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위기를 키우는 정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최근 우리나라의 부채 위기를 경고하는 보고서가 잇따랐다. 가계부채뿐 아니라 기업부채 상태도 위험하다는 경고다. 국제결제은행(BIS)(※주1)이 이달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 2분기 105.6%로 전체 43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스위스, 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특히 다른 상위권 국가들은 지디피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분기 대비 약 1%포인트 하락한 반면 우리나라는 0.2%포인트 상승했다.(※주2)

문제는 가계부채만이 아니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금융기관을 제외한 지디피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올 2분기 기준 116.5%에 달했다. 부채비율도 높지만 증가 속도도 위험하다. 지난해 4분기와 비교했을 때 증가율은 2.46%로 5위였고, 기업부채 비율이 92.5%였던 2017년과 비교하면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기업부채 비율이 지속적인 증가 추세인 반면에 주요 20개국(G20) 평균은 2021년 100.1%에서 2022년 1분기 100.0%로 감소)

10월 30일 국제금융협회(IIF)(※주3)의 ‘세계부채보고서’를 봐도 우리나라의 지디피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분기 기준 102.2%로 조사대상 35개 나라 가운데 1위였다. 지디피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2분기 117.9%로 4위였다. 특히 한국의 기업부채 비율은 1년 사이 6.2%포인트 상승해 주요국 중 상승률 2위를 기록했다.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도 올해 3분기 가계부채는 1870조6000억 원으로 지디피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5.2%로 나타났다. 기업부채는 1722조9000억 원으로 기업부채 비율은 118.5%를 기록했다. 이로써 3분기 말 지디피 대비 민간신용(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합) 비율은 223.7%에 달했다. 1분기보다 1.4%포인트 오르면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자영업자대출은 2022년 3분기 1014.2조원으로 대출금리 급등에도 불구하고 연 14.3%의 높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취약차주의 대출 증가세는 더욱 가팔라져 취약차주 대출 증가율은 18.7%(전년동기대비)로 비취약차주 대출 증가율(13.8%)을 크게 상회하였다. 2022년 3분기 비은행금융기관의 자영업자대출 증가율은 전년동기대비 28.7%로 은행(6.5%)보다 4배 이상 높았다. 내년 경기 둔화로 인해 자영업자 매출 회복이 더뎌지고 금리까지 오름세를 지속할 경우 자영업자 대출 중 부실 위험 규모가 내년 말 40조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한국은행은 추정했다.

국내 금융시스템의 단기적인 취약성을 나타내는 금융불안지수(FSI)는 위기 단계에 들어섰다. 금융불안지수는 금융·실물 부문의 월별 지표 20개를 이용해 금융시스템의 단기적인 불안 상황을 수치화한 것으로, 8~21이면 주의 단계, 22 이상이면 위기 단계로 분류한다. 금융불안지수는 올 1월 5.9였으나 3월 8.6으로 올라서고 9월 19.7을 찍은 뒤 10월부터 23.6으로 상승하며 위기 단계에 진입했다.

국제결제은행은 분기별로 신용갭(Credit-to-GDP gap)을 발표하고 있다. 신용갭은 민간신용이 지디피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장기추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이 비율이 2% 미만이면 보통, 2~10%면 주의, 10% 이상이면 경보 단계로 분류한다. 실제로 각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의 3분의 2는 신용갭이 경보 단계일 때 일어났다.

국제결제은행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용갭은 2019년 5.9%로 주의 단계에서 2020년 16.8%로 급상승하여 경보 단계로 바뀌었고, 2021년에도 16.5%를 기록했다. 2022년 2분기 15.6%로 43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3위였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3.2%, 2008년 금융위기 다음 해인 2009년 2분기 13.2%와 비교해도 훨씬 위험한 수준이다. 올해 들어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민간신용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큰 위기가 터질 수 있다는 신호다.

앞에서 인용한 보고서들은 우리나라의 민간신용 위험과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국제금융협회는 보고서에서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는 시대가 끝나가면서, 많은 기업이 이미 빚을 갚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낮은 금리 덕에 많은 기업이 싼값의 대출로 연명해왔으나 앞으로는 대출 비용(금리)이 오르면서 부도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부도 위험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지표는 기업의 이자보상배율 자료이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1 미만이면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보통 1.5 이상이면 정상, 1 미만이면 잠재적인 부실기업으로 본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 비중은 2021년 35.5%에서 2022년 상반기 35.7%로 상승했다. 특히 중소기업(21년 말 48.4%→22년 상반기 49.7%)은 절반 정도가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잠재적 부실상태에 놓여 있다.

한계기업은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인 기업으로, 속칭 좀비기업이라고 불린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계기업 비중은 14.9%였다. (참고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계기업 비중 9.0%) 올해는 금리가 가파르게 올랐고 기업 경기도 좋지 않기 때문에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힘든 기업들이 늘어 한계기업 비중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은 올해 한계기업 비중이 18.6%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한다. 역대 최대치다. 특히 부동산업의 한계기업 비중은 28%로 치솟고, 건설업 분야 한계기업도 경계 대상이다.

이미 위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들어 전·월세 세입자들이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에서 발생한 전세보증금 사고 금액은 1862억 원으로 한 달 전보다 22%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차 보증사고 건수는 4개월 연속 증가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까지 서울지역 임차권 등기명령(※주4) 신청 건수가 2021년 같은 기간에 비해 25.9%(전국 평균 25.6%)나 증가했다. 임대보증금을 제때에 반환받지 못한 세입자 수가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다. 한국은행은 전셋값이 10% 하락할 경우 보증금 하락분을 감당하지 못할 집주인이 4만4000가구, 20%가 하락하면 7만6000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계했다.

정부가 21일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이 1.6%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첫해를 제외하곤 가장 낮은 수치다. 경기부양책으로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전방위적으로 풀어 경기를 인위적으로 부양하려는 모양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금융완화 혜택을 대거 쏟아내고, 다주택자 투기 문제로 말썽이 많았던 민간 임대사업자 지원 특혜도 부활하겠단다. 아니, 보증금 미반환 사태로 전 재산을 날리고 길거리에 내몰릴 위험에 처한 세입자를 보호하는 대책이 아니라 임대사업자 특혜 조치라니! 윤석열 정부는 위기를 수습하는 게 아니라 되레 키울 작정인가. 갈수록 태산이다. (2022년 12월 26일)

※주1) 국제결제은행(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은 중앙은행들의 협의체로 현재 전 세계 60개 중앙은행이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 중이다.

※주2)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비율은 2017년 89.4%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2021년 100%를 돌파하였으며, 2022년에도 여전히 100%를 상회하고 있다. 반면에 G20 평균은 2021년 60.2%이며 2022년 1분기 59.4%로 감소하였다.

※주3) 국제금융협회(IIF, Institute for International Finance)는 세계 400여 개 은행과 투자사가 모인 민간금융기관협의기구로 대출은행들이 제각기 수집하는 채무국의 금융‧경제 정보 데이터를 종합 분석해 제공한다.

※주4) 임차권 등기명령은 전·월세 계약만료 시점에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세입자가 신청해 법원이 내리는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