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에너지 정책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설 연휴 첫날부터 대부분 지방에 한파 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강추위가 찾아왔다. 연휴 마지막 날인 화요일엔 올겨울 최강 한파가 예보돼 있다.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와 한파 속에서 맞이한 설 연휴라 그런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모임에서도 난방비 얘기가 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 겨울 도시가스 요금 급등 여파로 난방비가 폭등하면서 ‘폭탄을 맞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관련한 뉴스도 여럿 보도됐다.

국민평형 전용면적 84㎡(25평) 아파트 관리비가 50만 원에 육박한다는 인증샷도 눈에 띄고, 원룸 1인 오피스텔 관리비가 33만 원이나 나왔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이처럼 지난달 12월 관리비가 크게 오른 것은 난방비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통계청 12월 소비자물가에 따르면 12월 도시가스 요금은 1년 전에 비해 36.2%, 지역난방비는 34.0% 올랐다. 이 때문에 온수와 난방 사용량이 지난해와 같더라도 난방비가 급등하게 된 것이다.

난방비 급등 이유는 도시가스의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액화천연가스 수입 가격은 전년 대비 128% 폭등했다. 액화천연가스 수입 가격이 폭등하면서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큰 적자를 봤다. 한국가스공사의 민수용 가스 요금 미수금은 2021년 1조8000억 원에서 2022년 8조8000억 원 수준으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수금이란 판매 가격을 낮게 책정해 생긴 영업 손실금이다. 작년에 액화천연가스 수입 가격이 크게 올랐지만 물가 인상을 막고자 공공요금을 그만큼 올리지 않은 결과다.

정부는 내년 1분기 도시가스 요금은 동결했지만, 2분기 이후에 요금 인상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1분기 요금 동결은 전기·가스 요금이 동시에 오르면 물가 인상 압박을 받을 수 있고 정치적 부담도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해 말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이 약 16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라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30일 “2분기 이후 인상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난방비 인상과 관리비(생활비) 상승이 연중 계속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지난해 18.6% 올랐던 전기요금이 새해 1월 1일부터 9.5%(킬로와트시당 13.1원) 인상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사이에 터진 2차 오일쇼크 이후 최대 전기요금 인상 폭이다. 다음 달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보면 또 한 번 충격이 다가올 것 같다. 더구나 올 1분기 전기요금 인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지난해 한전의 연간 적자는 30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 산업부가 지난달 15일 국회에 제출한 한국전력공사 영업 흑자 전환을 위한 연간 전기요금 인상 적정액은 킬로와트시당 51.6원이었는데, 올 1분기 요금 인상액은 이 액수의 25%에 해당한다. 전기요금의 추가 인상을 시사하고 있다.

한전의 전력 판매 매출에서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55%에 달한다. 반면 일반 가정에 파는 주택용은 15%에 그친다. 나머지는 교육용, 농사용, 가로수용 등이다. 한전 적자 해소를 위해 전기요금을 올린다면 산업용 요금 인상의 효과가 주택용 요금보다 4배 가까이 크다는 의미다. 게다가 산업용 요금은 주택용 요금보다 싸다. 지난해 10월 기준 용도별 전기요금의 1kWh당 판매단가를 보면, 산업용은 117.92원이고 주택용은 123.03원이다. 합리적인 요금체계 개편을 위해서도 산업용 요금을 인상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뜻이다.

산업용 전기요금 특혜는 대부분 대기업에 돌아간다. 30대 기업이 산업용 전기의 63%를 소비하고 있어서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한전은 전력 소비 50대 기업에 전력을 팔아 1조8천억 원의 손해를 봤다. 가장 큰 특혜를 본 기업은 산업용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한 삼성전자다. 한전은 발전사로부터 156원에 구입한 전력을 삼성전자에게 97원(구입단가의 62%)에 판매했고 이로 인한 손해액은 2786억 원으로 집계됐다. (참고로,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매출은 77조 원, 영업이익은 14조1천억 원을 기록했다.)

대만은 지난해 7월 대만전력공사(TPC)의 적자를 줄이기 위하여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가계와 중소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대기업에 한해 전기요금을 15% 인상했다. 대상 기업에는 TSMC, 유나이티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AUO와 같은 기술 대기업들과 포모사 플라스틱, 중국 철강, 대만 시멘트 등 제조 대기업들이 포함됐다. 농업과 수산업, 식품, 백화점, 요식업, 영화관과 체육관은 기존 전기요금을 유지했다. 일반 가정의 97%에 해당하는 1000kW 미만의 가정용 전기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다만, 가정용 전기 소비자는 1000kW 초과시 9%의 요금이 인상됐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 기업인 TSMC는 대만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발표한 뒤 “전 세계 TSMC 공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가동하는 것을 장기적 목표로 에너지 절약, 탄소 절감 관련 작업에 적극 참여하겠다”며 “관련 규정에 따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사용하자는 국제 캠페인)은 자발적 캠페인이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사는 물론 이미 가입한 기업들이 협력사에 가입을 요구하면서 RE100 가입 여부가 ‘새 무역장벽’으로 떠오르는 추세다. RE100 참여 기업은 2050년까지 100% 달성을 목표로 하며, 연도별 목표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수립하되, 2030년 60%, 2040년 90% 이상의 실적 달성을 권고하고 있다.

한전 적자 얘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주장이 있다. 한전 적자의 원인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이라는 거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정말 탈원전 정책을 펼쳤는가? 문재인 정부의 원전 발전량은 2017년 14만8427GWh에서 2021년 15만8015GWh로 증가했다.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문재인 정부 동안 2017년 26.8%에서 2021년 27.4%로 0.6%포인트 늘었다. 원전의 전체 설비용량 대비 발전량 비율을 나타내는 이용률도 증가했다. 2017년 원전 이용률은 71.2%였지만 2021년 74.5%를 기록했다. 탈원전 정책을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 5년간 원자력발전 의존도가 되레 커진 것이다. 탈원전 정책 때문에 한전이 적자를 봤다는 주장은 근거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원자력발전소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스위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연설 후 클라우스 슈밥 포럼 회장과 대담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은 슈밥 회장의 “원자력 에너지가 한국의 ‘넷제로(탄소중립)’ 전략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한동안 탈원전이라고 해서 원전을 감축하려는 시도가 몇 년간 지속돼온 탓에 원전 생태계가 많이 힘들어졌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기술력을 강화하고 원전을 확대할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는 것뿐만 아니라…”라고 답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발표한 「2022 세계에너지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원전 비중은 2021년 27.4%로 매우 높다. (전 세계의 원전 비중 9.8%) 반면 신재생 비중은 7.5%에 불과하다. (전 세계의 신재생 비중 28.4%) 전 세계 원전 발전량 비중은 2021년 9.8%에서 2030년 9.6%로 감소하고, 신재생 발전량 비중은 2021년 28.4%에서 2030년 43.3%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2일 확정해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년)’에 따르면, 원전 비중은 2021년 27.4%에서 2030년 32.4%까지 높아진다. 신재생 비중은 7.5%에서 2030년 21.6%로 올라간다. 세계적 추세와는 정반대로 원전 비중이 더 높아지고, 신재생 비중은 전 세계 수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윤석열 정부만 ‘나 홀로 역주행’이다. (2023년 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