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여당의 ‘국익’ 타령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욕설 때문에 열흘 넘게 나라가 시끄럽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 주최의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했다가 나오면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MBC를 비롯한 KBS·SBS와 종합편성채널 등 대부분의 국내언론과 해외 주요언론이 보도했다.

침묵하던 대통령실은 15시간 만에 해당 보도가 “왜곡, 짜깁기”라고 해명했지만, 그 뒤로도 계속 말을 바꿔가면서 억지 궤변으로 일관해 신뢰의 추락을 자초하였다. 처음에는 ‘이 XX들’은 미국 의회가 아니라 한국 국회를 지칭하는 말이었고, ‘바이든은’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말하더니, 그 뒤에는 ‘이 XX들’이란 말을 한 적이 없고 ‘이 사람들’이라고 말한 것을 왜곡했다고 강변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이 XX들’과 ‘바이든’조차 들리지 않는다고 맞장구를 쳤다.

가관은 윤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귀국한 후 지난달 26일 아침 첫 출근길 문답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그 부분을 먼저 얘기하고 싶다. 나머지 얘기들은….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완전히 적반하장이었다. 문제의 발언을 한 장본인이 자신의 욕설과 비속어 발언에 대해 답변을 회피한 채 유체이탈 화법으로 남 얘기하듯이 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진상 운운하였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자신의 발언에 대하여 당사자가 밝히면 될 일이지 무슨 진상규명이 필요하단 말인가?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아침 출근길에 기자가 “비속어 논란이 이렇게 장기화할 일인지 모르겠다. 유감 표명하실 생각 없나”라고 물었으나,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몸을 돌려 외면하고 들어가 버렸다. 모름지기 그런 태도는 발언의 당사자인 본인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폭로할 따름이다. 억지 그만 부리고 진솔하게 해명하고 사과했더라면 진작에 끝내고 넘어갔을 사안 아닌가? 그런데도 계속 끌고 가면서 논란을 더 키우고 전선을 확대하여 점점 더 깊이 자기 무덤을 파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 전선이 언론 탄압으로 확전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26일 저녁 MBC에 해당 보도를 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 양식에도 맞지 않는 허접함은 차치하고, 대통령실이 언론사에 이런 공문을 보냈다는 것 자체가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없던 이례적인 일이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보도를 아예 가짜 뉴스로 규정하며, 이번 논란이 대통령을 흔들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황당한 인식을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7일 ‘MBC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TF’를 구성하고 28일 문화방송에 몰려가 시위를 하더니 29일 검찰에 문화방송 사장, 국장, 기자 등을 고발했다. 그들은 짐짓 언론에도 윤리가 있고 ‘국익’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설교한다. 나아가 권성동 의원은 “문화방송은 공영방송을 자처하면서 민주당의 전위부대가 되어 국익을 해치고 있다. 이제 문화방송 민영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헛소리를 했다. 그들이 과연 ‘국익’을 언급할 자격이 있는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MBC를 특정해 겨냥한 것부터가 터무니없다. 그들은 대통령실 출입 공동취재기자단이 촬영한 영상을 두고 MBC 소속 기자가 유출했다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영상기자단이 지난달 26일 공동성명을 통해 당시 상황을 취재한 과정을 설명하며 윤 대통령 비속어 발언과 관련한 보도에 어떠한 왜곡도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했듯이, ‘아니면 말고’ 식의 허위 사실 유포와 무책임한 남 탓 공세는 그들의 이골이 난 악습이다.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현업 단체들은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여권의 대응을 언론 탄압이라고 규탄했다. JTBC·KBS·OBS·SBS·YTN 기자협회는 지난달 30일 공동성명을 내고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MBC를 상대로 보여주고 있는 각종 대응들은 결국 MBC라는 한 언론사에 대한 공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언론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여권이 총동원된 MBC 공격은 국제적 이슈로 비화했다. 세계 최대 언론인 단체인 국제기자연맹(IFJ) 아시아태평양지부는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 국민의힘이 MBC 관계자들을 고발한 내용의 기사를 공유하며 “언론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것은 언론을 협박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앙토니 벨랑제 국제기자연맹 사무총장은 “윤 대통령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하고, 기자들을 핑계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미국의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21차례나 자유라는 단어를 썼던 윤 대통령이 이제 언론의 자유를 옥죄고 있다”고 비꼬았다. 같은 날 방영된 영국 공영방송 BBC의 간판 시사 코미디 프로그램도 윤 대통령 욕설 파문을 소재로 다뤘다. 진행자가 해당 발언을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고, 이에 대한 대통령실의 해명이 무엇이었는지 전하자 패널과 관객이 폭소했다. 나라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이 무례하고 천박한 건 명백하다.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는 제쳐놓더라도, 대통령실도 ‘이 XX들’, ‘쪽팔려서’ 발언은 부인하지 않는다. 언행이 품위 없고 무례한 건 검사 출신들 거개가 그렇고, 윤 대통령 역시 예외가 아님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비속어 욕설 파문, 이어지는 사과 거부와 적반하장의 언론 탄압으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시 최저를 기록했다. (9월 30일 발표한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 24%)

정치적 궁지에 몰리자 윤 대통령은 또다시 한미동맹을 꺼내 들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행동하는 한미동맹”을 역설하고 나섰다. 그는 이날 “앞으로 정부는 한미 연합훈련과 연습을 보다 강화해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 강력히 대응하는 ‘행동하는 동맹’을 구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는 지난달 26~29일 동해에서 미국의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호 등을 동원해 연합훈련을 실시했는데, 심지어 욱일기를 단 일본군대까지 훈련에 끌어들였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이런 한미, 한미일 훈련과 같은 연합훈련을 더욱 자주 하겠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한미동맹의 망상에 대해서는 지난주 칼럼에서 다뤘으므로 더 부연하지 않는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권력이 궁지에 몰리고 통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미국 상전을 쳐다보면서 의존하려는 속성을 보여왔다. 자기 나라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여 위기를 타개하는 것이 아니라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를 끌어들여서 궁지에서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쏟았던 것이다. 골수에 사무친 친미사대주의적 습성이며 한미동맹에 대한 주술적 신봉의 반영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이 추락하면 할수록 점점 더 한미동맹의 미신에 매달릴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미국은 윤 정부를 더 얕잡아보고 무시할 것이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윤 정부의 뒤통수를 후려쳤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라의 주권을 남의 나라에 팔아먹는 매국노들이 상투적으로 갖다 붙이는 명분이 나라를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망언이다. 매국은 망국이지 그게 어떻게 구국인가? 윤 대통령은 지난 미국 방문 때 <시엔엔>(CNN)과의 대담에서 한미동맹에 대해, “우리 국익에 가장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저는 미국과의 동맹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입만 열면 ‘국익’ 타령이다. 동맹으로 포장된 예속이 어떻게 국익에 도움이 된단 말인가? 언론 탄압의 전면전을 불사하면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떠드는 명분 역시 국익이다. 정권의 이익이지 그게 어떻게 국익이란 말인가? 국력을 소모시키고 국격을 떨어뜨리며 국민을 부끄럽게 만드는 자들은 국익을 말할 자격이 없다. (2022년 10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