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불안을 부추기는 정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윤석열 대통령이 자체 핵 보유를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외교부·국방부 새해 업무보고에서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과학기술로 더 이른 시일 내에 우리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이란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한국 대통령이 직접 독자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나는 지난해 10월 17일 칼럼(군사주권 없는 핵무장이라는 코미디)에서, 전술핵 배치니 핵 보유니 하는 발언이 얼마나 무식하고 무책임한 소리인지 비판한 바 있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군사작전지휘권도 없는 나라의 대통령이 이런 무식하고 무책임한 소리를 하는 게 창피하지도 않은가? 답답하고 한심하다. 대통령이 해야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을 텐데, 그걸 분간하고 가려서 얘기할 만한 뭣도 안 되는 건지….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더니, 윤 대통령의 발언에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도 덩달아서 날뛰고 있다. 친윤계 김기현 의원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보조를 맞췄다. 그는 “‘자체 핵무장이 북핵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막연한 기우에 불과하다”며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을 위해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줄곧 “전술핵 재배치, 미국과의 핵공유, 자체 핵무장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안철수 의원도 호응하고 나섰다. 안 의원 캠프 선대위원장인 김영우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 자체 핵무장 주장은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북핵 확장억제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며 “안 의원도 대통령의 뜻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상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핵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핵무장에 준하는 군사적인 대응 방안을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고 적었다.

연일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유승민 전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11일 대구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는 핵 공유나 전술핵 재배치를 반대했다”며 “하지만 핵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꿨다면 저는 윤 대통령의 의견을 찬성하고 지지한다”고 말했다. 초록이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지, 어련하겠는가?

핵확산금지조약을 준수하면서 핵 보유나 전술핵 배치가 가능한 방법이 있는가?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이런 거짓말을 버젓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무지몽매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국민을 바보로 여기고 그러는 건지…. 대통령을 비롯하여 집권 여당의 대표를 하겠다고 나서는 자들까지 하나같이 그러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윤 대통령은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이런 발언도 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한·미 간에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참여하고, 공동 기획, 공동 실행하는 이런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같은 날 보도된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한·미의 북핵 위협 대응책과 관련 “(양국 간) 공동 기획, 공동 실행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공동 실행에는) 도상연습(TTX)과 시뮬레이션도 있고 핵 투발 수단 기동에 관한 연습도 있을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과거) 미국이 알아서 다 하는 시스템에서 (지금은) 한·미가 힘을 합쳐서 대응한다는 차원으로 보면 될 것 같다”며 “미국의 핵 자산을 운용하는 과정에 한국도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언론 인터뷰에서도 “한·미가 미국의 핵전력을 ‘공동 기획·공동 연습’ 개념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과 공동 핵 연습 논의를 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단번에 부정한 바 있다. 핵을 보유한 나라의 책임자가 아니라고 부정하는데, 혼자서 계속 공동운용을 주장하는 건 뭔가? 망상에 빠진 건지, 거짓말이 입에 밴 건지….

핵무기를 공동운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인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핵보유국들은 핵전력의 운용을 다른 나라와 협의하여 결정하지 않는다. 핵전력의 운용을 다른 나라와 공유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게다가 미국에게 군사작전지휘권을 이양하여 군사주권도 없으면서 핵전력 공동운용이라니, 황당한 소리다. 설령 우리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쳐도 사용 결정권이 우리에게 없는 상황인데, 하물며 미국 핵전력을 우리가 참여하여 공동운용한다고? 정말 황당무계한 망상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핵전력 공동운용을 거부할 경우 ‘자체 핵 보유’를 추진하겠다고 한다면, 가능성과 현실성 여부를 떠나서, 주장에서 논리적 일관성은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발언 맥락상 그런 의도는 전혀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윤 대통령의 발언은 아무 근거도 없고 책임도 질 수 없는 돌출적인 발언일 뿐이다. 대통령이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이 달린 안보 관련 발언을 무책임하게 하면 안보 위기를 부추기고 국민 불안을 야기한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12일(현지시간) 미 백악관과 국방부는 하나같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했다. “미국과 바이든 대통령은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다”(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 “우리 정책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계속 초점을 맞추고 있다”(국방부 대변인)라는 반응이었다. 정부 소식통은 “자체 핵 보유는 물론이고 전술핵 배치도 고려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외교적 파문으로 번지자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수습하기에 분주했다. 대통령실은 “북핵 위협이 심각해진다는 전제 하에 단호한 대응에 대한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준수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신범철 국방부 차관도 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론을 제기한 것은 아니다. 확장 억제를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이 분명히 “전술핵 배치”와 “자체 핵 보유”라고 말했는데 아니라고 부정한 것이다.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우기더니, 상습적인 거짓말이다.

그러지 않아도 한반도와 동북아를 둘러싼 안보 불안이 높아지는 정세다. 미·일 정상은 지난 13일 워싱턴에서 회담을 열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일본의 반격 능력 보유와 대대적 군비 확충에 강력한 지지를 천명했다. 일본은 전후 70여 년간 유지해온 ‘전수 방위’(공격받을 때만 방위력 행사) 원칙을 사실상 폐기하고, 군사대국화에 한층 속도를 내게 됐다. 동북아는 군비경쟁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군비경쟁은 긴장을 고조시키고 우발적 충돌 위험성을 높인다.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안보 위협’에 대해서는 2022.12.19. 칼럼 참조)

“평화헌법을 채택한 나라가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냐고 하지만,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핵이 올 수 있는데 그걸 막기 쉽지 않다. 일본도 이제 머리 위로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이 날아다니니까 방위비를 증액하고, 소위 ‘반격’ 개념을 국방계획에 집어넣기로 하지 않았나. 그걸 누가 뭐라고 하겠나.”

누가 한 말일까?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다. 윤 대통령이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서 한 마무리 발언의 한 대목이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총리가 할 소리지, 이게 우리나라 대통령이 할 말인가? (2023년 1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