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외치며 언론 자유 탄압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대통령실은 9일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기간(11~16일) 문화방송 기자들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다고 통보했다. “전용기 탑승은 외교·안보 이슈와 관련해 취재 편의를 제공해 오던 것으로, 최근 MBC의 외교 관련 왜곡·편파 보도가 반복된 점을 고려해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는 통보였다. 언론 탄압이라는 비판과 반발에도 전용기 탑승 불허는 철회되지 않았으며, 항의의 뜻으로 탑승을 거부한 한겨레·경항신문 두 신문사 기자들과 문화방송 기자들만 빼고 윤 대통령은 11일 오전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대통령실은 문화방송의 외교 관련 왜곡, 편파 보도 사례로 문화방송이 지난 9월 미국 순방 도중 나온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가장 먼저 보도한 점, 지난달 ‘피디수첩’에서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의혹 관련 대역 출연 장면을 대역 고지 없이 내보낸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당시 논란이 된 비속어 발언은 문화방송을 포함한 148개 언론사가 똑같이 ‘이 XX’ ‘바이든’ 표기를 달아 보도했었다. 그리고 문화방송의 ‘PD수첩’ 방송은 김 여사의 논문 표절 의혹을 다룬 것이지 외교·안보 이슈가 아니다. 도대체 논문 표절 의혹 방송에서 어느 대목이 외교 관련 왜곡·편파 보도란 말인가?

윤 대통령은 10일 출근길에 문화방송의 탑승 불허와 관련해 “대통령이 많은 국민들의 세금을 써가며 해외 순방을 하는 것은 그것이 중요한 국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익’을 운운했는데, 대체 국익을 훼손한 장본인이 누구인가? 외교적 결례와 비속어 논란을 불러일으킨 윤 대통령인가, 아니면 그 논란을 보도한 언론인가? 나라의 국격을 떨어뜨리고 국익을 훼손한 장본인인 대통령이 ‘국익’을 입에 올리다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정말 황당하다.

정부는 전용기 탑승 불허는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일 뿐 취재 방해나 언론 탄압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한미일 정상회담이 예정된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발리까지 직항편이 없어 민항기를 이용하는 취재진은 둘 중 하나의 취재를 포기해야 한다. 기내에서 열리는 기자간담회 등의 취재가 불가능한 건 물론이다. 이게 취재 방해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공인 중의 공인인 대통령은 전용기 이동 과정을 포함해 모든 공적 행위가 취재의 영역이다. 그러니 특정 언론만 찍어서 탑승을 불허하는 것은 엄연한 취재 방해이며 명백한 언론 탄압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가 언론 탄압이 아니라고 하면서 대통령실을 편들어 감싸기에 급급하다.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제원 의원은 국회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그게 무슨 언론 탄압인가. (전용기 탑승은) 편의를 제공하는 문제인데 우리가 취재를 못하게 한 건 아니지 않나”라고 우겼다. 윤핵관의 맏형 격인 권성동 의원은 국회 상임위 회의에서 “나도 MBC 취재를 거절한다. 취재 거부 여부는 취재를 받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다”고 한술 더 떴다. 차기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문화방송을 “그거”라고 지칭하며 “MBC 그거는 방송인가. 그거는 방송 자격조차 없다. 문화방송은 해체되는 것이 맞다”고 막말을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취재의 자유가 있다면 취재 거부의 자유도 있다”고 대통령실을 거들고 나섰다.

대통령과 정부‧여당 인사들의 발언에서는 공직자로서의 공인 의식을 찾아볼 수 없으며 권력의 사유화가 얼마나 심각한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대통령 전용기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자산이지 윤 대통령 개인 소유의 사유재산이 아니다. 대통령의 외국 순방은 공무 수행이며 따라서 전용기 탑승 편의 제공은 정부의 공적 의무이다. 대통령이 공인으로서 공무 수행 중에 언론에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공적 의무이지 대통령 개인의 사적 권리나 시혜가 아니다. 공무 수행이 아니라 사비를 쓰면서 개인 휴가를 즐긴다면 개인의 사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공무를 수행하면서 사적 권리를 앞세우는 건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은 주권자로서 권한을 위임한 대통령이 외교 무대에서 국익을 위해 어떻게 일하는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언론의 자유 보장은 정부와 대통령의 공적 의무이다. 언론의 취재 편의 제공은 대통령의 시혜가 아니라 언론의 자유 보장을 위한 대통령의 의무인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순방 취재단에게 막대한 세금을 써가며 마치 특혜를 베푸는 것처럼 취재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했다. 순방 취재에 참여하는 언론사는 소요 비용을 자체 부담하여 탑승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혈세’ 운운하던데, 과연 국민 세금을 누가 쓰고 있는가?

대통령 전용기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며 전용기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전용기를 자기 사유재산처럼 맘대로 쓰고 있다. 지난 6월 나토 방문 때는 민간인 신분인 이원모 인사비서관 배우자를 전용기에 태우더니, 이번에는 문화방송 기자를 태우지 않았다. 공사 구분도 하지 못하는 권력 사유화의 한심한 작태이다.

언론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특정 언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대통령 개인의 사적 자유다. 하지만 특정 언론이 대통령 개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통령으로서의 공무 수행에 대한 취재의 자유를 제한하고 차별하는 건 공직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반헌법적 행태이다. 대통령이 공사 구별도 하지 못한 채 권력을 사적으로 오남용한다면 필시 국민의 저항과 탄핵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취재의 자유가 있다면 취재 거부의 자유도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정작 ‘자유’가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떠들고 있다. 취재의 자유, 곧 언론의 자유란 주권자의 알 권리를 위한 자유를 말하는 것이며, 권력은 그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갖는다. 언론의 자유란 권력자에게는 자유가 아니라 의무이다. 공사 구분도 안 되고 공인 의식이 없는 자들이 권력자가 되어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다면 권력이 부패 타락하는 건 필연이다.

윤 대통령이 줄곧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자유’이다. 15분쯤의 취임 연설에서 35번 자유를, 10분가량의 유엔연설에서도 무려 21번이나 자유를 말했을 정도다. 자유 중에서 으뜸가는 자유가 표현의 자유이며, 표현의 자유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가 언론의 자유이다. 미국 독립 선언서의 기초자이자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언론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언론 중에서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자유다’라는 말도 있다.

지난해 8월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는 “언론의 자유는 헌법상 가치”라며 “권력자의 은밀한 비리를 보도함에 있어 오보 한 줄 없도록 철저히 검증한 후에 기사를 내야 한다면 기사가 충실해지는 것이 아니라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동서고금 모든 권력자는 깨어 있는 언론의 펜대를 두려워했다. 언론의 자유는 정부의 ‘부패완판’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헌법상의 주요 가치”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입버릇처럼 ‘자유’를 외치던 윤석열 정부가 벌이는 작금의 행태는 무엇인가? 윤 대통령이 취임 6개월 동안 한 일은 압수수색밖에 없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판에 이제는 언론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탄압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특정 언론을 찍어서 대통령 전용기를 못 타게 하는 식의 치졸한 보복을 가하는 짓은 군사정권 때도 없었던 일이다. 언론 자유의 탄압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10‧29 참사로 권력이 막다른 궁지에 몰려 위기 상황으로 치달으니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속셈인가? (2022년 1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