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권분립의 위기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가 지난 21일 항소심에서 항소가 기각돼 법정 구속됐다. 현직 대통령 장모의 인신구속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어서 향후 정국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들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으므로 따로 쓰지 않는다. 이번 칼럼에서는 여러 굵직한 사회정치적 현안들에 묻혀 주목받지 못하고 지나가기 쉬우나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안을 다루고자 한다.

권영준·서경환 두 신임 대법관이 19일 취임했다. 작년 11월 취임한 오석준 대법관에 이어 이미 대법관 3명의 교체가 이뤄졌고, 오는 9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하고 새 대법원장이 들어선다. 내년에 대법관 6명이 추가로 임기를 마치고, 윤 대통령 임기 내 총 13명의 교체가 이뤄진다. 사법부의 지각변동이다. 그런데, 이번에 신임 대법관이 임명되는 과정을 짚어보면 문제가 한둘이 아니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선, 대법관의 임명 제청 과정에서부터 논란이 발생했다. 권·서 두 신임 대법관은 김 대법원장이 지난달 9일 후보로 제청하였다. 그런데, 이에 앞서 대법관 후보 제청을 앞두고 ‘특정 후보가 제청될 경우 임명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대통령실의 기류가 언론에 보도됐다. 대통령의 뜻과 맞지 않는 이념 성향 등이 임명 거부의 이유라고 했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 제104조)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대법원장의 제청권, 국회의 동의권, 대통령의 임명권을 헌법으로 규정해 놓았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대법관의 제청권에 관여하는 것은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의 헌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대통령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을 배제시킴으로써 사법부를 길들이고 장악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를 받은 후보자라도 임명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한다면 대통령은 임명을 거부할 수 있으므로 거부권을 행사하면 될 일이다. 설사 특정인의 대법관 후보 추천과 제청이 대통령으로서 못마땅하다고 할지라도 그건 대법원장의 헌법적 권한에 해당한다. 대통령실이 언론을 통해 특정인의 후보 제청을 하지 못하도록 관여하는 것은 헌법 취지에 반하며 부당한 인사 개입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대법관 후보 8명 중 대통령실이 거론한 특정 후보 2명은 결국 임명 제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통령의 의중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대법원장이 그 의중에 맞게 후보를 추천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대통령실이 ‘코드 대법관’을 꽂기 위해 임명 절차가 시작되기 전부터 언론 플레이를 하고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무력화한다는 비판이 틀리지 않았음이 확인된 셈이다.

대법원장이 소신껏 제청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대법관 인선 개입을 허용하는 것은 사법부 스스로 헌법 정신을 수호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사법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에 “제청도 되기 전에 대통령실이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배제한 셈인데, 사법권 독립에 대단히 부당한 압력”이라며 “이번 대법관 임명과정이 정치권력의 ‘법원 통제’ 첫걸음이 되지 않을지 두려운 마음”이라는 글을 올렸다. 사법부가 과연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자기 소임을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신임 대법관 임명과정에서 더욱 심각하게 짚어봐야 하는 문제는 국회의 후보 검증과 동의권 행사이다. 권영준 후보자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던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 대형 로펌에 63건의 법률의견서를 작성해주고 18억 원을 받은 일로 논란에 휩싸였다. 의견서 하나당 약 3천만 원꼴로, 매년 10건 이상 의견서를 5년간 작성해, 연간으로는 서울대 교수 급여보다도 많은 고액 보수를 받은 셈이다.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서울대법)이 준용하는 국가공무원법은 ‘공무 외 영리 목적의 업무’를 금지하고 있다. 서울대법은 예외적으로 총장 허가를 받아 사기업체 사외이사를 겸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법률의견서 작성은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 매년 1, 2건도 아니고 평균 10건 이상의 의견서를 5년간이나 써 18억 원이나 받았으므로 영리 목적을 부인하기 어렵다. 자기 급여보다 많은 보수를 받고서도 이걸 ‘영리 목적의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우긴다면 지나가는 소가 비웃을 것이다.

그런데 인사청문회에서 논란이 되자 오히려 그는 “제가 받은 보수는 일반적 범위 내에 있다”며 마치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 억울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법을 어기고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전혀 반성도 하지 않는다면 엄중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런 인물이 법의 처벌을 받기는커녕 대법관에 임명되어 법의 최고 심판관이 된다면 과연 사법 정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권 후보자는 의견서 30건을 써주고 9억 원을 받은 김앤장을 비롯해 비롯해 거대 로펌 7곳에 법률의견서를 작성해줬다.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나 권익 향상을 위한 법률적 기여가 아니라, 거대 법률 자본인 대형 로펌의 이해관계에 부응했던 것이다. 권 후보자는 법률의견서를 제출하라는 국회 요구에 ‘비밀유지 의무’를 들어 단 1건만 공개하고 62건은 끝내 제출하지 않았다. 자료가 공개될 경우 대법관 임용에 중대한 결격 사유가 될 수 있어 그러는 게 아닌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떳떳하게 공개하면 될 터인데 왜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비밀유지 의무’ 때문이라고 했지만, 재판부에 낸 의견서는 소송 당사자들에게 이미 공개된 것이다. 재판이 끝난 사건은 개인정보를 가리고 공개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버티며 끝까지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뭔가 떳떳하지 못하고 구린 구석이 있어서 그럴 거라고 판단하는 게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해충돌 가능성이다. 권 후보자는 김앤장을 비롯한 거대 로펌과 장기간에 걸쳐 특수한 관계를 맺었다. 인사청문회에서 권 후보자는 “그 로펌들이 대리하는 사건은 스스로 회피하겠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7대 로펌이 우리나라 법조 시장에서 절대적 점유율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러니 그 로펌들이 대리하는 사건을 맡지 않겠다는 건 대법관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대법관이 어디 놀고먹는 명예직인가. 가뜩이나 사건 처리 지연으로 인해 국민이 얼마나 막대한 불편을 겪고 있는지 모른단 말인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거쳤으나 권 후보자가 무슨 사건에서, 어떤 의견으로, 누구를 두둔·옹호했는지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다. 후보자가 국회의 검증 절차를 명백히 무시하고 거부함으로써 검증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그런데도 국회 인사청문특위는 ‘부적격’ 소수의견을 붙이는 방식으로 임명동의안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그리고,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권 후보자 임명 동의안이 통과되었다. (재석 의원 265명 가운데 찬성 215명, 반대 35명, 기권 15명으로 가결)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럴 거라면 국회 동의 절차가 왜 필요한가. 좀 더 명확하게 따져 묻자. 국회 과반수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동의했으니 임명 동의안이 통과되었을 텐데, 대체 동의한 이유가 무엇인가. 앞에서 살펴봤듯이 대법관 자격이 없어 ‘부적격’이면 부결을 시켜야 마땅한데, 자격이 없음에도 동의해주고 말 것 같으면 국회의 동의 절차가 왜 필요한가.

국회가 부여받은 헌법적 권리를 내던지고 마다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국회와 야당에 행정부·사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최대 리스크는 ‘대통령 리스크’이다. 정부·여당이 위기의 진원지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나라를 바로 세우고 민생을 안정시키려면 그나마 국회와 야당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국회와 야당조차 들러리 역할을 하면서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면, 나라의 앞날이 암울해진다. (2023년 7월 24일)