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국정의 난맥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2022 카타르 월드컵이 21일 새벽(한국 시간) 개막했다. 사상 처음 이슬람권 국가에서 열리는 월드컵이고 겨울에 처음으로 열리는 대회다.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뒤 20년 만에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이다. 방탄소년단(BTS)의 정국이 개막식에서 화려한 공연을 선보였다. 시작부터 월드컵 축구를 보는 즐거움이 남다를 법하다.

카타르 월드컵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사막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행사의 이면에 감출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카타르 월드컵은 2010년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탈법적인 로비 행위를 통해 국제축구연맹(FIFA, 피파) 집행위원들의 표를 매수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2015년 피파의 중역들이 잇따라 구속되고 여러 결정적 정황과 증거들이 드러났다. 12년 전 직접 개최국을 발표했던 제프 블라터 당시 피파 회장도 얼마 전 “카타르를 개최지로 정한 건 실책이자 나쁜 결정”이라고 고백했다.

이번 대회는 역대 최대의 돈 잔치 월드컵이다. 최첨단 축구 경기장 7곳, 공항 1곳, 호텔 100여 곳을 비롯해 대형 건설사업이 시행됐다. 외신들은 대회 총비용이 2천억 달러(약 267조 원)를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천문학적 돈 잔치의 이면에는 노동자의 희생이 있다. 지난해 2월 영국 <가디언>은 2010년부터 10여 년간 월드컵 경기장 등을 짓는 데 투입됐던 인도·네팔 등 5개국 이주노동자 6700여 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올해 1월 영국 <데일리메일>도 “월드컵이 피로 얼룩졌다. 월드컵 경기장 건설 공사에 투입된 외국인 이주노동자 6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지만, 카타르 정부도 피파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카타르 정부와 대회 조직위가 침묵하자 현지 인권단체들은 피파를 겨냥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축구를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면서 “피파는 월드컵 한 번 치를 때마다 30억 파운드(4조9000억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는데, 월드컵의 영광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피가 흥건하다”고 꼬집었다. ‘피의 월드컵’이란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카타르 월드컵의 노동 인권 문제가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는 2016년 카타르 월드컵의 이주노동자 실태를 조사해 ‘아름다운 경기의 추한 단면’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불결하고 비좁은 숙소에 살며 낮은 급여, 사기, 체불, 강제 노동, 여권 압수 같은 불법행위에 시달려온 실태가 고스란히 적혔다. 지난 8월 영국에 본부를 둔 노동자 인권단체 <에퀴뎀>은 “카타르 정부가 임금 체불에 맞선 이주노동자 60여 명을 체포해 일부를 추방했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카타르 월드컵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자, 피파는 지난 4일 32개 월드컵 참가국에 “축구에만 집중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은 월드컵 개막을 하루 앞둔 19일(현지시각)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카타르의 외국인 노동자 처우나 인권 문제에 대한 서구의 비판은 위선적이라며 카타르 옹호에 나섰다. 그러자 <앰네스티>는 “인판티노 회장은 인권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무시하면서 월드컵 개최를 위해 이주노동자들이 지불한 엄청난 대가와 그것에 대한 피파의 책임을 저버리고 있다”고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월드컵이 개막했으나 우리는 마음 편히 심야 월드컵을 즐기기 어려울 것 같다. 카타르 월드컵의 불편한 진실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국정 난맥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어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들과 도어스테핑을 진행하는 용산 대통령실 1층 로비에 20일 돌연 가림막이 설치됐다. 가림막으로 대통령실 주출입구 쪽 시야가 막혀 기자들은 대통령의 들고나는 상황을 전혀 볼 수 없게 됐다. 그간 윤석열 정부는 “집무실과 기자실이 한 건물에 위치한 첫 정부”라면서 ‘용산시대 개막’ ‘도어스테핑 실시’를 한껏 치켜세웠다. 그런데 기껏 6개월 만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도어스테핑을 중단하는 문제를 논의 중이라고 하니, 황당하다. 이럴 거면 왜 청와대에 안 들어가고 용산 집무실 이전을 고집했단 말인가. 국정의 난맥이 심각하다.

