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법과 원칙을 지켜라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12월 12일, 43년 전인 1979년 군사반란이 일어난 날이다. 전두환·노태우 일당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 세력은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최규하의 재가도 없이 휘하 부대 병력을 동원하여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로 체포‧연행하는 과정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졌고, 신군부 세력은 이 반란으로 군 내부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1980년 5·17 군사반란을 또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였다.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12월 12일 저녁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제33헌병대 병력은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해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한 뒤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하였다. 육군 수뇌부도 모두 서빙고 분실로 연행되었다. 1공수여단과 5공수여단 병력이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점령하였으며 9사단 병력 등은 중앙청으로 진입하였다. 전두환 신군부의 헌정파괴 군사반란이었다.

43년 전의 12‧12 전두환 군사반란을 새삼 상기하는 까닭은 윤석열 대통령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19일 국민의힘 부산 해운대갑 당협 사무실을 방문해 전두환을 칭송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면서,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심지어 호남까지 팔아댔다.

전두환이 어떤 자인가. 1987년 6월 항쟁 이후 반란수괴 등의 혐의로 엄벌에 처해진 반국가 사범이다. 1997년 4월 대법원은 전두환 일당의 12·12 군사반란 및 5·17 내란, 그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혐의에 대해 반국가적 범죄라고 확정판결하였다. 전두환 일당의 죄목만 나열해도 그 범죄가 얼마나 천인공노할 악행인지 알 수 있다. 반란수괴·반란 모의 참여·반란 중요 임무 종사·불법 진퇴·지휘관 계엄지역 수소이탈·상관 살해·상관 살해 미수·초병 살해·내란수괴·내란 모의 참여·내란 중요 임무 종사·내란 목적 살인·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등. 법원은 위 죄목들에 대하여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전두환에게 무기징역 및 추징금 2205억 원, 노태우에게 징역 17년 및 2628억 원을 선고하였다.

윤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내세우고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스스로 ‘헌법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군사반란으로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을 찬양하는 것은 자가당착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벌써 사반세기 전에 이미 사법적 단죄까지 내려진 군사반란의 주범 전두환이 정치를 잘했다고, 다시 그를 소환한 저의는 대체 무엇일까. 사법 정의마저 부정하겠다는 속내였을까, 아니면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전두환처럼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었을까.

아닌 게 아니라, 지난 7개월 임기 동안 보여준 윤 대통령의 행보는 점점 전두환 독재자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특히 그렇다. 지난 5일 연합뉴스 기사로 보도된 “화물연대 파업,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는 발언은 독재자 전두환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노동자를 적으로 대하고 노동자의 헌법적 권리 행사를 사회악으로 여기는 독재자의 반국민적‧반헌법적 망언이다.

오죽했으면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조차 윤 대통령의 발언이 세다고 했겠는가. 김 위원장은 7일 저녁 한 라디오에 출연해 ‘화물연대 파업이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는 대통령 발언이 너무 강한 것 아니냐는 진행자 질문을 받자 “제가 봐도 강하다”고 인정했다. 김 위원장이 어떤 인물인가.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라는 발언으로 질타를 당하다가 국감장에서 쫓겨났던 극우 인사다. 그런 극우 인사가 보기에도 윤 대통령의 발언이 지나치다고 할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정부는 8일 국무회의를 열어 철강과 석유화학 업종 화물노동자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을 의결했다. 지난달 29일 시멘트 운송 분야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데 이어 2차 명령을 발동한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업무개시 명령은 국제 기준 위반’이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윤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되레 더 엇나간 것이다. 국회가 비준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국제협약을 보란 듯이 대놓고 위반하고 있다. 노동 탄압국이라는 국제적 비난이나 외교적 고립 따위는 개의치 않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행보는 과거 전두환 독재정권과 다를 게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0시에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에서 252억 원을 횡령하고, 삼성으로부터 다스의 미국 소송 비용 89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17년에 벌금 130억 원과 추징금 57억 원이 확정된 중범죄자다. 그는 수감 1년 7개월 만인 지난 6월 28일 형집행정지로 일시 석방됐고, 검찰은 지난 9월 석방 기간을 3개월 연장했다. 이 씨의 형 집행 정지가 오는 27일 끝나므로 이 시점에 맞춰 사면이 될 거라는 전망이다.

사면제도는 삼권분립의 원칙이나 사법제도의 신뢰를 흔들 여지가 있어 남용해선 안 된다.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은 권력분립에 대한 예외로서 존재하고,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용해 사법부의 판결을 형해화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특히 윤 대통령은 ‘법과 원칙’과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헌법주의자’를 자임하는 만큼 사면권 행사에서 누구보다 원칙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대통령의 권한을 악용해 뇌물을 받고 사익을 추구한 범죄를 저질러 중형을 선고받은 사람이다. 더구나 윤 대통령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이 씨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고 구속‧기소했던 장본인이다. 그랬던 그가 자신이 처벌 단죄했던 범죄자를 사면한다면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모순 아닌가. 윤 대통령의 이명박 사면은 소위 ‘정치적인 빚’을 청산하고자 하는 편법으로 사면권을 악용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중범죄자를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면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훼손이다. 전직 대통령이 임기 중에 권한을 악용해 저지른 범죄를 용인하고 이를 현직 대통령이 사면하는 것은 자기 임기 중의 범죄를 미리 ‘셀프 사면’하겠다는 속셈과 다를 게 없다. 이명박의 사면은 사법 정의의 부정이고 법치주의의 파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노조파괴 행위에 대해 국가가 피해 노동조합 단체들과 노동자에게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은 민주노총과 전국교직원노조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원고들은 2018년 6월 이명박 정부 때 국가정보원이 주도해 노조의 하부조직 탈퇴 유도, 선거·총회 결의 등 노조 활동 방해, 노조 비난 여론 조성 등의 공작을 벌여 단결권을 침해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재판부가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원고들은 소송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노조탄압 문서를 입수했다. 문서에는 노조가 집회를 개시할 경우 경찰을 통해 금지통보를 발령하고, 검찰을 통해 파업참여 조합원에 대해 체포·구속영장을 청구하게 하며, 주무부처가 사용자와 접촉하여 정부의 지원 중단을 겁박하거나 파업 중인 노조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유도해 파업 중단을 압박할 것을 주문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국정원, 고용노동부 등 주무부처, 경찰, 검찰 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노조의 정당한 활동을 방해했던 공작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놀랍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기관이 노조탄압을 벌였던 것과 현재 윤석열 정부가 화물연대의 파업에서 보여준 모습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

국가는 노조를 탄압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의무를 갖는다. 법원은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벌인 노조파괴 공작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명확히 판결했다. 윤 대통령과 정부는 사법부의 판결을 수용하고 ‘법과 원칙’을 지켜라. 불법 비리와 전횡을 일삼다가 몰락한 정권의 비참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거든. (2022년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