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내전, 해마다 4만 명 사망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6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졸업식이 열린 고등학교 부근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 최소 2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고 AP·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2일에는 플로리다주에서 한 흑인 여성이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백인 이웃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뒤늦게 현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 총기폭력아카이브(GVA, Gun Violence Archive)에 따르면 올해 들어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사고 사망자는 6월 11일(현지 시간) 기준 18,890명을 기록하고 있다. 자살한 사람이 10,692명이고, 총기로 인해 살해된 사람이 8,198명이다. 올해 총기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가운데 11세 이하 어린이가 118명이고, 12세에서 17세 사이 청소년도 669명이다.

이 단체는 10년 전부터 미국의 총격 사건을 조사 분석해 왔다. 2014년 272건이었던 대규모 총격 사건(총격으로 4명 이상 다치거나 사망)은 2019년에 415건으로 늘었다. 그러다 2020년에 610건으로 크게 늘었고, 2021년에는 690건이 발생했다. 지난해에도 646건이 발생했고, 올해는 6월 11일 기준 284건이 발생했다. 최근 3년간 평균 하루 두 건꼴로 대규모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이 단체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총기와 관련해 목숨을 잃은 사망자 수는 최근 3년간 해마다 4만 명이 넘었다. (2020년 43,425명, 2021년 48,830명, 2022년 44,290명) 매일 120여 명이 총기사고로 숨졌고, 매년 2만 명 이상이 총기 타살로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말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가장 최신 자료인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18세 이하 사망 원인 1위가 총기사고(18.7%)다. (2위 교통사고 16.5%)

미 의회조사국(CRS)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벌인 5대 전쟁에 참여해 전사한 미국인은 베트남전 47,000여 명, 한국전쟁 33,000여 명, 이라크전 30,519명, 아프가니스탄 1,909명, 걸프전 148명이다. 지난 3년간 미국에서 총기사고로 숨진 사망자 수(136,545명)가 미국의 5대 전쟁 전사자 수(11만2,500여 명)보다 더 많다. 미국에서는 하루에 120여 명이, 해마다 4만 명 이상이 총으로 죽고 죽이는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여 동안 우크라이나군의 전사자를 1만5500~1만7500명으로 추정하는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가 지난 4월에 보도된 바 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3월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미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기밀문서 50여 건을 검토한 결과, 이 가운데 하나가 미국 국방정보국이 수집한 군 피해 상황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 사상자는 12만4500~13만1천명(전사자 1만5500~1만7500명, 부상자 10만9천~11만3500명) 규모였다. 미국에서 총기 타살로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사망자 수가 우크라이나군 사망자 수보다 더 많다.

스위스 소재 국제 무기 조사기구인 스몰암스서베이(Small Arms Survey)는 지난 2018년 미국인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총기를 약 3억9천300만 정으로 추산했다. (※주1) 이는 그해 미국 인구(3억2680만 명)보다도 많은 숫자다. 인구 100명당 120.5정으로, 미국은 인구보다 민간인 소유 총기가 더 많은 유일한 국가다. 2015년부터 내전을 치르고 있는 나라 예멘(100명 당 52.8정)보다도 2배 이상 월등히 높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 센터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10명의 미국인 중 4명은 총기를 소유하고 있는 가정에서 살고 있고, 30%의 성인은 개인적으로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 (모든 미국인이 총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총기를 여럿 가진 사람이 많다) 총기 소유자의 3분의 2는 “자기방어를 위해 총을 구매했다”고 답했다. 총기사고가 빈번하게 벌어질수록 자위권 행사를 위해 총기를 보유하려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미국 총기 판매점은 5만여 곳이다. 이는 맥도날드 매장의 4배나 되는 수치다. 총을 쉽게 구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므로 미국에서 총기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하므로 고육지책으로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자위권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미국인의 암울한 처지가 안타깝다.

미국민의 총기 규제 여론은 어떨까. 갤럽이 2021년 10월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52%, ‘현상을 유지해야 한다’ 35%,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11%로 나타났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규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총기 난사로 총기 규제 여론이 높아졌다가도 그때 잠깐일 뿐이고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에 대한 전망은 회의적이다. 미국은 총기 소유를 헌법상 권리로 보장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1791년에 제정된 미 수정헌법 2조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은 개인의 총기 소유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연방헌법 제정 당시 국가의 치안 능력이 충분히 갖춰지지 못했던 사정을 반영한 조항이다. 하지만 18세기의 조문을 200년이 훨씬 지난 21세기에도 개정하지 않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미 대법원은 2007년 워싱턴DC 등 일부 도시의 총기 소유 규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수정헌법 2조를 개정하지 않는 한 미국에서 총기 소지를 원천적으로 막기 어렵다. 미국의 헌법 개정 절차는 연방의회가 개정안을 제안하고 50개 주 의회 중 38개 이상이 찬성할 경우 비준이 완료된다. 연방의회가 개정안을 제안할 가능성도 기대하기 힘들지만, 38개 이상의 주 의회가 찬성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규제 입법을 책임진 의회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총기 생산업체나 총기협회의 집요한 로비는 물론이고 협회가 회원을 통해 투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미국 정치인과 의원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총기 규제 입법에 소극적이다. (※주2)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치인들은 뭔가를 하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잠시 기만적인 정치적 술수를 연출할 뿐이다. 총기 규제 여론이 뜨거웠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는 것을 반복해 왔기에 애도의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다. 네덜란드 일간지 NRC는 “주지사가 단합을 호소하고, 대통령이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정치인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비극을 이용하는 일련의 행태가 이제는 익숙해진 의식이 됐다”며 “그 이면에선 다음 참사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고 신랄하게 비꼬았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하여 관여하고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하여 운운하는 것은 주제넘은 수작이다. 남의 얘기하기 전에 제 나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하여 먼저 신경 쓰는 것이 주제에 어울리는 처신이다. (2023년 6월 12일)

※주1. 세계 인구의 4%를 차지하는 미국의 민간인들이 전 세계 소형 총기의 약 40%를 갖고 있다. 미국 민간인들의 수중에 있는 소형 총기는 나머지 상위 25개국 민간 보유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주2. 전미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단체 중 하나다. 모든 형태의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로비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으며, 그들의 목표를 지지하는 미국 정치인과 의원들에게 자금을 지원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 10명의 대통령이 NRA 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