대장동 개발 특혜·비리 의혹으로 구속된 천화동인 4호 실소유주 남욱 변호사가 21일 새벽 석방됐다. 남 변호사에 이어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도 오는 24일 석방된다. 지난달 20일 유동규 전 본부장에 이어 남 변호사와 김 씨까지 대장동 핵심 피고인 3인방이 모두 석방되는 것이다. 박영수 특검과 현직 대법관, 전 검찰총장과 국민의힘 곽상도 등 ‘50억 클럽’ 관계자들은 대장동 수사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윤 정부로 바뀐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반면에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부실장,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 이재명 대표 최측근 2명이 새로 구속됐다. 이게 윤 정부의 공정과 정의란 말인가. 국정의 난맥이 심각하다.

대통령 경호처가 경호 구역에 투입된 군과 경찰 인력에 대해 지휘·감독권을 행사하는 내용으로 시행령을 고치려고 해 논란이다. 지난 9일 공개된 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경호)처장은 경호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경호구역에서 경호활동을 수행하는 군·경찰 등 관계기관의 공무원 등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문제의 문구는 ‘지휘·감독권’이다. 대통령경호법에는 ‘지휘‧감독권’이라는 용어가 없다. 현행 대통령경호법은 ‘경호처장은 경호업무를 총괄하며, 다른 국가기관에 대해서는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대통령 경호업무를 수행하는 인력은 경호처 700명, 군 1000명, 경찰 1300명 등 약 3000명이다. 기존에는 경호처장이 군과 경찰에 지휘 협조를 요청하고 군과 경찰이 수용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만일 경호처장이 군과 경찰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게 되면 군과 경찰의 협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군과 경찰을 지휘‧감독하게 된다. 경호처와 군‧경의 관계가 경호업무를 수행하는 관계기관 사이의 협조 관계가 아니라 지휘하고 지휘받는 상하 관계로 바뀌는 것이다. 국방부는 “경호처장은 국군조직법상 국군에 대한 지휘 권한이 없다”는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경찰도 “경찰을 경호처의 하급 기관으로 볼 여지가 있으며, 헌법과 정부조직법에도 배치될 소지가 있다”며 반대했다. 대통령실이 군‧경과 아무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은 국정의 질서와 체계를 무시하고 어지럽히는 일이다.

1963년 대통령경호법 제정 이래 군·경찰에 대한 경호처의 지휘·감독권을 명시한 적이 없다. 지금껏 대통령 경호처장의 군·경찰 지휘권이 명문화돼 있지 않아서 경호에 공백이 발생한 적도 없다. 만일 필요하다면 국회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지, 상위법인 대통령경호법을 개정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시행령을 고쳐서 경호처장의 권한을 확대하는 것은 위헌‧위법이다. 입법부인 국회의 권한을 무시하고 시행령의 꼼수를 동원하는 건 얄팍한 술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국정의 난맥이 심각하다.

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은 국정의 난맥일 뿐 아니라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내포돼 있다. 이 사안의 심각성은 윤석열 정권이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로 되돌아가려고 한다는 점이다. 박정희 유신독재 막바지였던 1976년부터 4년간은 청와대 경호실이 다른 기관 소속의 경호 인력을 지휘‧감독했었다. 헌정질서가 파괴되고 무법천지였던 박정희 1인 독재 때였기에 가능했던 위헌‧위법의 전횡이었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권력의 2인자 행세를 했던 유신독재는 1979년 10‧26사태로 막을 내렸다. 박정희가 죽고 신군부쿠데타로 들어선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조차도 청와대 경호실이 군‧경을 지휘‧감독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를 넘어 19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왜 이렇게 무모하게 제 명을 스스로 재촉하는지…. (2022년 1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