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양극화와 정치의 실종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1월 9일, 윤석열 정부 출범 8개월이다. 2023년에도 정치의 실종 상태는 계속될 것이다. 해가 바뀌었을 뿐 올해도 윤석열 정부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검찰의 소환조사에 출석한다. 현직 제1야당 대표가 검찰의 소환 요구를 받고 출석하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 만나기를 거부해 단 한 번의 회동조차 없다는 것도 초유의 일인데, 하물며 검찰 소환이라니, 정치의 실종이 실감난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를 지난 대선의 경쟁자이자 현재 입법부의 제1당 지도자로 보지 않고, 검사의 시각에서 피의자로 보는 것 같다. 선악의 이분법 논리다. 여야관계가 정치적 견해와 입장이 서로 다른 정당 사이의 경쟁·대립 관계가 아니라 검사와 피의자 관계처럼 왜곡되면 정치는 실종된다. 윤 정부는 입법부를 행정부 견제와 감사의 헌법기관으로 보지 않고, 마치 행정부의 발목이나 잡는 걸림돌처럼 여기는 것 같다. 대통령직을 행정 수반이 아니라 제왕인 양 착각하면, 정치는 실종되고 제왕적 통치만 남을 뿐이다.

국내 주요 4대 학회(한국경영학회·한국경제학회·한국정치학회·한국사회학회) 학자들은 윤 정부 들어 가장 악화한 분야로 ‘정치적 양극화’를 꼽았다. 지난해 11월 1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4대 학회가 공동개최한 추계학술대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설문에 참여한 4대 학회 소속 교수 636명 중 62.6%가 정치적 양극화 해소에 있어선 오히려 전 정부보다 더 나빠졌다는 평가를 내렸다.

새해 여론조사에서도 정치 양극화가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6~27일 1015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여야 등 정당 간 대립·갈등은 과거와 비교해 어떠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50.5%가 ‘늘었다’고 답했다. ‘줄었다’는 응답은 12.5%에 그쳤고, 34.6%는 ‘비슷하다’고 답했다. ‘각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간 대립·갈등은 과거와 비교해 어떠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늘었다’는 대답이 51%였다. ‘줄었다’와 ‘비슷하다’는 응답은 각각 12.6%, 33.8%로 나타났다.

게다가 정치적 양극화는 선거 때만 드러나는 현상에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4명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식사·술자리를 함께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편하다’ 40.7%, ‘편하다’ 50.6%, ‘모름/무응답’ 8.7%) 정치 성향이 다르면 본인이나 자녀의 결혼이 불편하다는 응답도 43.6%에 달했다. (<조선일보>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6~27일 102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정치적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상은 한국 정치가 미국 정치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정치 양극화는 지난 2021년 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연방의회 난입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배하자 지지자들은 1월 6일 경찰 저지선을 뚫고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하여 난동을 벌였다. 연방의회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최종 승인하는 절차를 진행하던 상·하원 의원들은 긴급 대피해야 했다. 이 사태로 경찰 2명을 포함해 5명이 숨졌고, 현장에 있었던 경찰 2명이 나중에 목숨을 끊었다. 정치적 양극화가 폭력 살인 사태로까지 번졌던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통합을 역설하고 있지만, ‘두 개의 미국’으로 갈라진 정치적 분열과 대립은 여전하다. 적지 않은 미국인들은 지난 대선이 사기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로이터>와 입소스가 2021년 5월 실시한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56%가 대선에서 불법이 있었다고 믿는다고 답했으며, 53%는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가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미 공영 라디오 방송 <NPR>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해 한 자릿수에 그쳤다. 작년 2월 공화당 지지자 중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긍정 평가한 비율은 6%였으며, 5월과 9월에도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민주당 지지자의 80% 안팎이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 것과 대조적이다.

정치 양극화는 일상생활도 파고들었다. 영국 여론조사회사 유고브(YouGov) 등에 따르면, ‘내 자녀가 상대 당 지지자와 결혼한다면 불쾌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0년 사이 10배가량 늘었다. 1960년 민주당 지지자의 4%만이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지만, 2020년엔 3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2020년 유고브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86%는 자신이 반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과 데이트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누구에게 투표했느냐가 사랑을 결정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부상한 것이다.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심지어 미국인 43%가 10년 안에 내전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뉴스도 있었다. 유고브와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미국인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이 지난해 9월 보도했다. (‘내전이 발생하지 않을 것’ 35%, ‘모르겠다’ 22%) 이런 조사결과는 미국의 정치적 분열이 매우 극심해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지난해 9월 <시비에스>(CBS)의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의 다수가 상대를 정치적 ‘반대자’가 아니라 ‘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 출구조사에서도 ‘묻지 마’ 투표 현상이 입증됐다. 민주당 유권자 중 96%는 민주당 후보에게, 공화당 유권자들 역시 96%가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주목할 건, 96%의 유권자들이 민주당이나 공화당을 좋아해서 투표한 게 아니란 점이다. 반대쪽 정당을 이전보다 더욱 싫어하게 됐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투표하는 정당을 더 좋아해서가 아니라 반대쪽 정당을 더욱 싫어하게 돼서 투표하는 ‘부정적인 당파성’은 비단 미국 정치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불렸던 지난해 우리나라 대선에서도 부정적 당파성이 뚜렷이 확인된 바 있다. ‘팬덤 정치’와 같이 하나의 집단 정체성을 기반으로 뭉쳐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경쟁세력에 대해 배타적인 정치 활동을 전개하는 ‘정체성 정치’도 미국과 한국에서 공히 드러나는 정치 양극화 현상이다. ※자세한 것은 『정권 교체와 체제 위기』에 실린 칼럼 ‘진영 논리와 정치의 퇴행’(2021.11.15.)과 ‘대선 이후 나타난 미국적인 현상’(2022.3.14.) 참조.

‘부정적인 당파성’과 ‘정체성 정치’의 진영 논리에 사로잡히게 되면 다른 진영 사람들을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보게 된다. 선악의 이분법에 갇혀서 지지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싫어하고 혐오하며, 사악한 사람들로 불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고 정당 간 대립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아 정치가 실종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우리가 목도해 온 정치의 실종이 웅변으로 말해준다.

앞의 <한겨레> 조사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은 정당 간 대립과 갈등을 깊게 한 책임을 ‘대통령’(38.4%)과 ‘더불어민주당’(34.7%), ‘국민의힘’(15.6%) 순으로 꼽았다.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이 54.0%로 절반이 넘었다. 정부·여당은 야당을 ‘경쟁자’로 보고 협치를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적’으로 보고 사정기관을 총동원하여 야당 관계자들과 당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남발하면서 어떻게든 야당 대표를 옭아매겠다고 겁박하고 있다. 정치 양극화와 정치 실종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책임이다. (2023년 1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