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날리면’보다 심각한 문제는 한미동맹의 망상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세계 시민이나 국가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 국제사회가 연대해 그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11분간의 연설에서 ‘자유’를 21회, ‘연대’는 8회 언급했다. 자유를 앞세운 ‘가치연대’를 강조한 것이다.

자유와 연대를 강조한 윤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표방한 ‘가치동맹’의 연장선이다.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5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가치에 뿌리를 둔 한·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를 천명했다. 지난 6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한·미·일 세 나라 정상이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 사이 협력”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한·미·일 정상이 한목소리로 ‘가치동맹’을 외치고 있지만, 과연 한·미·일이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사 문제조차 원만히 해결하지 못한 채 불편한 관계인 한‧일 두 나라가 ‘가치동맹’의 관계인가에 대해선 누구나 의문을 표할 것이다. 국민 정서상으로는 한일관계는 동맹이 아니라 오히려 앙숙에 더 가까운 사이라고 해야 맞는다.

그렇다면 한미관계는 ‘가치동맹’인가? 한국 사회에서 한미동맹은 마치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치부되고 있어서 의문을 표시하는 것 자체가 금기에 가깝다. 한미동맹을 철석같이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가치동맹’이란 표현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주 상식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한국과 미국은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러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나라들은 모두 동맹을 맺고 있고 ‘가치동맹’의 관계인가? 그렇지 않다. 하물며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과 일본도 동맹 관계가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나 일본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가치를 달리하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앞세우는 나라라고 하여 전부 동맹 관계를 맺는 건 아니며, 우리나라가 동맹을 맺고 있는 나라는 미국 외에 없다.

동맹은 외교‧안보의 개념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이 ‘가치동맹’으로 되려면 한국과 미국이 외교‧안보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일치해야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외교‧안보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과 미국은 추구하는 가치가 같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로 상충한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침략적이다. 21세기에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전쟁을 벌였고 이라크를 침략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 뒤에 미국의 개입이 없는 게 없다. 미국의 전쟁을 뒷받침하는 것은 군사력이며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의 40%가 미국 몫이다. 미국은 1000조 원에 달하는 군사비를 지출하여 ‘천조국’(千兆國)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3년 국방예산이 8133억 달러인데, 한화로 환산하면 무려 1139조 원에 달한다. (환율 1달러=1400원 기준)

반면에 우리의 대외정책은 침략과 거리가 멀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은 일도 없고 그런 대외정책을 표방한 적도 없다. 우리는 외국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나라로 침략을 반대한다. 만일 우리의 국익을 위해 군사력을 동원해 다른 나라 문제에 개입하자고 묻는다면 여기에 동의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반대 여론이 압도적일 것이다.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파병한 것처럼 외국에 군대를 파견한 경우는 모두 미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이렇게 외교‧안보 문제에서 한국과 미국은 추구하는 가치가 같지 않으며 서로 어긋난다.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한‧미 두 나라가 동맹을 맺고 그것을 ‘가치동맹’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두 나라의 위정자들이 아무리 ‘가치의 공유’를 역설해 봐야 말이 되지 않은 소리고, 그저 어떻게든 국민을 기만해보려는 눈속임일 뿐이다. 윤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에 내뱉은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아무리 우겨봐야 눈살만 찌푸리게 만드는 것과 같다.

‘가치동맹’ 외교는 ‘편 가르기 외교’이다. ‘가치동맹’은 가치가 같은 편끼리 동맹으로 뭉치고 가치가 다르면 ‘왕따’로 고립시키자는 건데, 이게 정당한 외교 정책인가? 세계에는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가치관이 다른 나라들이 서로 존중하고 공존해야만 자유롭고 평화적인 국제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 다른 가치를 적대시하면서 배제하려고 하면 갈등과 충돌이 불가피해지고 국제질서의 불안정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데, 이걸 어떻게 정당한 외교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치동맹’ 외교는 원리적으로 모순일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미 파탄이 났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의 개념을 경제와 기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는데, 그건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고 국익을 우선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그동안 외교·안보에 초점을 맞춰온 한미동맹을 최첨단 기술로 확대해 ‘기술과 경제동맹’으로 외연을 확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기술과 경제동맹’의 실체가 드러나는 데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한국산 전기차가 차별받게 된 데 이어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등 핵심 전략품목까지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강요하는 미국 정부의 공세는 공격적인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강행이다. 한·미가 ‘가치동맹’을 외쳤으나, 가치가 일치하지 않고 서로 상충한다. 가치의 공유가 아니라 일방적인 미국 이익의 관철과 우리의 희생일 뿐이다. 이게 어떻게 ‘가치동맹’이란 말인가? 동맹이라 묶어놓고 미국 혼자 가치와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어떻게 동맹이란 말인가? 동맹이 아니라 종속이다.

한미동맹이 안보에서는 유효할까? 한·미 외교·국방 차관은 지난 16일 미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제3차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를 열고 북핵에 대한 확장억제 강화를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미는 “북한의 어떠한 핵 공격도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국은 또 미국의 최신 비핵전력을 포함해 핵과 재래식, 미사일방어(MD)체계 등 모든 군사적 자산을 총동원한 확장억제 강화도 밝혔다. 북이 최근 핵 선제공격 법제화를 밝힌 데 대해 강도 높은 엄포를 쏟아낸 것이다.

북은 이제 남을 전술핵으로, 미국을 전략핵으로 위협하는 상황이다. 핵전력은 재래식 전력만으로 대응할 수 없다. 그렇다고 동반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는 현실성이 없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핵우산 정책에 의존하겠다는 건데, 여의치 않다는 게 문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전략자산을 활용하는 데서 한국의 의견을 반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미국은 핵전력 운용을 우리와 협의해 결정하지 않는다.

미국의 핵우산 정책은 미국이 핵전력을 우리와 공유한다는 뜻이 아니다. 미 핵전력 운용은 전적으로 미국 정부의 소관 사항이며, 최종 결정권은 미국 대통령이 갖고 있다. 미국 핵우산에 우리의 안보를 의존한다고 치자. 유사시 미국이 자국 본토가 핵 공격을 받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대한민국을 위해 핵우산을 작동시킬까? 확장억제 강화를 소리높이 외쳐 봐야 최종 결정은 미국 정부가 내린다. 우리에겐 아무런 결정권도 없다.

한미동맹은 말이 좋아 동맹이지 미국 우선주의가 철저히 관철되는 종속관계이다. ‘경제동맹’으로 묶어놓고 경제적 이익을 수탈하는 관계인데 군사동맹인들 오죽할까? 더욱이 한국의 전시 작전지휘권까지 미국이 갖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가치동맹’과 핵우산은 망상이며 자주적인 외교‧안보 정책의 족쇄일 뿐이다. 윤 대통령의 미국 순방 외교 중 비속어 막말이 논란이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윤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한미동맹의 망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2022년 9월 26일)

※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이 무례하고 천박한 건 사실입니다. 언행이 품위 없고 무례한 건 검사 출신들 거개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감히 무엄하게 미국 대통령과 의원들에게 그런 말을…”이라고 비난하는 건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국 대통령과 의원들은 조롱해도 괜찮지만, 미국 대통령과 의원들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건가요?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에서 진짜 문제는 막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해명이랍시고 거짓말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정말 중요하고 훨씬 심각한 문제는 윤 대통령의 비속어 막말 논란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정작 윤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이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