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소추권은 입법부의 헌법적 권한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8일 국회를 통과했다. 국무위원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건 헌정사상 처음이다.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 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 이제 이 장관 탄핵 파면 여부는 헌법재판소 심판만을 남겨두게 됐다. 헌재는 그 의미를 무겁게 새기고, 엄정하게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 장관의 탄핵은 늦은 감이 있다. 수도 한복판에서 159명이 숨졌는데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킬 헌법적 책무를 지닌 주무장관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상식적인 정부라면 임면권자인 대통령이 진작 해임을 했어야 마땅하고, 아니라면 장관 스스로 물러났어야 하는 것이 도리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고교·대학 후배인 이 장관을 감싸기 바빴고 국회 해임건의안마저 거부했다. 이 장관은 사퇴를 회피한 것도 모자라 책임을 부정하고 유족들을 우롱하는 망언을 연발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국회의 탄핵은 전적으로 윤 대통령과 이 장관 본인이 자초한 결과다.

대통령실은 8일 이 장관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의회주의 포기”라며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이 장관 탄핵소추를 마치 야당의 잘못된 정치적 공세인 양 비난한 것이다. 우리 헌법에 삼권분립을 명시한 것은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권력의 독점을 방지하자는 취지이며, 입법부에 탄핵소추권을 부여한 것은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다. 대통령실이 국회의 고유 권한에 대하여 시비를 거는 것은 입법부를 무시하고 군림하려는 반헌법적 행태이다. 대통령은 제왕이 아니다.

같은 날인 8일, 법원이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한테서 아들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곽 전 의원은 화천대유에서 6년간 근무하다 퇴사한 아들의 퇴직금·상여금 명목으로 50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곽 전 의원 아들은 1990년생으로 2015년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6월 화천대유에 사원으로 입사해 6년간 근무했다.

재판부도 “피고인의 아들에게 화천대유가 지급한 50억 원은 사회 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무죄란다. 말문이 막힌다. 50억 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 임원이 19년간 일해야 받을 수 있는 거액이다. 곽 전 의원의 아들이 받은 50억 원은 상식적으로 누가 봐도 곽 전 의원에 대한 뇌물이다. 이런 몰상식한 판결을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국민 법 감정과 너무나 동떨어진 판결이 아닐 수 없다. 법원에 대한 비난과 분노가 들끓는 건 당연지사다.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무죄 판결에서 법원의 민낯이 새삼 확인되었다. 법원이 얼마나 썩을 대로 썩었는가는 박근혜 정권 시절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사법 농단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사법개혁의 기대를 안고 출범한 현 김명수 사법부는 사법 농단 판사들에게 예외 없이 무죄 판결로 면죄부를 주었다. 사법 농단의 주역들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무사하게 법관으로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사법 농단 사건의 피고인석에 섰던 자들이 태연히 변호사로 개업해 잘 나가고 있다. 서초동에선 퇴직한 사법 농단 판사들이 전관예우 효과로 사건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풍문까지 돌고 있는 지경이다.

사법부는 남을 심판만 하지 심판을 받지 않는 권력이다. 사법부는 자기의 독립만 강조할 뿐 판결의 책임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사법부의 독립은 사법부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며, 법관의 이름으로 아무 판결이나 막 해도 된다는 면허장을 주는 것이 아니다. 법의 악용과 오판은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는 독약과 같다. 사법부 독립의 악용과 법원의 오판을 견제하고 바로잡기 위한 사후 교정 절차가 탄핵제도이고, 입법부는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를 제기할 수 있는 헌법적 권한을 갖고 있다. (헌법 제65조에 의하여 판사는 국회의 탄핵소추 대상이다)

검찰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뇌물죄가 무죄라는 황당한 판결이 나온 데 대해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할 기관은 검찰이다. 알선수재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것은 검찰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부실 수사를 하고 봐주기 수사를 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몰상식한 판결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검찰은 대장동 수사 과정에서 이른바 ‘50억 클럽’ 수사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씨가 김만배 씨와의 대화를 녹음한 녹취록에는 50억 원씩 줘야 하는 대상으로 곽 전 의원과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박영수 전 특별검사,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의 실명이 거론됐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검찰 수사는 없었다. 곽 전 의원이 무죄를 받음으로써 이들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 부실 수사로 무죄 판결을 방조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더불어민주당으로선 검찰을 비판할 만하다. 이재명 대표는 10일 “곽상도 전 검사의 50억 원 뇌물 의혹이 무죄라는데 어떤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며 “이재명을 잡겠다고 쏟는 수사력의 10분의 1만이라도 ‘50억 클럽’ 수사에 썼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9일 검찰을 향해 “50억 클럽의 구체적 진술을 확보해 놓고 수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봐주기였다”고 비판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도 “야당 대표에 대해서는 먼지도 몰래 집어넣고 탈탈 털어대면서도, 제 식구들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검찰에 대해 국민들의 불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가세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차지한 검찰이 얼마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권력기관인지에 대해선 구태여 설명이 더 필요 없을 터다. 검찰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조차도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걸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여실히 보여줬으며, 오늘 ‘검찰 공화국’ 윤석열 정부에서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고 있다. 검찰의 편파적인 수사가 어디 곽상도 전 의원의 봐주기 수사뿐인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을 받는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 검찰은 단 한 차례도 조사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비판은 전적으로 지당하다. 하지만 왜 말로만 비판하는 데서 그치고 마는가 하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쓴소리로 비판한다고 검찰이 개과천선할 가능성은 추호도 없다. 검찰의 봐주기 수사와 ‘선택적 정의’를 바로잡을 실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검찰 권력의 불법‧위법 행위에 대한 견제 장치가 없는 게 아니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후 교정 절차가 바로 탄핵제도이고, 입법부인 국회에 그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입법부의 제1당으로 단독으로 검사에 대한 탄핵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검찰청법 제37조에 의하여 검사는 국회의 탄핵소추 대상이다)

판검사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1/3 이상이 발의하여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이 가능하다. 탄핵소추 의결이 되면 국회의장은 지체없이 소추의결서를 피소추자에게 송달하고 소추의결서가 송달된 때부터 피소추자의 권한이 정지된다. 판검사에 대한 탄핵소추는 더불어민주당이 의지만 있다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런 실효적인 조치를 검토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법원과 검찰을 비판하는 건 유감이다. 말로 아무리 강하게 비판해봐야 그 진정성에 대하여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경우 1948년부터 현재까지 판검사에 대한 탄핵 파면 사례가 전혀 없다. 지금껏 단 한 건도 없다는 것은 판검사에 대한 탄핵제도가 사문화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탄핵제도가 사문화된 상황에서는 판검사에 대한 견제와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들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거나 상급자의 통제에 따를 뿐 국민의 법 감정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아도 무사할 수 있다. 사법부 독립과 검찰 독립의 탈을 쓰고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한 그들만의 성에 갇혀 산다. 사법 권력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문화된 탄핵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탄핵소추권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다. (2023년 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