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지도부 실종’ 막장 드라마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우리나라 정치권은 비상이 일상이다. 원내 1, 2, 3당이 전부 비상대책위 체제다. 기이하고 황당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더욱 기가 막힌 사태가 벌어졌다. 법원이 26일 집권 여당 국민의힘은 “비상 상황이 아니다”라고, 비대위 체제에 대해 제동을 건 것이다. 지난 16일 출범한 주호영 비대위는 불과 열흘 만에 좌초하고 국민의힘은 대혼돈의 ‘비상’ 상황에 빠졌다.

정권을 창출한 집권 여당이 새 정부 출범 100일도 안 돼 비대위 체제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기이한 현상이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전국 선거에서 연거푸 승리하였다. 집권 여당이 되었으니 승리의 여세를 몰아 정국을 주도해나가야 마땅한데, 그러기는 고사하고 당이 비대위 체제로 넘어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다가 결국 집안싸움을 법정으로 끌고 갔고 급기야 지도부 실종 사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국민의힘 같은 이런 집권 여당은 본 적이 없다. 정권 말기도 아니고 정권 출범 초기에 여당이 비대위를 꾸린 것도 기상천외한 일이거니와, 비대위 구성이 민주적 정당활동을 규정한 헌법·정당법에 위배되므로 무효라는 법원의 철퇴를 받은 것도 사상 초유의 사태다.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에서 어떻게 이런 황당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나. 상상을 초월하는 하드코어 막장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은 정권교체 여론에 힘입어 대선에서 간신히 승리해 놓고 권력 다툼으로 날을 지새웠다. 대선 승리 이후 국민의힘 내부에서 벌어진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들의 비열한 권력 다툼은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당권 장악과 차기 총선 공천권을 노린 암투와 활극이 밤낮없이 펼쳐졌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지지율 추락에도 관심 없었다. 상반기 무역적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물가 폭등으로 민생이 신음하고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법원 결정 하루 만인 27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의총에서 내린 결론은 네 가지다. △법원에 이의신청 등 불복 절차 진행 △당헌·당규 정비 후 새 비대위 구성 △이준석 대표 ‘막말’ 추가 징계 △권성동 원내대표 거취는 사태 수습 후 결정 등이다. 이 결정을 보면 국민의힘은 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렸다. 반성은 없고 되레 법원과 싸울 기세다.

국민의힘은 법원의 결정을 완전히 무시했다. 법원은 국민의힘이 이준석 대표를 몰아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비상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았고. ‘당 대표와 일부 최고위원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상임전국위와 전국위를 통한 비대위원장 임명을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비대위 설치의 근거 자체가 무효라는 판단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비대위원장만 직무정지됐고, 비대위원의 법적 지위는 유지된다’라고 자기 논에 물 대기 식으로 해석하여 판결의 취지 자체를 호도했다.

이준석 대표 측은 새 비대위 체제가 현실화되면 법원 결정을 근거로 추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이 비대위의 위법성을 지적한 만큼 향후 비대위의 모든 활동이 가처분 신청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 측 입장이다. 만일 이 전 대표 측에서 앞으로 비대위원 한 명 한 명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내게 되면 국민의힘 내부의 진흙탕 개싸움은 볼썽사납게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주중에 새 비대위를 출범시키는 절차를 밟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당헌·당규 개정 시도에 대해 ‘셀프 비상 상황 연출’을 위한 꼼수라는 비난이 커질 게 빤하다. 당내에서도 반발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당 중진들은 28일 잇따라 권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했다. 조경태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권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했고, 윤상현 의원과 김태호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권 원내대표의 결단을 촉구했다. 자중지란이다.

집권 여당을 대혼란의 수렁에 빠뜨린 일차적 책임은 이 대표의 징계를 주도하고 당권을 장악하려던 세력, 곧 윤핵관에게 있다. 이 대표의 ‘양두구육’ ‘나치 탄생’ ‘신군부’ 같은 막말과 오만불손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빌미를 제공한 책임은 편법으로 무리하게 이 대표를 축출하고 비대위로 전환한 윤핵관에게 있다. 그런데 윤핵관의 배후는 누구인가. 다름 아닌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이 설치는 배경은 윤 대통령이다. 그러므로 국민의힘 사태의 최고 책임자는 윤핵관이 아니라 윤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8일 출근길 약식 회견에서 이준석 대표의 징계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으로서 당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답했다.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렸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같은 달 26일 권성동 직무대행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낸 게 공개되었고, 당무 불개입 발언은 거짓임이 드러나고 말았다. 문자 파문 사건을 계기로 국민의힘은 권 직무대행 체제에서 주호영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서둘러 강행했고, 그랬다가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지도부가 실종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결국 국민의힘을 대혼란의 소용돌이에 빠뜨린 “내부 총질”의 장본인은 윤 대통령 자신이었던 셈이다.

“내부 총질” 문자 파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겉과 속이 다른 윤 대통령의 민낯이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28일 “비대위 탄생의 원인은 윤석열 대통령의 ‘내부총질, 체리 따봉’ 문자 때문”이라며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유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의 문자로 이 난리가 났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며 배후에서 당을 컨트롤하는 것은 정직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처신”이라고 직격했다.

윤 대통령 스스로 밝힌 당무 불개입 발언을 뒤집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윤 대통령이 최근 국민의힘 전대 시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했다. 윤 대통령이 비공개 식사 자리에서 차기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연내에 치렀으면 한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에서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으나, 국민의힘 내부에선 윤 대통령의 의중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었다. 전대 시점은 차기 당권 주자들 사이에 유불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인데, 윤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했다면 노골적으로 당무에 개입한 셈이다.

또한, 윤 대통령은 25일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 참석했다. 이날 여당 의원 연찬회 자리에는 정부의 장·차관급 고위 관료 40여 명과 외청장 20여 명, 그리고 대통령실 간부들까지 총출동했다. 당정 분리 혹은 당무 불개입 원칙에 따라 역대 대통령은 여당 의원 연찬회에 가지 않고 연찬회를 마친 의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그런 관행을 깨고 의원 연찬회에 참석했다. 당무 불개입 발언이 무색해지는 행태다.

국민의힘은 당정이 대대적으로 참석한 1박2일 의원 연찬회를 마무리하면서 ‘당정 원팀’을 외쳤다. “복합적인 위기 속에서 민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 못하고 당내 갈등으로 심려만 끼쳤다”면서 비대위 중심의 단합을 강조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 법원에서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이 인용되었고, 집권 여당은 완전히 체면을 구겼다. 하지만 낯부끄럽고 창피한 일인데도 국민의힘은 반성하기는커녕 법원을 비난하는 적반하장의 후안무치함을 보여줬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정기국회 개막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지금 집권 여당 국민의힘은 지도부 실종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혼란에 빠져 헤매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자기 앞가림도 못할 정도로 무능하고 한심해 빠졌다. 국정은 표류 중이고 민생은 실종 상태다.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언제까지 지켜봐야만 할까. (2022년 8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