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친일매국의 종착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3·16 도쿄 한일정상회담의 후폭풍이 거세다. 친일매국의 역사적 참사라는 거센 비판과 뜨거운 분노가 들끓고 있다.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공식 브리핑에서 “(기시다) 총리가 한일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구했다”고 밝히고,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현안에 “다케시마(독도) 문제도 포함된다”고 답했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오락가락하며 말을 바꿨다. 16일에는 “강제징용 문제를 비롯해 미래지향적으로 한일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에 얘기들이 집중됐다. 그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다”고 했다가, 17일에는 “위안부 문제든 독도 문제든 논의된 바가 없다”고 언론 공지를 냈다. 18일 박진 외교부 장관은 KBS의 진행자가 ‘의제로 논의된 바 없지만, 기시다 총리가 그 부분에 대해 말을 꺼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느냐’고 묻자, “정상회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고 답변을 회피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같은 날 YTN에서 같은 질문을 받자 “회담에서 오고 간 정상들의 대화는 다 공개할 수가 없다”고 얼버무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독도 문제와 같이 예민한 현안에 대해 정부 당국자의 말이 바뀌고 답을 회피하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2008년의 사건을 상기해보자. 그해 7월 15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후쿠다 야스오 총리로부터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를 일본땅이라고 명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해 듣자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즉각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고, 이동관 당시 대변인은 “한국 내부를 분열시키고 독도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기 위한 일본 언론 보도라면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요미우리신문>은 “보도 내용은 사실”이라고 반박했고, 훗날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스크스>에서 미국 외교 전문이 공개됨으로써 사실임이 밝혀졌다.

정상회담 하루 전인 15일에 보도된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30년 넘게 법정에서 싸워 쟁취한 한국 최고법원의 판결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16일 정상회담에서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정부의 해석과 대법원 판결이 다르다”면서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일본의 주장을 편들었다. 주지하듯이 조약과 법령에 대한 최종 해석 권한은 대법원에 있다. 행정부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뒤집는 것은 ‘삼권 분립’의 헌법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일본 피고 기업에 대한 구상권 행사 가능성을 배제하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16일 정상회담 뒤 질의응답에서도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민법상 구상권 행사 시효는 10년이다. 임기가 4년 남짓 남은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자신의 임기 이후에도 효력이 유지되는 구상권 청구 배제를 약속한단 말인가.

역사에 길이 남을 친일 매국 행각에 대한 분노와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대통령실은 19일 ‘커다란 성공’이라며 한일정상회담의 성과를 자화자찬하고 나섰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오후 언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 방일 기간 중에 한국과 일본에서 보기 드물게 양국의 여론이 일치하는 분위기가 형성이 됐다”며 “한국과 일본의 여론이 이 정도로 일치된 적이 과거에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실 대변인인지 조선총독부 대변인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하나만 덧붙이고 넘어가자. ‘제3자 변제’ 방식이라는 졸속 해법은 어차피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제3자도 채무를 변제할 수 있다. (민법 제469조 ① 채무의 변제는 제삼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삼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이해관계없는 제삼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 ‘제3자 변제’에는 단서 조항이 있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성립하지 않는다.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돈 안 받는다”고 단호하다. 2항에도 어긋난다. 채무자인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사실도 인정 안 하고 채무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제3자인 한국 정부의 재단이 대신 갚아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제3자 변제’를 원치 않아 배상금을 받지 않는 피해자가 있을 경우 추가적인 소송이 불가피하다. 재단이 지급하는 배상금을 피해자가 거부하면 재단 측에서 법원에 공탁을 하고 배상 절차를 끝낼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 측에서 제3자의 공탁은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공탁 무효소송을 내고 일본 기업의 사과와 직접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요컨대 졸속 해법으로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복잡하게 꼬이기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민심의 분노와 저항은 말할 것도 없고 문제 해결에 도움은커녕 논란만 키울 뿐임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친일매국 외교를 조급하게 서둘렀다. 3‧1절 기념사를 시작으로, 6일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 발표, 16일 정상회담까지 숨 가쁘게 이어진 윤 대통령의 행보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3월 한일정상회담 → 4월 한미정상회담 → 5월 한‧미‧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윤 대통령의 외교 일정이 그 종착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한‧미‧일 3각 동맹 강화이다. 윤 대통령은 다음 달 조 바이든 대통령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한미동맹 강화를 확인할 예정이다. 이어 5월에 기시다 총리의 초청으로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되면 한‧미‧일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3각 동맹 강화를 선언할 수 있다.

백악관은 6일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 뒤 즉각 바이든 대통령 명의의 성명을 공개했다. 성명은 “오늘 한국과 일본의 발표는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 간의 협력과 파트너십에서 신기원적인 새 장을 장식했다”며 “이번 해법을 계기로 한‧미‧일 3국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기를 바란다”고 환영했다. 미국이 자정 시간대임에도 백악관은 대통령 명의의 성명을 즉각 공개하고, 바이든 대통령 외에도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 등이 지지 성명을 쏟아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을 국빈 방문 형식으로 4월 말 미국에 초청하였다.

미국 정부가 이렇게 반색하면서 환대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뉴욕타임스(NYT)는 “화해를 향한 양국 정상의 조치는 한일 양국에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미국과 한일 간의 동맹에도 의미가 있다”면서 “미국은 대(對)중국 보루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 위해 이 지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 서로 잘 지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16일(현지시간) ‘반도를 넘어서는 한미동맹 강화’ 보고서에서,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한미동맹은 이제 새로운 장으로 넘어갈 전기에 서 있다. 한‧미‧일 3각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한일)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를 정상화하고, 이에 맞춰 일본은 한국을 오는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플러스 정상회의에 초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일 3각 동맹 강화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핵심 고리의 하나이다. 그런데 한‧미‧일 3각 동맹은 대등한 동맹이 아니라 상하서열이 분명한 동맹이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고 일본을 동북아의 중심으로 삼아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 참여시키는 구조이다. 윤 정부는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참여하기 위하여 한일 관계 ‘정상화’를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고 있다. 윤 정부가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에 대하여 면죄부를 안겨주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신분 세탁을 해준 것은 한‧미‧일 3각 동맹 편입을 위한 조치다. 한‧미‧일 3각 동맹 편입을 위한 친일매국은 망국의 길이다. (2023년 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