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위기와 무역적자 심화, 경제동맹의 배신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이른바 ‘3고’ 현상이 민생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7%로, 7월의 6.3%보다 0.6%포인트 낮아지며 상승세가 한풀 꺾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먹거리 물가는 지난해 동월 대비 8.4% 올라, 2009년 4월(8.5%) 이후 13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작 우리가 실제 시장에서 느끼는 체감물가는 정부 발표 통계치와 한참 차이가 난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준 2%이다. 현재 물가상승률은 한은의 목표치에 비해 3배 안팎의 높은 수준인데, 물가가 하향 안정화될 조짐이 안 보이고 고물가 오름세가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라 걱정이다. 한은은 지난 8일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5~6%대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경제주체의 기대인플레이션도 상승하면서 최근 고(高)인플레이션 상황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제기된다”며 고물가의 장기화를 우려했다.

금리도 치솟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지난 6~7월에 2회 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아 한미 간 금리 역전이 벌어지자 한은도 지난달 기준금리를 2.50%까지 올렸다. 그런데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26일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인 자리에서 강력한 금리 인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하반기(9월, 11월, 12월) 세 차례에 걸쳐 높은 금리 인상을 단행하겠다는 뜻이다. 당장 다음 주에 0.50%~0.75% 인상이 예상된다.

한은도 기준금리를 올릴 예정이다. 이창용 총재는 오는 10월과 11월에 0.25%포인트씩 인상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올 연말이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가 역전되고, 최소한 미국 금리가 1%포인트 이상 높아질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환율이 상승하고 자금이탈이 발생하여 외환시장, 채권시장 등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우려가 커질 것이다.

2분기 말 가계부채 총액은 1869조 원이며, 자영업자 대출잔액도 961조 원에 달한다.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대출금리도 따라서 오르게 되고 부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높아진다. 최근 연 6%대에 이르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올해 안에 연 7%대에 진입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7%로 오를 경우, 190만 명은 최저생계비를 내면 원리금 상환을 못 하게 되고 120만 명은 건강보험료만 내도 원리금 상환을 못 하게 된다.

한은의 지난 6월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등 주택 관련 대출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56.8%이고, 주택 관련 대출을 보유한 차주의 신용대출을 포함할 경우 주택시장과 연계된 가계대출 비중은 67%에 달한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한국은 가계부채가 부동산 등 자산시장과 깊이 연결돼 있어 향후 자산시장 상황 변화가 대출 부실을 유발하면서 금융시스템의 불안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8일 한국부동산원의 주간단위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대비 0.15% 하락했다. 수도권은 0.21% 하락해 2012년 9월 10일(-0.22%) 이후 10년 만에 최대 폭 하락이었다. 거래절벽이 심각하다. 서울시의 아파트 월평균 거래량은 4000~5000건 정도인데,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서 지난 7월 거래량이 639건으로 폭락했다. 서울시가 2006년부터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저치다. 전문가들은 매물 적체가 3개월 이상 지속하면 너도나도 매물을 던지는 투매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환율은 최근 한 달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 7일 원·달러 환율은 1384.2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이 1380원을 넘은 것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쳤던 지난 2009년 4월 이후 13년 5개월 만이다. 고환율은 고물가와 고금리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유발한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상승하여 물가 상승을 유발하고 물가가 높아지면 이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게다가 고환율이 무역흑자로 이어지지도 않으니 문제다. 지난달 무역적자가 95억 달러로, 적자가 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고환율이 수출을 늘리며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이 됐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지난 8월까지 누적 무역적자는 247억2700만 달러다. 이미 연간 최고 기록인 1996년(206억2400만 달러 적자)을 넘어섰고, 지난해 동기 대비 454억 달러나 감소했다.

수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주지하듯이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은 중국이다. 지난해 대중국 수출은 전체 수출의 31.3%(홍콩 5.8% 포함)를 차지하고, 국가별 무역흑자 1위도 중국이다. 지난해 전체 무역수지 흑자는 294억 달러로, 대중 무역흑자(595억 달러)를 제외하면 300억 달러 넘게 적자였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의 무역구조는 중국에서 벌어서 적자를 메우고 전체 무역흑자를 남기는 구조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대중 무역이 적자로 돌아섰다. 중국과의 교역에서 4개월째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데, 1992년 한중수교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다.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강해지면서 수입 의존도를 벗어나 한국산 수입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에 중국으로부터 원자재·중간재와 범용 반도체 수입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한중 무역적자를 한층 악화시키고 있는 건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따른 한국의 피해이다. 미국은 중국 봉쇄 경제블록을 형성해 세계 공급망 재편을 꾀하는 한편,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정책은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전기배터리 등에서 생산기지 이전과 수출감소에 따른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게 만든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 9일(현지시간) ‘반도체과학법’을 공포했다. 이 법안은 ‘인센티브를 받은 기업은 10년간 중국에 신규투자 금지’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중국에 생산기지를 가진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에게 불리한 조항이다. 게다가 미국은 최근 최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까지 제한하고 있다. 반도체 물량의 60% 정도를 중국에 수출하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로선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지난달 16일부터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발효되었다. 이 법은 미국이 아닌 곳에서 제조하거나 중국산 광물·배터리를 쓴 전기차는 세액공제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5년께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현대차는 대당 7500달러(약 1천만 원) 혜택을 받지 못한다. 올 상반기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한 현대차는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 방문 당시 미국에 14조 원의 투자를 약속했던 현대차로선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전기차 보조금 관련 조항은 지난 7월 27일 공개됐고, 지난달 12일 의회를 최종 통과했다. 그런데 이 법이 발효될 때까지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무대책과 다를 게 없었다. 바이든 정부의 법안 처리 움직임을 몰랐을 리 없고, 알고도 제때 대응을 못 했으니까 할 말이 없을 터다. 후폭풍이 거세자 정부는 뒤늦게 뒷북을 치면서 법석을 피우고 있지만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다.

지난 5월 한미 양국 정상은 “군사·안보 중심의 한미동맹을 경제‧안보 동맹으로 격상시킨다”고 하면서 경제‧안보 협력 강화를 선언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경제가 안보고 안보가 경제”라면서 ‘철통같은 혈맹’을 강조했다. 그런데 경제‧안보 동맹 강화의 결과가 한국 반도체의 목줄 죄기와 전기차의 보조금 혜택 제외란 말인가. 술 사 주고 뺨 맞는다더니, 윤석열 정부는 바이든 정부한테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2022년 9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