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감세 정부의 민생 실종 예산안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윤석열 정부의 내년 예산안이 639조 원으로 편성됐다. 올해 본예산보다 5.2%(31.4조 원) 늘었다. 정부가 내세운 내년 예산안의 원칙은 건전재정이다. 이를 위해 24조 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복지 분야(보건‧복지‧고용) 예산은 사실상 줄었다. 내년 복지 분야 예산은 226.6조 원으로 올해 217.7조 원에 비해 8.9조 원 증가했다. 공적연금 의무증가가 8.3조 원 늘어나고, 기초연금도 물가를 반영하여 2.4조 원 증가했다. 즉 내년 복지예산 증액은 공적연금과 기초연금의 자연증가분에 따른 결과에 불과할 뿐이고, 실제로는 예산이 줄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령화로 연금 수급자가 늘어나고 연금액에 물가상승분을 반영함에 따라 복지예산이 증가한 것을 두고 복지 확대라고 할 순 없다. 내년 복지예산 가운데 법률에 따라 지출 의무가 발생하는 ‘의무지출’이 11% 늘어난 반면,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재량지출’은 올해보다 5.4%나 줄었다. 그러므로 내년 복지예산은 증가한 것이 아니라 감소한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촘촘하고 두터운” 복지란다. 염치없고 뻔뻔하다.

내년 복지예산은 올해보다 4.1% 늘어 내년 총지출(5.2%)보다 증가율이 더 낮다. 내년 복지예산 증가율은 2011~2022년 복지예산 평균증가율 8.6%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문재인 정부(10.5%)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7.5%), 박근혜 정부(7.7%)보다도 크게 낮다. 게다가 지난달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5.2%다. 물가 인상을 감안하면 내년 실질 복지예산은 확대가 아니라 축소다.

내년 주택 분야 예산은 최악이다. 윤석열 정부는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을 올해 20.7조 원에서 15.1조 원으로 5.7조 원(25.1%) 삭감한 것이다. 특히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탈출을 위한 다가구매입임대에서 융자금이 5.8조 원에서 3.2조 원으로 2.6조 원 감소하고, 출자금은 올해 3.3조 원에서 내년 2.8조 원으로 0.5조 원 감소한다. 폭우로 반지하 서민들이 목숨을 잃은 게 엊그제 같은데, 이게 말이 되는가.

내년 일자리 사업 예산은 30조 원으로, 올해보다 1.5조 원 이상 줄었다. 정부가 직접 고용하는 일자리 사업 대상자 수를 줄인 탓이다. 특히 공공형 노인 일자리가 60만8000개에서 54만7000개로 6만1000개 줄어든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는 월 30시간을 일하고 27만 원을 받는데, 올해 노인 일자리 가운데 75.5%를 차지한다.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읍･면 노인의 86.4%가 공공형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의 독거노인을 방문해 손을 꼭 잡고서 정부가 “더 꼼꼼히 챙기겠다”고 했다. 도가 지나친 기만적 행보 아닌가.

반면에 내년 국방예산은 늘었다. 국방예산 증가율 4.6%는 지방교부세‧교육교부금 등을 제외한 중앙정부의 12개 지출 분야 중 외교‧통일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내년 국방예산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북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3축체계 예산이 9.4%나 증가한 것이다. 북측에는 핵·미사일 포기를 요구하면서 남측은 군비 증강을 추진하는 것은 모순이다. 남북관계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고 한반도 평화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건전재정이다. 하지만 건전재정은 능사가 아니다. 필요할 때는 적자를 감수하고 재정을 확대하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내년에는 경기 후퇴가 예상되고 민생이 더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운용과 공공지출 확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부는 본예산을 건전재정이라고 편성해 놓고 내년에 가서 추가경정예산안을 짜면 된다는 심산일지 모른다. 하지만 거짓과 기만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후과를 낳는다.

정부가 진정으로 재정적자를 걱정하고 건전재정을 운영하려면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법인세 인하 등 부자 감세 정책을 철회하여 세수를 늘리면 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바 있다. 보유세 완화를 시작으로 법인세·소득세·상속세 등 감세 패키지를 통해 향후 5년간 60조 원이 넘는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감세로 세수를 줄인 정부가 재정적자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건전재정 운운하는 것은 속이 훤히 내다보이는 기만이다.

감세 혜택은 대기업과 부자에게 집중되는 특혜다. 윤석열 정부는 종부세를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1주택자 종부세 과세 기준을 공시가격 11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올리고, 상속 주택이나 지방에 있는 3억 원 이하의 집을 보유한 일시적 다주택자의 경우 종부세를 깎아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 7월에 시행령을 고쳐 공시가격의 60%만 반영해 종부세를 부과하기로 했는데, 또다시 과세 기준을 높여서 집 부자들에게 감세 특혜를 베풀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올 6월까지 약 8만 명이 지방의 3억 원 이하 주택을 2건 이상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 일시적 다주택 소유자에게 종부세를 감면해 주는 것은 부자 감세 특혜다. 이렇게 종부세를 감면할 경우 1.7조 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내리고 중소·중견기업의 10% 세율 과세표준을 2억 원에서 5억 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법인세 6.8조 원 감소가 예상된다. 2021년 기준으로 법인세 감면 대상 대기업 103곳(전체 기업의 0.01%)이 4.1조 원의 감세 혜택을 받게 되는데, 중소·중견기업보다 많다. 법인세 감세는 대기업 특혜인 셈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7월 26일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법인세 인하가 부자 감세라는 지적에 대해 “일부 대기업만 감세한 것이 아닌 중소·중견기업에도 대대적인 감세를 한 것”이라고 답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짓말이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의 상속세와 증여세도 대폭 감면해 줄 방침이다. 부모가 회사 지분을 자녀에게 물려줄 때 상속세와 증여세를 대폭 감면해 주는 특례제도를 현재 연 매출 4천억 원 미만 기업에서 연 매출 1조 원 미만 기업까지 상향해 적용할 계획이다. 공제 한도 금액도 가업 영위 기간에 따라 400억 원부터 1000억 원까지로 대폭 올릴 예정이다. 기업인의 상속·증여세 감세가 시행되면 부의 대물림도 모자라 여기에다 또 하나의 혜택을 더해주는 셈이다.

이제 내년 예산안은 국회로 넘어갔다. 639조 원의 예산은 국민 1인당 1240만 원 꼴이다. 예산안은 우리의 삶과 직결되고 국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하고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하게 돼 있다.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회는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 세법개정을 거부하고, 민생 살리기 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 국회 의석수의 과반이 넘는 더불어민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시작부터 불길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일시적 다주택자에게 종부세를 낮춰주고 고령자 등에게 납부를 유예해주는 내용을 담은 종부세법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또한, 양당은 1주택자의 종부세 과세 기준을 공시가 11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올리는 내용의 개정안에 대해서도 ‘올해 안에 집행할 수 있도록 합의하여 처리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부자 감세에서는 두 정당이 한통속인 셈이다.

이래저래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날 판이다. 검찰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6일 출석하라고 소환 통보를 했다. 이에 맞서 더불어민주당은 이 대표의 검찰 소환이 윤 대통령의 전면전 선포라고 비판하면서 오늘(5일) 비상 의원총회를 연다. 더불어민주당은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며 맞불을 놓은 상황이다. 여야의 정쟁 속에서 민생의 실종이 걱정스럽다. (2022년 9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