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불감증과 안전 무대책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11월 1~2일(현지시간) 열린다. 우리 시간으로 3일 새벽에 FOMC 성명이 발표될 예정인데, 기준금리 4연속 0.75%포인트 인상이 유력하다. 이렇게 되면 미국 기준금리는 현재 3.0~3.25%에서 3.75~4.0%로 인상되고, 한·미 금리 역전 폭이 1.0%포인트로 벌어진다.

10월 13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8.2%로, 여전히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소비자물가 중 식료품과 에너지 등 변동 폭이 큰 항목을 제외한 근원물가지수도 6.6%로, 1982년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 상무부는 9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전년 동월보다 6.2%, 전월보다 0.3% 각각 상승했다고 28일 발표했다. 연준이 가장 정확한 물가 지표로 여기는 근원 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보다 5.1% 올라 오름폭이 더 가팔랐다. (8월 상승률 4.9%) 따라서 연준이 4연속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이 유력하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0월에 이어 11월에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연말 기준금리를 연 3.5%로 보는 시장 전망에 대해서 “다수의 금통위원이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의 기준금리 역전 폭을 일정 수준 내로 유지하려면 한국은행도 11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 금리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경우 달러 유출과 환율 상승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대출금리도 인상되고 있다. 최근 국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및 신용대출 최고 금리가 일제히 연 7%를 뚫었다. 28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가 연 7.499%까지 상승했고, 고정금리도 연 7.431%까지 올랐다. 신용대출 금리도 연 5.953~7.350%로 뛰었다. 전세자금대출 최고 금리도 연 7.248%로 상승했다.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금리가 7%대로 올라선 것은 2009년 이후 13년 만이다. 한국은행이 11월 24일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경우 최고 금리가 8%대까지 치솟을 거란 예상도 무리가 아니다.

문제는 급격히 불어나는 부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다. 한국은행의 ‘2022년 9월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가계부채+기업부채)비율은 221.2%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위기징후 기준(100% 초과)을 훨씬 초과했다.

기업부채는 2476조3000억 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0.8% 증가했고, 올해 6월 말 기준 명목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16.6%로 집계됐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107.1%를 뛰어넘는 위험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10월 19일 발표한 ‘2021년 연간 기업경영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이자보상비율 1 미만 기업(한 해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갚지 못하는 기업)이 40.5%를 기록했을 정도다. 지난 5월 국제금융협회(IIF)가 발표한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부채의 증가 속도는 조사 대상 36개국 중에서 2위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기업부채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다. 국제금융협회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3%로, 조사 대상 36개국 가운데 1위였다.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올해 2분기 가계부채는 1869조4000억 원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6%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자 가운데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빚을 낸 다중채무자가 22.4%로, 446만 명에 달했다. 전체 대출잔액 기준으로 다중채무 금액 비중은 31.9%로 집계됐다. (8월 15일 한국은행이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 한국은행은 집을 비롯한 보유자산을 다 팔아도 부채를 갚기 어려운 금융부채 고위험가구(자산평가액 대비 부채 비율이 100%를 넘는 가구)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38만1000가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한국은행이 10월 10일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

게다가 한국은행의 가계부채 통계에는 빠져 있는 빚이 있다. 영세 자영업자(소규모 개인사업자)의 부채다. 영세 자영업자는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는 목적이 ‘사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통계상으론 가계부채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개인사업자의 경우 상환 책임이 개인에게 있고 이중 상당 부분이 개인들이 대출, 세금 등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법인을 만들어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으로 가계부채와 성격이 같다. 그래서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는 2213조7000억 원이다. 한국은행이 산출한 가계부채보다 344조3000억 원이 더 많다. 국제결제은행 등 글로벌 기관은 가계부채에 소규모 개인사업자 부채까지 포함해 통계를 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9일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금리 인상에 따른 부실 소상공인 추정과 시사점’ 보고서는 기준금리가 인상될 경우, 한계상황에 직면하는 소상공인이 얼마나 증가하는지를 분석했다. 보고서는 기준금리가 3.25%로 인상될 경우 한계상황에 직면하는 개인사업체는 88만5010개, 한계 소상공인은 127만2790개로 추정했다. 기준금리가 인상될 경우 소상공인들이 얼마나 힘든 처지로 내몰릴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계부채는 금리 상승기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금융감독원은 가계대출 평균 금리가 연 7%로 오르면 약 190만 명이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지난 7월 금융감독원의 분석에 따르면, 가계대출 평균 금리가 연 7%로 오를 경우 연소득의 70%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써야 하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70% 초과 차주가 19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금융 당국은 DSR이 70%가 넘으면 소득에서 최저생계비를 제외했을 때 대출 원리금을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간주한다.

가계대출 최고 금리가 이미 연 7%를 넘어섰다. 다음 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0.5%포인트 인상하면 가계대출 최고 금리가 8%에 근접하거나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영끌족’, ‘빚투족’이 잠을 못 이루고 있고, 가계 대출이 부실화되면 금융기관도 동반 부실화된다. 하지만 정부는 무대책이다.

정부가 10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생중계로 공개했다. 이날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의 발언이나 태도를 보면 경제는 비상이 아니고 민생도 위기가 아니었다. 회의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고금리에 따른 민간부채 위기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에 대한 비상한 대책도 없이 기껏해야 자화자찬의 한가한 소리만 80분간 늘어놓은 게 고작이었다.

서민의 경제적 고통은 이미 한계치를 넘고 있으며 경제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인식은 안일하기 짝이 없다. 위기 불감증이 심각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조차 없으니 무슨 대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윤석열 정부는 정말 답이 없는 무대책 정부다.

서울 한복판에서 지난 토요일 밤에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끔찍한 참사다. 비통하고 참담하다. 3년 만의 노 마스크 핼러윈 축제를 맞아 이태원에 인파가 몰려들 것이라는 예측이었는데도 안전조치는 없었다. 국민 안전과 재난 대책을 총괄하는 주무 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정부 합동 브리핑에서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라며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2022년 10월 31일)

※ 이태원 참사로 불의의 사고를 당한 희생자들의 명복과 부상자들의 쾌유를 빌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