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이 답이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10‧29 참사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여당의 책임 있는 자들이 일관되게 보인 말과 행동은 한마디로 책임 회피다. 윤 대통령의 첫 일성은 주최자 없는 행사라서 발생한 사고이니 제도를 개선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리고 사과는 없었다.

참사의 원인이 제도의 문제인가? 법과 제도와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이고, 앞으로 주최 측이 없는 행사도 대응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건가? 무식하거나 알면서도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재난안전법, 도로교통법, 경찰관직무집행법, 압사예방 국가매뉴얼 등 법과 제도와 매뉴얼은 이미 다 존재한다.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도 사과하지 않았다. 26명의 외국인 희생자가 나온 상황에서 열린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한 총리는 웃고 농담하는 말장난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비난이 쏟아지자 사과했다. 이상민 장관은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는 망언을 내뱉더니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고 망발을 지껄였다. 시민의 잇따른 112 신고 내용이 공개되면서 국민의 분노가 들끓자 그제서야 허겁지겁 이상민 장관, 오세훈 시장, 윤희근 청장이 줄줄이 사과했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용산경찰서가 담당하는 주요 연례행사다. 그런데 올해 용산경찰서장은 그날 행사 현장에 없었다. 참사 당일 용산경찰서장의 관심사는 핼러윈 축제가 아니라 용산 대통령실 부근의 집회에 쏠려 있었다. 시민 안전보다 정권 안전이 우선순위이니 시민 안전이 위태로워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경찰 수뇌부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은 뒷전이고 온통 정권 경호에 총력을 기울이는 현상은 윤석열 정부가 행정안전부 산하에 경찰국을 설치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신설한 것은 외청으로 독립해 있는 경찰청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과는 무관한 일이었고, 경찰을 권력에 예속시켜 충견처럼 부려먹기 위한 조치였다. 정권의 안전을 위한 시국 치안 강화에 경찰력의 중점을 두게 되면 시민의 안전을 위한 치안에 소홀해지고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이치다. 경찰 수뇌부가 정권 상층부의 기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통령실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상태이니 이번과 같은 참사는 예고됐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찰 수뇌부의 속성은 10‧29 참사 직후 시민단체 동향 정보를 수집해 만든 경찰청 내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시민 안전에는 손을 놓고 있던 경찰이 참사가 벌어진 비상 상황에서도 정권 안보 정보 수집·분석에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정권의 사냥개로 전락한 경찰 수뇌부의 처참한 몰골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윤 대통령-이 장관-윤 총장의 역순으로 참사 관련 보고가 이뤄진 데서도 경찰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1991년 내무부 치안본부를 외청(경찰청)으로 독립시킨 지 31년 만에 윤석열 정부의 경찰 통제 조직을 부활시키려고 하자 경찰 내부의 반발이 거셌다. 삭발과 일인시위 등으로 항변한 일선 경찰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윤 정부가 경찰국 신설을 밀어붙인 속내가 무엇이었는지 이번 참사에서 여실히 확인된 셈이다.

시민 안전은 뒷전이고 정권 안전에 충실하다가 대형 참사를 초래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은 엄중한 문책이 마땅하다. 사과가 아니라 사퇴가 답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이 장관과 윤 청장의 거취에 대해 경찰 특별수사본부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경찰 지휘부의 잘못을 경찰이 수사하는 ‘셀프 수사’가 말이 되는 소린가.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일 제 살을 도려내는 읍참마속의 각오로 감찰과 수사를 하겠다고 했다. 부하들의 책임 소재를 준엄하게 가리겠다는 것인데, 정작 본인은 참사 당일 캠핑장에서 술을 마시고 자다가 첫 참사 발생 보고조차 놓쳤다.

윤 청장과 이 장관이 버젓이 수사 지휘계선에 버티고 있는데 수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오죽하면 여당 내부에서도 “야당과 국민의 비난 대상이 된 인사들은 조속히 정리해야 한다”(홍준표 대구시장)거나 “(이 장관 등은)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서병수 의원)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문책 경질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고교·대학 직속 후배를 감싸는 일이 민심의 분노보다 더 중요하다는 대통령의 심사를 반영한 것일 터다.

하긴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의 문책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시민 156명이 목숨을 잃고 197명이 다쳤다. 대한민국 헌법 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이다. 국민 보호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을 임명한 인사권자는 대통령이다. 문책 경질이 민심인데, 대통령은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다.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의 책임 회피를 넘어 대통령의 책임 회피다.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를 주재한다고 한다. 참사가 터지자 법과 제도와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더니, 이젠 국가안전시스템 타령인가. 국정조사는 거부하고 문책 경질은 하지 않으면서 이런 회의를 연다고 정부의 책임이 가려지는가. 진상규명과 책임자 문책 없이 시스템 얘기만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정부가 책임 회피와 시간 끌기, 미봉책을 고집했다가는 갈수록 국민의 분노를 부추기고 화를 키울 뿐이다.

10‧29 참사 발생 1주일 만인 지난 5일 서울시청역 일대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수만 명이 참여해 희생자를 애도하고 정부를 규탄했다. 경찰이 집회를 위해 4개 차선을 확보했으나 시민들이 몰려들어 중앙선 넘어 도로까지 군중이 넘쳤다. 시민들은 시청 교차로에서 숭례문 교차로까지 7차선 도로 위를 가득 메웠다. 이들은 ‘퇴진이 추모다’ 등의 손피켓을 들고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쳤다.

이번 10‧29 참사 희생자 중 다수는 20대다. 8년 전 4‧16 참사를 겪었던 그들이다. 4‧16 참사로 친구를 잃었던 그들이 이번에 10‧29 참사로 친구를 또 잃었다. 그들은 분노한다. “무능, 무지하고 무책임한 윤석열 정부를 이대로 두면 이런 참사가 또 있을 것”이라며 “그땐 우리가 죽을 수 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에서, 이태원 참사에서 죽었는데 또 죽을 순 없다”고 성토하였다. 그들의 분노와 저항은 정당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도 재발한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장훈 4‧16안전사회연구소 소장은 “(희생자) 여러분의 탓이 아니다. 자책하지 말라”면서 “국민들이 놀러갔다가 죽은 게 아니라 놀면서 국민을 지키지 않은 자들의 잘못으로 죽은 것”이라고 분개했다. 장 소장은 “참사가 다시 일어난 것은 단언하건대 책임자 처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면서 “(책임자들에게) 책임지라고 해야 한다. 그자들의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일단 애도부터 하자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애도는 책임자들이 책임지고, 처벌을 받은 다음 시작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8월 당시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대책을 비판하면서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인데 이 정부는 정부가 존재할 이유를 증명하지 못했다”고 했다. 9일이 윤 정부 출범 6개월이다. 지난 6개월, 윤석열 정부는 자신의 정부가 존재할 이유를 증명했는가. 그러기는커녕 되레 현 정부가 존재하지 말아야 할 이유만 차고 넘친다. 사퇴가 답이다. 스스로 사퇴하지 않으면 퇴진시키는 게 답이다. (2022년 1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