 관철되는 권력투쟁에서 패했으면 자신의 무력함을 탓해야지 강자의 독식을 원망할 일이 아니다. 이 대표의 자업자득이다.

으레 선거철이 다가오면 기득권 정당들은 청년들을 동정하고 위하는 척하면서 ‘청년 팔이’를 해왔다. 청년 인재 영입 경쟁을 벌이면서 그들을 간판으로 활용하여 선거에 적절히 써먹곤 했다. 청년 명망가 몇 사람이 기득권 정당에 들어가고, 심지어 당 대표까지 된다고 하더라도 그 정당이 청년들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바뀌진 않는다. 기득권 정당들은 단지 선거 때 청년들의 환심을 사서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을 반짝 활용할 뿐이지 당을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니 선거가 끝난 뒤 토사구팽을 당하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사례가 그러하고,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경우 역시 이와 다를 게 없다.

박지현 전 위원장은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 출신으로 이재명 대선 캠프에서 디지털성폭력근절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대선 뒤 이재명 상임고문의 적극적 영입과 강력한 추천으로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박 전 위원장은 6·1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오는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혔으나 피선거권이 불허돼 출마 자체가 가로막혔다. 박 전 위원장은 7일 이재명 의원을 겨냥해 “저를 (비대위원장에) 장식품으로 앉혀 놓으신 것이냐”면서 “저를 추천하셨고 처럼회를 지휘하고 계신 이재명 의원께서 직접 답변해달라”고 목청을 높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로선 그들의 정치이념과 정책에 동의하진 않지만) 이준석이나 박지현이 청년 정치를 펼쳐보겠다고 하는 나름의 포부는 가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득권 거대 정당에 편승하는 방식으로 과연 청년 정치가 가능할까? 기득권 거대 정당이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도 아닐뿐더러, 자기 힘에 의거하지 않는 정치는 무임승차와 다를 게 없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청년 정치인의 토사구팽은 안타까운 희생이다. 청년 정치인이 선거 때만 반짝 장식품으로 활용되다가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현상이 반복된다면 청년들의 정치에 대한 염증과 불신만 더 깊어질 따름이다. 청년의 문제는 청년들이 스스로 주체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청년들이 자기 힘을 기르고 세력화를 해야 한다. 청년 정치는 오직 청년 자신의 정치세력화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2022년 7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