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폭’ 척결, 생사람 잡는 권력의 망나니 칼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윤석열 정부는 작년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200일에 걸쳐 건설노조에 대한 특별단속을 선포하고 검·경이 연일 압수수색을 자행했다. 국토부, 공정거래위원회, 언론까지 총동원하여 전방위적인 탄압을 가하고, 건설노조의 활동을 불법행위로 매도하면서 거짓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

급기야 윤 대통령이 지난 21일 ‘건폭(建暴)’의 근절과 단속을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해 건설현장에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는 지시다. 건설현장의 불법행위를 조폭(조직폭력)과 학폭(학교폭력), 주폭(酒暴)에 빗대다니, 대통령의 말이 품격 없고 사납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검경의 ‘건폭수사단’이 설치되었고,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건폭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정권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건설노조가 ‘건폭’이고 건설노조를 단속하면 건설현장이 정상화되고 법치가 확립되는가. 건설현장에 불법이 횡행하고 법치가 부재한 것이 건설노조 때문인가.

건설현장의 현실을 보자. 기억에 선명한 사례가 2021년 6월 광주에서 발생한 HDC현대산업개발의 붕괴사고로, 당시 사고로 9명이 사망하였다. 국토교통부가 진행한 건설사고조사위원회 결과를 보면, 애초 책정되었던 해체공사비는 평(3.3㎡)당 28만 원이었으나,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거치며 평당 4만 원까지 줄어들었다. 국토교통부는 불법 하도급 차단을 약속했으나 지금껏 이행된 게 없다.

현대산업개발 붕괴사고의 원인이 건설노조 때문인가. 책임은 전적으로 건설사에 있다. 건설사의 이윤 독점을 위한 불법 하도급 구조가 문제다. 건설현장의 해체 노동자들은 불법 하도급 구조의 피해자이고, 건설노조의 조합원들은 이런 불법 관행을 없애기 위해 건설현장에서 줄기차게 투쟁해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건설노조를 단속하겠단다. 건설현장의 불법을 척결하려면 건설자본의 불법 하도급을 단속해야지, 불법 관행을 반대하고 건설현장에서 법을 지키라고 투쟁하는 건설노조를 단속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돌팔이가 생사람 잡는 격이다.

건설산업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이다. 건설산업은 연간 260조(국내총생산의 약 15.2%)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지며 약 200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일하는 산업현장이다. 2022년 기준 총 94,567개의 건설사가 등록되어 있으며, 건설현장은 발주처-원청건설사-하청건설사-(재하청)-건설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뤄져 있다. 건설현장은 일제 식민지 이래 이른바 ‘오야지’, ‘십장’ 중심의 인력공급체계로 되어 있고, 다단계 불법 하도급 구조 속에서 부실시공과 부정부패가 만연한 현장이다.

건설산업의 최정점에 위치한 대형 건설사들이 이윤을 독식하고 현장 건설노동자들은 저임금·불안정 고용 상태에서 하루하루 목숨을 건 위험한 노동을 해야만 하는 처지다. 한해 417명의 건설노동자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있으며, 전체 산재 사망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건설노동자들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한 임금, 임대료 체불, 공기 단축을 위한 불안전한 건설현장을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으로 뭉쳤으며, 노동조합의 활동과 투쟁으로 건설노동자들의 삶과 건설현장을 차츰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부실공사의 원인이 되고 있는 대형 건설자본들의 불법과 비리는 눈감고 비호하면서 오히려 건설현장의 불법을 없애고 안전하고 투명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 힘써왔던 건설노동자를 탄압하겠다고 한다. 법치를 내세우는 정부가 건설노동자의 합법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권장하고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대통령이 앞장서서 건설노조를 ‘건폭’이라고 매도하면서 엄정하게 단속하라고 지시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생사람 잡는 망나니 칼춤이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노조의 회계 투명성이 뒷받침되지 않고 부패하게 되면 납품 시스템 등 기업 생태계가 왜곡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출처와 용처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지난 1일 “노조법 14조에 따른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의 비치·보존의무 이행 여부를 점검하겠다”며 “비치·보존 대상 서류별로 증빙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17일부터 2주간 시정 기간을 부여하고 미제출한 노조에 대해선 과태료 부과 및 현장조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노조에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은 위법하다고, 국회입법조사처는 해석했다. 노조가 행정관청에 제출해야 하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에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가 포함되지 않으므로 고용노동부의 조치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입법조사처 의견의 근거는 대법원 판례다. 대법원은 지난 2017년 “외부로 반출될 경우 제삼자에게 노조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가 유출될 우려가 있고, 이로 인해 노조의 자주적 운영이나 전체 이익이 저해될 우려”가 있을 경우 등사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또 한국이 지난 2021년 4월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도 근거로 제시됐다. 협약 제87호 제3조는 “노동조합이 자유롭게 사업을 수립할 권리”와 “행정기관의 노동조합 권리행사 방해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에 관한 위원회’는 정부는 회계에 관해 통상적인 사항의 제출을 노조에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나 간섭이 위험을 수반하는 경우 협약 제87조에 위반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노조에 일방적으로 회계자료를 요구할 수 없는데도 정부는 과태료 부과까지 언급하며 노동계를 겁박하고 있다. 노조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는 조합원들에게 공개하면 족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노조에 의무가 아닌 행위를 강요해선 안 된다. 입만 열면 법치주의를 주장하는 정부가 법적 근거도 없이 노조를 압박하는 게 공정과 상식에 맞는가.

정작 대한민국에서 국민 세금을 가장 불투명하게 사용하는 곳은 정부이며, 특수활동비 예산이 대표적이다. 기획재정부 예산집행지침에 따르면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 경호 등 국정 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 국가정보원을 비롯해 국방부, 청와대, 법무부, 경찰청 등 주요 정부 기관에 매년 1조 원에 가까운 예산이 배정되고 있다. 하지만 수사 등 기밀 유지를 명분으로 증빙자료 없이도 현금 사용이 허용되다 보니 그동안 기관장 등의 쌈짓돈처럼 악용돼왔다.

지난해 12월 15일 서울고등법원은 검찰이 사용하는 특활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의 집행내역과 지출증빙서류를 일부 비공개대상 정보만 제외하고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면 윤 대통령이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당시 사용한 특활비 등의 용처가 공개된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으로 재임 당시 특활비로 약 147억 원을 현금으로 썼다. 일선 검찰청과 대검 부서에 배정되는 특활비를 제외하고, 검찰총장이 직권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시 집행’ 규모는 연간 50억 원대에 이른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원이나 검찰의 특활비 등은 물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미국 출장비 지출도 국가기밀이라고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 정부가 조합원의 조합비로 운영되는 노동조합의 회계장부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정부가 회계의 투명성에 대하여 말하려면 윤 대통령 본인이 검찰총장 시절에 쓰고서 용처를 밝히지 않은 특활비 내역부터 먼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도리다. 구린 구석이 없으면 공개 못 할 이유가 없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을 터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2023년 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