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 폭탄은 시작일 뿐이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난방비 폭탄의 파장이 크다. 1월의 최강 한파 뒤 나올 2월 고지서가 벌써 걱정된다. 정부는 여전히 전임 정부 탓하기 바쁘다. 대통령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은 29일 난방비 급등 상황에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전임 정부가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기에도 이를 국내가격에 제때 반영하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한국방송>(KBS)에 출연해, 진행자가 ‘지난 정부에서 제때 (요금을) 안 올려서 이번에 한꺼번에 많이 올라갔다는 뜻이냐?’고 묻자, “가격이라는 게 경제활동의 시그널이 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는데 그 가격 시그널을 제때 주지 못했던 게 큰 패착”이라고 답했다.

정부 당국이 하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니까 이제는 굳이 반박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난방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지난해 128% 폭등했다.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인 3월에 상승하기 시작해 7월부터 급등했다. 지난해 3월 9일 대선 이후 사실상 윤석열 정부가 시작된 셈이니까 가스비 대책은 현 정부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전임 정부 탓만 하는 건 무능을 자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남 탓하기 바쁜 꼴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난방비 폭탄이 현 정부의 직접적인 책임임을 드러내 주는 단적인 사례가 한국가스공사 사장 선임 문제이다. 한국가스공사는 국내 천연가스 도입의 약 80%를 책임지는 공기업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했던 전임 채희봉 사장은 지난해 7월 8일 3년 임기가 끝나게 돼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후임 사장을 선임하지 못했고, 공기업 사장은 공식 임기가 끝나도 후임자가 선임될 때까지 사장직을 유지하게 돼 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28조 제5항에 따르면 ‘임기가 만료된 임원은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후임자인 최연혜 사장이 취임한 날짜는 지난해 12월 9일이었다. 5개월 동안 사실상의 사장 공백기나 다를 바 없었다. 특히 현 정부가 후임 사장도 선임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했던 이 시기에 액화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했다. 과연 어느 정부의 책임인가?

더구나 윤 정부가 임명한 최연혜 사장은 가스 전문가가 아닌 낙하산 인사다. 박근혜 정부 때 한국철도공사 사장과 비례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최 사장은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 출신 인사다. 최 사장은 철도대학 교수를 거쳐 철도공사 사장까지 맡는 등 주로 철도 분야에서 일했고 가스와 에너지 관련 경력이 전무한 비전문가다. 그래서 사장 1차 공모 때 ‘에너지 관련 이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던 인물이다. 재공모 절차 끝에 단독으로 낙점돼 낙하산으로 사장에 선임되었다. 가스 산업 관련 전문성과 경력이 전무한 최 사장의 선임은 전형적인 보은 낙하산 인사다.

최연혜 사장은 한국철도공사 사장 재직 당시 수서발 KTX자회사(현SR) 설립을 통해 철도 민영화를 추진했던 인물이다. 그 공로로 정권에 잘 보여서 사장직을 중도퇴임하고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성할 수 있었다. 윤 정부의 최 사장 낙하산 선임이 가스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나아가 정부가 가스공사의 적자를 부각시키면서 가스 요금을 인상한 배경도 가스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한 명분 쌓기 수순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난방비 폭탄으로 민심이 들끓자 부랴부랴 긴급 대책이 나왔다. 정부는 26일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 117만6000가구에 대한 에너지 바우처 지원을 기존 15만2000원에서 30만4000원으로 두 배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뒤늦게 황급히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게, 평상시에도 지원하던 대상에게 금액만 늘리겠다는 것이다. 지금 난방비 폭탄이 취약계층만의 문제인가?

더불어민주당은 27일 7조2천억 원 규모의 ‘에너지 물가 지원금’ 지급과 함께 포괄적인 민생 회복을 위한 30조 원 규모의 민생 추경을 제안했다. 그러나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같은 날 “(민주당의 추경 제안은) 난방비 폭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당 대표 사법리스크와 관련해서 국민 시선을 돌려보려는 의도가 또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라고 일축했다.

진보당은 전 국민 에너지 재난지원금 10만 원 지급을 주장했다. 재원은,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폭리를 취해 ‘횡재’한 에너지 재벌에게 ‘횡재세’를 도입하여 충당하면 된다는 것이다. 에너지 재벌(SK, GS, 포스코, 삼천리 등)은 액화천연가스를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 직수입으로 싸게 사서 전쟁 후에 가격이 급등하자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했고, 성과급 1000%라는 돈 잔치까지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가스 요금은 2022년 네 차례 인상돼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38.5% 올랐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쓰는 열(난방·온수) 요금도 37.8% 올랐다. 요금 인상이 난방비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예고된 문제였음에도 정부의 대책이 없었으니 난방비 폭등이 서민에게 ‘폭탄’으로 터진 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태였다. 하지만 난방비 폭탄은 공급자인 에너지 기업에겐 ‘횡재’였던 것이다. 난방비 폭탄은 민생 위기, 기업 횡재이다.

한국가스공사가 지난해 2조 원에 근접한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추산되었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가스공사의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26.5% 늘어난 5226억 원으로 추정되었다. 가스공사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조3454억 원이다. 따라서 증권사 전망치대로 실적을 기록할 경우, 가스공사의 연간 영업이익은 2조 원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영업이익도 2조3225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가스공사의 적자 누적 때문에 가스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의 허구성이 드러난다.

증권업계에선 정부가 가스 요금 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 만큼 가스공사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실현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6일 “적정 시점에 적정 수준의 가스 요금 조정 문제를 검토할 것”이라면서 에너지 수요가 많은 동절기를 넘기고 나면 가스 요금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국내 주요 도시가스사 주가는 최근 1년 새 급등했다. 삼천리 주가는 지난해 1월 9만 원 수준에서 26일 현재 46만 원까지 올랐고, 지난해 1월 17만 원 안팎에서 움직이던 서울가스 주가는 26일 기준 47만 원까지 뛴 상태다. 대체 누구를 위한 가스 요금 인상-난방비 폭탄인가?

난방비 폭탄이 끝이 아니다. 민생 위기의 시작일 뿐이다. 공공요금도 줄줄이 오른다. 서울은 올해부터 1t당 480원이던 가정용 상수도 사용 단가가 100원 인상됐고, 3800원인 택시 기본요금이 내달 1일부터 4800원으로 오른다. 서울시는 오는 4월부터 시내버스 요금을 1200원에서 1500~1600원, 지하철 요금을 1250원에서 1550~1650원으로 각각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른 자치단체들도 택시·버스·지하철 요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택시 요금은 대구가 새해부터 33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렸고, 대전도 상반기에 인상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다 상하수도 요금, 쓰레기 종량제 봉투 요금, 주차요금 등 공공요금 줄인상이 예고돼 있다.

오는 4월부터 맥주·막걸리 세금도 오른다. 맥주는 리터당 주세가 30.5원 올라 885.7원, 탁주는 리터당 1.5원 올라 44.4원이 된다. 주세 인상을 빌미로 주류업계는 이미 가격 인상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는 맥주·막걸리 세금을 인상하면서 “중산·서민층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 자료를 배포해 시민들의 반발을 자초했다. 서민들 호주머니 털어가면서 정부가 미안해하기는커녕 되레 염장까지 질러대다니…. 대단한 정부다. (2023년 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