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와 역전세 대책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지난달 24일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태가 또 발생했다. 벌써 네 번째 사망자다. (‘빌라왕’사건의 피해자가 지난달 8일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숨진 것까지 포함하면 전세 사기 관련 사망자는 총 5명이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는 피해 가구가 3000세대가 넘고, 피해 금액도 수천억 원에 이른다.

전세 사기는 정부가 임대사업자, 공인중개사, 건설업자, 대출브로커 등의 불법 행위를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정부의 관리 감독이 허술한 탓에 전세 사기를 벌이겠다고 작정하고 덤비면 피해자로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전세 사기 피해자는 청년층, 신혼부부, 은퇴한 노령층 등 대부분 주거 취약계층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전세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길거리로 쫓겨나고 있다. 인천시에 국한된 문제만도 아니며, 전국적으로 전세 사기 피해 확산이 걱정이다.

사망자가 연이어 발생하고 피해자들이 대책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는데도 정부의 정책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긴급대책으로 세입자가 최소한 최우선 변제금(※주)이라도 회수할 수 있게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전세 사기 특별법은 최우선 변제금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보증금 보장과 최우선 변제금 수준의 주거비 지원 방안이 빠졌다. 정부·여당이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최우선 변제금만큼을 무이자로 대출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미 빚에 허덕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 다시 빚의 구렁텅이로 내몰겠다는 것인가.

전세 사기 피해와는 다르지만, 집값 하락과 전세가 하락에 따른 ‘역(逆)전세난’ 사태가 벌어질 조짐이다. 지난 4일 한국은행이 낸 ‘깡통전세·역전세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깡통전세 위험가구 비중은 8.3%(16만3000호)로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1월(2.8%, 5만6000호)의 약 3배다. (깡통전세: 월세가 없는 완전 전세 매물 중 최근 6개월 내 매매가격이 기존 전세보증금을 밑도는 경우)

역전세(최근 6개월 내 전세가격이 기존 전세보증금을 밑도는 경우) 위험가구의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같은 기간 25.9%(51만7000호)에서 52.4%(102만6000호)로 급증했다. 전체 전세 매물의 절반 이상이 역전세 위험가구란 말이다. 게다가 한은은 “신고된 거래만을 대상으로 추정한 값”이라며 “실제 깡통·역전세 위험가구 규모는 더 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신고된 거래(지난해 평균 약 200만 건)만을 대상으로 추정한 것이며, 전체 전세계약 수(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약 325만 건)를 감안하면 전세시장의 상황은 훨씬 심각할 것이다.

전세가 하락은 서민들의 주거 안정 차원에서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전세가 하락으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세입자는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지만 역전세의 경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집주인이 차액을 메울 돈이 없거나, 신규 전세 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세입자는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기 어렵다. 이런 역전세 상황이 전세 사기 못지않게 서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다.

문제는 깡통전세·역전세 위험 물량의 상당수가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 계약이 만료된다는 점이다. 깡통전세 중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 계약이 끝나는 비중은 각각 36.7%, 36.2%다. 역전세는 각각 28.3%, 30.8%인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하반기부터 전세금 반환을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갈등을 빚는 깡통전세·역전세 쓰나미가 몰아닥칠 가능성을 예고한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태가 대거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역전세 가구가 올해 하반기에 29만 채, 내년 상반기에는 31만6000채의 계약기간이 끝난다. 집주인이 내줘야 할 전세금 하락분만 수십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데, 집주인이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깡통전세·역전세 사태가 예상되자 정부는 대출을 풀어 대응하겠다고 한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역전세로 인해 부동산 시장과 국민의 경제생활에 큰 혼란이 있어선 안 된다는 문제 인식 아래, 전세금 반환 보증과 관련된 대출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임대인)을 위해 제한적으로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금 반환이 어려운 집주인들에게 대출을 늘려주기 위해 대출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은 역전세 문제가 발생하면 임대인이 대출을 통해서 임차인의 보증금을 돌려주라는 것이다. 전세금 반환은 전적으로 임대인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부는 전세가가 하락했다고 임대인을 위해 대출을 늘려주겠다고 한다. 가뜩이나 집값 거품이 심각한데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는 것이 올바른 정책도 아닐뿐더러, 정부가 나서서 임대인에게 왜 그런 편의를 봐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는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 경제에 적신호가 울리고 있는데 부채를 줄이기는커녕 되레 부채를 더 늘려서 어쩌자는 것인가.

지난달 29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를 살펴보면 올해 1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2.2%로 세계 34개 나라 중 1위를 기록했다. 올 1분기 말 기준 가계부채는 1853조9000억 원으로, 가계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을 넘어선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한국 다음으로 홍콩(95.1%), 태국(85.7%), 영국(81.6%), 미국(73%), 말레이시아(66.1%), 일본(65.2%), 중국(63.6%), 유로 지역(55.8%), 싱가포르(48.2%) 등 순이었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의 80%를 넘어설 경우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와 같이 가계신용 비율이 100%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가계부채 증가가 거시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효과가 상당히 크므로, 가계신용 비율이 80%에 근접할 수 있도록 가계부채를 줄여나가기 위한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을 강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가계신용 비율을) 80%까지 낮추는 것은 중장기 과제”라고 언급했다.

2007~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당시를 돌아보자. 당시 미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4년 85%를 넘어선 뒤 계속 높아져 위기의 정점이었던 2008년 98%까지 치솟았다. 결국 금융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정부 차원에서 부채 축소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가계부채 비율은 2011년 80%대로 낮아졌고, 2014년 70%대로 떨어졌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주요 국가들은 가계부채 비율이 80% 이상으로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했다.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는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0년 3분기(100.4%) 처음으로 100%를 넘어선 이후 좀처럼 그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벌써 3년 동안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1위이고 그 규모가 국내총생산을 넘어선 유일한 국가인데도, 정부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 없다. 부채를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늘리고 있다. ‘특례보금자리론’으로 40조 원을 쏟아부어 집값이 9억 원 이하면 누구에게나 4%대 금리로 5억 원까지 대출해 주고 있다. 전세 사기와 역전세 대책도 대출 늘리기와 다름이 없다. 부채거품은 언젠가 터지는 법이다. 가계부채 거품이 터지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2023년 6월 5일)

※주. 최우선 변제금: 소액임차인의 보증금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주는 제도. 임차인은 보증금 중 일정액을 다른 담보물권자보다 우선하여 변제받을 권리가 있다. 보증금 전액을 보장해주지는 않고, 지역별로 일정한 금액 이하만 보호를 받는다. 대체로 소액인 보증금 기준의 3분의 1 정도 되는 금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