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의 교육개혁 코미디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관련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대통령실과 교육 당국은 윤 대통령 발언 뒤치다꺼리하느라고 곤욕을 치르고 있다. 혼란을 자초한 장본인은 대통령인데 파문이 확대되자 정작 책임은 하급 교육 담당자 문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의 반복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관련해 변별력은 갖추되 학교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하고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은 출제에서 배제하라.” (15일 오후 2시, 이주호 교육부 장관 브리핑)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 공교육에서 다루는 내용에 관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더 보충하기 위해 사교육을 찾는 것은 막기 어렵다.” (15일 저녁 6시, 대통령실 윤 대통령 발언 추가 공개)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을 얘기한 게 아니다.” (16일 아침 8시,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서면 브리핑)

 

16일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이 경질되었다. 윤 대통령이 수능 관련 발언을 꺼낸 바로 다음 날이다. 인재정책기획관은 수능 등 대학 입학전형과 반도체 등 첨단분야 인재 양성 및 학술지원 정책을 총괄하는 보직이다. 올해 1월에 임명됐는데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전격 교체됐다. 수능을 150여 일 앞두고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된 건 이례적이다. 6월 모의고사가 어려웠다고 교육부가 출제기관에 대해 감사를 하겠단다. 6월 모의평가의 채점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고 난이도가 크게 논란이 된 사안도 아닌데,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난리법석이다.

 

윤 대통령이 교육 정책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뜬금없이 만 5살 조기 입학 학제 개편안을 꺼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당시 교육부 업무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은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향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다가 거센 반발 여론에 부딪혔다. 파문이 커지자 박순애 교육부 장관을 경질했다. 임명한 지 35일 만에 교육부 장관을 교체하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이번에도 윤 대통령은 교육부 장관을 ‘엄중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은 대통령이 일으켜놓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아래로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태는 의례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상투적 수순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에서도 지적하고 있으며 야당은 물론 일부 여당 인사들조차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므로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사교육 문제가 심각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갈수록 심각성이 더해가고 있다. 지난 3월 8일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초·중·고 학생이 쓴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2021년 23조4000억원에 견줘 10.8% 증가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1%이니, 사교육비 증가율이 물가 상승률의 2배가 넘는다. 학생 수는 감소했으나(2021년 532만 명, 2022년 528만 명), 사교육비는 증가했다. 사교육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을 포함한 전체 학생 기준 1인당 월평균 41만 원으로, 2021년에 견줘 11.8% 증가했다. 학생들의 사교육 참여율도 78.3%를 기록해, 2007년 첫 조사가 시작된 이후 최고치였다.

 

사교육과 입시 문제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은 무지한 정도를 넘어 한심한 수준이다. 사교육 문제가 수능 난도만 낮추면 해결되는가. 수능을 쉽게 출제해 사교육을 잡고 공교육을 살릴 수 있다면 역대 정부가 왜 이런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겠는가.

 

수능을 쉽게 낸다고 해도 사교육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이유는 수능 문제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시험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등수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학교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교육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잘할수록 사교육비 지출이 더 많다. 시험이 쉬워진다고 백분위가 사라지고 등급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나라에서 입시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전쟁이라 점이다. 학생은 입시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전사가 되었고, 학교는 전쟁터가 되었다.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가 풍자한 한국 교육의 현실은 30년이 지나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주겠어

니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입시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과학고, 외고에 이어 국제고, 자율형사립고가 신흥 명문고로 등장하면서 고교 입시가 부활했고, 여기에 국제중학교도 가세했다. 그 여파는 초등학교까지 선행학습 열풍을 일으켰다. ‘세계화’, ‘글로벌 인재 양성’ 등이 강조되면서 영어교육 광풍이 유치원까지 내려갔다. 우리말도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원어민 발음을 익혀주겠다는 영어유치원이 등장한 지 오래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부설 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2016년 전국의 2세 아동 부모 537명, 5세 아동 부모 7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사교육 실태 결과를 보면, 2세 아동의 35.5%가 주당 평균 2.6회의 사교육을 받는데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이 52.6%다. 5세가 되면 83.6%가 사교육을 받는데, 주당 평균 5.2회로 늘어나며 국어, 수학, 영어,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52.4%다.

 

매년 20만 명 가까이 응시하고 있는 9급 공무원 시험은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다. (※주) 만 18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응시 가능하다. 2살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거쳐 대학에 진학한 후,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공무원 시험에 취업준비생의 1/3이 몰리는 교육제도, 이보다 더 비효율적인 교육이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지배하는 논리는 전쟁의 논리와 다를 게 없다. 전쟁에는 상생이 없다. 네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어느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것이 전쟁이다. 한국 교육이 무한경쟁 교육에서 벗어나고 망국병이라는 사교육에서 해방되려면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대입 경쟁에서 비켜나 있어도 큰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란 국가가 사회 구성원의 기본적인 삶을 책임지는 사회이다.

 

‘글로벌 인재 양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지식인 교육’을 외치면서 무한 입시 전쟁을 부추기는 위정자들이 만든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나라의 미래인 청년들은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한다.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헬조선’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입시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헬조선’의 대한민국에서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무엇인가. 건설노동자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건폭’이라 매도하고 살인적으로 탄압하는 정권이 사교육의 폐해와 교육개혁을 들먹이고 있다. 이보다 웃기는 코미디가 또 있을까. (2023년 6월 19일)

※주.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올해 3월 국가직 9급 공무원 공채시험 접수에 165,524명이 응시해 경쟁률이 29.2대1로 집계됐다. 2018년 41대1에서 2019년 39.2대1, 2020년 37.2대1, 지난해 35대1로 낮아지더니 올해는 30대1 아래로 떨어졌다. 지원자 숫자도 지난해보다 16.4%(32,586명)나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