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도 검찰이 잡아야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물가 폭등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현재 연 1.75%인 기준금리를 연 2.25%로 인상했다. 통상적인 인상 폭 0.25%포인트의 두 배인 0.50%포인트 인상에 나선 건 1999년 기준금리 도입 이후 사상 처음이다. 앞서 4월, 5월 0.25%포인트씩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이번까지 세 차례 연속 인상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은이 금리 인상에 나선 건 치솟는 물가 급등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3일 금통위 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 것은 좀 더 명확한 신호를 보내,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을 막고 물가가 더 많이 오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통계청이 지난 5일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6% 올랐다. 외환위기였던 1998년 11월(6.8%) 이후 약 2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 기록이다. 게다가 물가는 더 가파르게 오를 전망이다. 당장 이달부터 전기·가스·수도요금이 모두 오른다. 한은의 6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지난달 3.3%에서 3.9%로 올랐다.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특히 0.6%포인트 상승 폭은 2008년 통계 시작 이래 최고 기록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기준금리가 계속 인상된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연말까지 세 차례 남은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씩 점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 간에 기준금리가 역전될 상황에 놓여있어서다. 한국(2.25%)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현재 0.75~0.50%포인트인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이달 말 0.75%포인트 인상에 나설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기준금리가 2.25~2.5%로 오르게 되고,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보다 0~0.25%포인트 높아지게 된다.
원화는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통화)가 아니다.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환율이 높아지면 수입물가가 상승해 국내 물가가 더 빨리 오르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자본 유출이 발생하고 원화 가치가 하락하며, 수입물가와 국내 물가상승의 악순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외환위기 때를 떠올리게 하는 끔찍한 시나리오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6월 말 기준 4382억8000만 달러로 한 달 전에 비해 94억3000만 달러 감소했다. 한 달 감소 폭으로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8년 11월(-117억5000만 달러) 이후 가장 컸다. 외환보유액은 2월 말 4617억7000만 달러 수준에서 4개월 만에 약 235억 달러가 줄었다. 한은에 따르면 6월 수입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3.6%나 급등했다. 미국과의 금리 역전으로 자본 유출이 우려되고, 1300원대에 진입한 원-달러 환율이 더 오를 수도 있는 사정을 고려하면 한은으로선 기준금리를 앞으로도 계속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 가계부채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중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어선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859조4000억 원이고, 이 중 변동금리 비중이 약 77%에 달한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대출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은 더욱 커질 테고, 취약차주의 신용 위험은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는 지난해 8월 이후 11개월 새 1.75%포인트 뛰었다. 금리 인상에 따라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은 총 23조1천억 원(1인당 평균 114만 원)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총재는 “연내 기준금리가 연 2.75~3.0%에 도달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연말쯤 기준금리가 3%로 인상되면 1인당 연간 이자 부담은 지난해 7월에 비해 161만 원 급증하게 된다.
물가가 올라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출금리마저 급등하면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대출 부실이 속출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대출 상환 유예조치를 종료하는 시점이 오는 9월 말로 다가오고 있다. 대책 없이 마냥 유예조치를 연장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눈앞의 위험을 우선 피하고 보자는 폭탄 돌리기가 더 큰 위험을 부를 수 있다. 다중채무자 등 취약차주의 대출 부실은 금융 위기의 뇌관이 될 위험이 있다. 금융 위기가 터진다면 경제 전반의 위기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물가를 잡고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선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고, 금리를 인상하면 부채 위기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경제가 불안하고 민생이 위기이니 민심이 뒤숭숭하다. 정부가 어떻게든 인플레를 잡을 거라는 신뢰를 줘야만 그나마 물가상승의 심리를 안정시킬 수 있을 텐데, 시장의 정부 신뢰도를 반영하는 기대인플레이션은 통계 작성 이래 최고 폭으로 상승했다. 취임 두 달 만에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급격히 잃어버린 탓이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두 달도 안 돼 30%대 초반의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연일 구설에 휘말리고 있다. 정권 초 통상적인 허니문은커녕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은 반성의 기미조차 없이 되레 국민의 분노를 부추기는 지경이다. 윤 대통령에게 고물가와 인플레이션 등에 대한 대책을 묻자 “이거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방도는 없다”라고 발언하는 식이다. 무식해서 용감한 것도 분수가 있지, 이건 정말 대책이 없는 대통령이다.
경제와 민생 문제엔 대책 없는 정부가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일은 따로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탈북 어민 북송 사건 등과 관련해 지난 6일 국민의힘이 서훈 전 원장 등에 대한 고발 방침을 밝히자마자 2시간 만에 국정원이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을 고발했다.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국정원 고발 건을 당일 서울중앙지검에 내려보낸 데 이어 7일 수사 부서에 배당하는 등 신속하게 움직였다. 이날 대통령실은 “중대한 국가범죄란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며 ‘국가범죄’라고 단정 지으면서 수사 지침(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당정이 일사불란하게 속전속결이었다.
국정원이 직전 정부의 원장들을 고발한 것부터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윤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조상준 전 검사장이 국정원 기조실장에 임명된 뒤 벌어졌으니 우연은 아닐 터다. 윤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 어민 북송 사건에 대해 “앞으로 더 진행이 되지 않겠나 싶다”,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하고 문제를 제기했는데, 한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주지하듯이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출신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도, 국정원 기조실장도 검찰 출신이다. 검찰은 하는 일이 수사와 기소다. 그런데 윤 정부에서는 검찰 출신이 고발도 하고 수사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대한민국은 검찰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는 그야말로 ‘검찰 왕국’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검찰총장 자리는 현재 두 달 넘게 공백 상태다. 검찰총장 공석을 채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찰 고위직부터 평검사까지 인사를 다 해버렸다. 한 장관은 ‘총장 패싱’ 인사로 검찰총장을 보좌할 대검찰청 참모진까지 미리 임명해 놓았다. 사실상 한 장관 자신이 검찰을 수렴청정하겠다는 뜻이다. 법무부가 11일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면서 후임 인선 절차가 시작됐지만, 새 검찰총장은 어차피 ‘식물 총장’ 노릇밖에 할 게 없다.
윤석열 정부는 검찰 왕국이고 ‘만사한통’(모든 것이 한동훈으로 통한다)이다. 그러니 시급한 현안인 물가를 잡는 일도 해결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고공행진 중인 물가를 검찰에 고발하고 검찰이 신속하게 한은과 기획재정부를 압수수색하여 속전속결로 물가를 잡으면 될 일 아닌가. 잡아다 족치고 때려잡는 일은 검찰 주특기 아니던가. 인플레이션을 잡는 검찰의 탄생이라는 세계 초유의 역사적 쾌거를 이룩할 수 있을지, 윤석열 정부의 한동훈 검찰이라면 혹시 가능할지 누가 알겠는가. (2022년 7월 1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