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공포만 부추기는 무책임한 허언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정초부터 희망적인 얘기를 하지 못해 유감이다. 지난달 26일 대낮에 5시간 동안 북한 무인기 5대가 수도권 하늘을 휘젓고 다녔다는 소식이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서울 하늘이 뚫렸다’는 불안과 공포가 퍼졌고,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에 우리 군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비난과 항의가 빗발쳤다. 소형 정찰 무인기가 가할 실제적 위해가 크지 않을지 모르지만 서울 하늘이 뚫렸다는 불안과 공포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흘 뒤 대전 국방과학연구소를 찾아 “도발에는 반드시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전쟁 불사로 들릴 만큼 수위 높은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응징과 보복만이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거나 “전쟁에 대비하고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 준비’, ‘전쟁 대비’라는 말을 각각 두 차례씩 반복했다. 전날 참모들과의 회의에선 “(대통령이) 원점 타격도 준비하며 확전의 위험을 각오한 것으로 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가 전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강경하고 과격하지만 책임 회피의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우리 군 당국의 대응은 명백히 실패했다. 북한 무인기 격추에 실패하였으며, 그 뒤에는 새떼를 보고 전투기가 출격하고 풍선 때문에 또 비상이 걸리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잇따른 군 대응의 실패와 무능 때문에 시민들이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면 응당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자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사과부터 해야 마땅하다. 대통령이 공식 사과도 없이 강경하고 과격한 발언으로 전쟁 불사를 외치는 것은 요란하게 뒷북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북한 무인기가 침범한 당일 윤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관저에서 만찬 행사까지 열었다. 대통령실은 “NSC를 열 상황이 아니었고 열 필요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서울 상공이 뚫린 비상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 필요가 없다면 도대체 언제 열어야 한단 말인가. 대통령실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명이랍시고 내놓은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시민들의 분노와 항의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뒤늦게 윤 대통령은 군의 대응을 질타하고 전쟁 준비 운운하면서 요란법석을 떨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 필요가 없었다더니, 왜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강경하고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는가. 윤 대통령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윤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는 등 긴급 대응 태세를 갖추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과격한 발언으로 안일한 대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으며, 군 통수권자가 군의 대응을 질타하면서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하여 공식적인 사과도 안 하고 일선 행정 관료들에게 사고의 책임을 떠넘기면서 대통령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태도다.

군의 무인기 대응 실패에서도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를 탓한 것도 무책임한 태도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북한 무인기 침투에 대해 “2017년부터 드론에 대한 대응 노력과 훈련, 전력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고 훈련이 전무했다”며 “북한의 선의와 군사 합의에만 의존한 대북정책이 얼마나 위험한지 국민들께서 잘 보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재발 방지를 위해 “드론부대 창설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어제 사건을 계기로 해서 드론부대 설치를 최대한 앞당기겠다”고도 했다.

“드론부대 창설 계획”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지난 2018년 드론봇 전투단이 이미 창설돼 있는데, 대체 무슨 부대를 또 창설한단 말인가. 마치 우리 군에 드론부대가 없고, 또 드론부대가 없어서 북한 무인기 대응에 실패한 것처럼 사실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 그러면서 군 대응의 실패를 이전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 회피에 눈이 멀어 저질 ‘가짜뉴스’를 조작하는 것이다.

“드론에 대한 대응 노력과 훈련, 전력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고 훈련이 전무했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도 거짓임이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2018년 9월 드론봇 전투단 창설 이후 무인기가 전방 및 공군 전 부대에 배치됐다”며 “당시 신속 시범사업으로 규정해 레이더로 연동시켜 안티 드론 사업도 했고 소형무인기 대응체계 사업도 정상 추진됐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병주 의원도 “2019년 이스라엘로부터 SSR(2차 감시 레이더) 레이더 11대를 들여 왔고 자체 개발한 국지방공레이더 전력화를 통해 1군단과 수도군단에 우선 배정했다”며 “그런데도 훈련을 안 했다고? 만약 정말로 하지 않았다면 지금 장관과 합참의장이 직무유기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의 강경하고 과격한 발언은 국민을 안심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감만 부추긴다. 원점 타격, 전쟁 준비, 확전 위험 감수 등 위험천만한 강경 발언은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더 악화시킬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1번 책무이다.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며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결코 선택지가 될 수 없다. 무력 도발을 막겠다고 하면서 전쟁 불사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모순이며 제2, 제3의 무력 도발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강경하고 과격한 발언으로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부와 군을 믿고 안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원점 타격, 전쟁 준비, 확전 위험 감수 등 전쟁 불사 발언은 강경하고 과격한 것도 문제지만, 더 결정적인 문제는 그런 발언이 말만 요란할 뿐 실전을 책임질 수 없는 허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에게는 전시작전지휘권(전작권)이 없다. 한국군에 대한 전작권은 한미연합군사령부에 이양되어 있고, 한미연합군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겸하고 있다. 데프콘(DEFCON. DEFense readiness CONdition, 전투준비태세)은 전투준비 단계를 말하는데, 5단계에서 1단계로 높아진다. 데프콘3 이상이 발령되면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한미연합군사령부로 넘어간다. 데프콘 1이 발령되면 동원령이 선포되고 전시에 돌입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전시에 우리나라 대통령은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이 없다. 한국군의 지휘권을 행사하는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며 그의 명령에 따르는 지휘관이다.

준전시 또는 전시 상황에서 미국군 사령관이 한국군을 지휘하는 조건에서, 한국 대통령의 전쟁 불사 운운 발언은 실전에서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는 허망한 말에 불과할 뿐이다. 설령 한국군의 드론부대가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전투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준전시 또는 전시 상황에서 작전지휘권이 없으므로, 윤 대통령의 발언이 아무리 강경하고 과격해도 그것은 한낱 무책임한 허언에 불과할 뿐이다.

북한 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는데 정부가 손 놓고 있어서도 안 되고 응당 군사적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을 위시한 위정자들이 보복과 응징을 외치고 전쟁 불사를 부르짖는 것은 무책임한 허언의 선동에 불과하다. 우선 전작권부터 되찾은 다음에 그런 선동을 해야 그나마 말이 되는 소리다. 준전시 또는 전시 상황에서 작전지휘권도 없는데, 우리 정부의 군사적 대비책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위정자들은 단지 전쟁 공포만 부추길 따름인 무책임한 허언을 중단해야 한다. (2023년 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