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리스크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4월 24일부터 29일까지 미국을 방문한다. 윤 대통령은 26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27일엔 미 상하원합동회의에서 연설한다. 대통령실 최상목 경제수석은 19일 브리핑에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인 윤 대통령과 함께 경제 중심 정상 외교를 구체화 나가겠다”고 말했다. 1호 영업사원의 미국 방문에 대규모 경제사절단도 동행한다. 5대 그룹 총수를 비롯해 6대 경제단체장이 총출동하고 122개 기업이 참가한다.

한미간에 경제 현안은 명확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지원법이다. 두 법안 문제에 대해 한미간에 어떤 논의가 이뤄질지가 핵심 관심사인데, 회담 결과를 지켜볼 것도 없게 됐다. 이 두 법안이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 수석은 “이 분야(두 법안)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고 있다”며 “구체적인 건에 대해 얘기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두 법안은 한미 정상회담의 의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정부의 설명대로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고 한국 기업의 우려가 대부분 해소되었는가? 미국 재무부는 지난 17일(현지시각) 인플레이션감축법 세부지침에 따라 최대 7500달러에 달하는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차종을 공개했다. 수혜 대상 차종에서 현대차는 제외됐다. (일본·유럽의 경쟁차종도 제외) 정부의 말과 달리, 우려가 해소된 것이 아니라 우려가 기정사실로 된 것이다. 경제의 핵심 관심사가 한미 정상회담의 의제에서 제외된 것은 우려가 해소되어서가 아니다. 미국 정상에게 불편한 사안이고 우리의 요구를 받아줄 것 같지도 않으니, 정상회담에서 아예 얘기조차 꺼내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알아서 기는 사대 굴욕 외교다.

핵심 관심사에 대하여 말도 꺼내지 않을 거라면 대체 대통령이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의 방미 외교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최 수석은 19일 브리핑에서 이번 순방 경제 외교의 의미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첨단기술 동맹의 강화’라며 △공급망 협력 △첨단 과학기술 △첨단 기업 투자 유치 세 가지를 방미 경제 외교 주요 키워드로 꼽았다.

‘첨단기술 동맹의 강화’에 따른 공급만 협력과 첨단 과학기술 및 기업 투자는 이번 미국 방문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경제 외교 의제가 아니다. 지난해 5월 서울에서 개최됐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경제·기술 파트너십’에서 이미 다뤄졌던 의제이다. 그때 한미 양국은 “첨단 반도체, 친환경 전기차용 배터리, 인공지능, 양자기술, 바이오기술, 바이오제조, 자율 로봇을 포함한 핵심·신흥 기술을 보호하고 진흥하기 위한 민관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주1)

‘전략적 경제·기술 파트너십’이니 ‘첨단기술 동맹의 강화’니 하는 표현은 그럴싸하게 포장된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 외교적 수사 속에 감춰진 이면의 경제적 의미와 그 현실적 결과가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지원법에서 그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마디로 미국이 첨단기술을 독점하고 한국은 동맹에 묶여 기술 종속국이 되라는 것이다.

한미 첨단기술 동맹의 실행은 한국 기업의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약 20조 원)를 투자해 신규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 건설 계획과 함께 2025년까지 총 105억 달러(약 13조 원)를 투자한다. SK그룹도 오는 2030년까지 미국에 520억 달러(약 66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그러면, 한국 기업이 대규모 대미 투자의 결과로 거둔 이익은 무엇인가?

삼성전자와 SK가 대규모 미국 투자를 진행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지원법으로 ‘10년간 중국에 신규 투자 금지’로 답했다. 중국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기지를 가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선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게다가 미국은 최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까지 제한해 반도체의 약 60%를 중국에 수출하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로선 재앙이다. 현대자동차는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직격탄을 맞았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첨단기술 동맹의 이름으로 포장된 미국의 기술 수탈과 이윤 독점의 실상이다.

지난해 5월 한미 양국 정상이 “군사·안보 중심의 한미동맹을 경제‧안보 동맹으로 격상시킨다”고 합의한 동맹 강화의 결과가 이러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가 안보고 안보가 경제”라면서 ‘철통같은 혈맹’을 강조했지만, 경제‧안보 동맹 강화의 결과는 한국 반도체의 숨통 조이기와 전기차의 보조금 혜택 제외다. 뭐 주고 뺨 맞는다더니, ‘글로벌 호구’로 전락해 처참하게 굴욕을 당했다. 동맹의 배신이다.

동맹의 배신은 외교적 굴욕과 국격의 추락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국 경제 위기로 직결된 것이다.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던 중국이 올해 들어 최대 적자국이 됐다. (※주2) 올 1분기 대중 무역적자만 78억4000만 달러이고, 전체 무역적자의 35%를 차지한다.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6816억 달러의 흑자를 거뒀다. 전체 무역흑자(7462억 달러)의 91.3%에 달한다. 그런데 이제 중국이 최대 적자국으로 바뀌었다. 주력 시장에서 탈이 났으니 한국 수출 전체가 온전할 리 없다. 수출은 6개월 연속 감소, 무역수지는 13개월째 적자행진이다.

그동안 정부는 대중 수출 감소와 무역수지 악화의 원인을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경제 침체 등의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최근 중국 경제는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우리 수출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방역 정책 완화와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이후 중국의 올해 1분기 실질 경제 성장률은 4.5%(지난해 동기 대비)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의 대중 수출액은 올해 1분기 지난해보다 29.8% 줄었다.

중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흑자국에서 최대 적자국으로 뒤바뀐 데서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했지만, 윤석열 정부의 ‘탈중국’ 외교를 빼놓을 수 없다. 문제는, 나 홀로 ‘탈중국’이란 것이다. 독일·스페인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 등 미국의 우방으로 꼽히는 유럽 수장들조차 중국을 방문해 ‘탈중국’에 반대하며 실리 외교를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인 한국 정부만 나 홀로 ‘탈중국’이다.

심지어 미국조차도 ‘탈중국’을 부정한다. 20일 도쿄를 방문한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미국이 중국과 디커플링(탈동조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장관도 같은 날 “우리는 중국 경제와 우리 경제를 탈동조화하려 하지 않는다”면서 “미중 경제의 완전한 분리는 두 나라 모두에 재앙적이 될 것”이라며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불안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외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하고, 대만 문제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발언하여 나라 안팎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탈중국’을 넘어 아예 반중·반러를 천명하자는 건가? 대통령 리스크가 심각하다. 무식한 탓이건 무모한 짓이건 대통령이 사고를 치고 나면 그 대가는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미국 방문에서 또 무슨 대형 사고를 칠지 걱정이다. 언제까지 대통령 리스크를 감당해야 할까? (2023년 4월 24일)

※주1. 2022.05.21. 한미 정상 공동성명

※주2.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2018년 한국의 무역 흑자국 1위(556억 3600만 달러), 2019년 2위(289억 7400만 달러), 2020년(236억 8000만 달러)과 2021년(242억 8500만 달러)에 각각 3위였다. 윤석열 정부 첫해인 2022년(12억1300만 달러)에 22위로 추락했고, 2년 차에 최대 적자국이 됐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의 성적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